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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1. 2022

혼자 혹은 함께

나는 위로 세 살 차이가 나는 언니와 아래로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다. 우리는 제법 있는 나이 차이 덕분인지 셋이 특별히 싸우거나 말다툼하며 자라지 않았다. 

 어릴 적 언니와는 말다툼도 많이 하였고,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다. 언니가 기억하는 나는 함께 거리를 걸어 다니고 고무줄놀이도 하던 아프기 전 친구 같은 동생의 모습이다. 반면 동생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프기 시작한 나는 동생의 기억 속에는 아픈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나를 은연중 대하는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언니의 의식 중엔 언제나 나는 평범하고 아프지 않은 동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간혹 대화를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말하는가 하면 왜 못하냐는 식의 어투로 말하기도 해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동생은 늘 아픈 언니의 모습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다. 매사에 조심조심, 또 조심을 강조하며 이 세상 모든 게 나에게 위험요소라고 생각하며 행동했다.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는 어린 시절 함께 한 시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셋은 나이 터울은 많은 편이지만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함께 다닌 시기는 각기 다르지만 나는 두 사람 모두와 다니는 시기가 겹쳤다. 언니와 나, 나와 동생.

건강했던 시기 언니는 나보다 몸집이 작아 내가 곧잘 괴롭힐 때도 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을 언니는 함께 했었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며 같은 방에서 함께 학교 숙제도 하고 학교가 끝나는 하굣길에 골목길 앞에서 언니 동네 친구들과 함께 고무줄놀이도 했었다. 하루는 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던 중에 친구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색상의 색연필을 부러트렸었다. 속상한 마음에 우는 나를 달래주던 언니는 다음날 그 친구 집까지 찾아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조그만했던 언니의 손에는 나에게 다시 줄 색연필 세트가 들려있었다. 이가 빠진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색연필을 꼭 쥔 손을 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언니와 함께한 학교의 추억은 다치기 전의 추억이라면 동생과 함께한 학교의 추억은 아픈 후 출석 일수가 부족하여 졸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엄마에게 업혀서 등하교를 하는 무렵이었다.

동생과의 추억에는 엄마도 함께 했다. 1학년 때 다치고 난 후 2년 동안은 반복적인 다리 골절로 누워서 생활만 했기에 아예 학교를 나올 수 없었지만 엄마는 학교를 나갈 수 있을 때는 종종 나를 업어 등하교를 시켜주셨다. 


다리를 다친 후 다시 학교를 갔을 때는 많은 게 변해있었다. 


 혼자서 걸어 들어갔던 정문은 엄마의 등에 업혀 들어가는 정문이 되어 있었고, 1학년 일 때 아래층이었던 교실은 어느새 고학년 교실이 있는 위층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시설이 좋은 초등학교도 아니었고 그때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시기였기에 좋은 시설은 물론 최소한의 배려도 받지 못했었다.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힘들게 받았던 학교의 배려는 졸업하는 6학년이 되어서 교실을 아래층으로 옮겨주는 배려였다. 교실 위치상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기에 주로 오전에는 아빠가 등교를 시켜주셨다. 나는 오전에 등교를 할 때면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싫어 늘 아침 일찍부터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아빠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미리 교실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게 좋았었다.

 오후에는 엄마가 일찍 끝난 동생과 나를 기다리며 하교를 시켜주셨다. 내가 아무리 가볍다고 한들 나는 초등학생일 때는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컸고 몸집이 작지 않았었다. 나를 매일같이 업고 계단을 다니던 엄마에게 허리 디스크가 찾아왔다. 

디스크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었고 우리는 몇 차례 동생이 지켜보는 앞, 계단 위에서 넘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을 보였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에게 초등학교 졸업장을 주기 위해 부족한 출석일수를 어렵게 채워나갔었다. 학교에 나를 업고 다니며 많은 건의를 넣었고 마침내 학교에서는 그 건의 사항을 받아주었다. 교실이 1층으로 내려온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던 거 같다. 나중에 내가 졸업한 후 엄마에게 들은 말로는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너무 고마워하셨다고 했다. 그분은 내가 학교 다닐 당시 나처럼 몸이 불편한 아이를 등하교시켜주시는 1학년쯤 되는 아이의 학부모님이셨다. 우리의 지속적인 건의로 이제 학교 측에서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는 반은 고학년이 되어도 아래층에 반을 배정해주었고 덕분에 자신들은 아래층으로 수월하게 다니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기 위해 급식실까지 이동을 해야 하는데 학교는 높고 낮은 턱이 많았기에 휠체어로 아이들끼리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급식실로 가는 시간에 맞춰 오전 수업을 끝으로 하교를 했다. 일찍 끝나는 1, 2학년 아이들과 하교 시간이 비슷했다. 그래서 나의 하굣길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생과 엄마가 함께 나를 데리러 왔다. 

 처음 밀어보는 휠체어는 엄마에게도 낯선 물건이었다.

휠체어를 밀고 학교를 빠져나갈 때면 가끔 앞에 있는 낮은 턱이나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돌멩이 위를 피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면 휠체어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 엄마 옆에 있던 동생이 휠체어를 잡아 나와 휠체어가 넘어지는 걸 막아주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이보다 한 학년 일찍 들어온 학교를 동생은 또래보다 유난히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동생과 같은 나이었을 때 늘 뒤에 서있던 나와 달리 동생은 언제나 앞자리에 있을 만큼 작은 아이였다. 동생은 어릴 때 주로 내가 아파서 깁스한 채 누워있거나 엄마와 함께 나가면 크고 작은 문제들 때문에 위험한 모습을 자주 봐왔기 때문에 항상 조바심을 내는 성격으로 성장해 버린 거 같다. 특히 동생이 가장 크게 놀랬던 사건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배치고사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배정받은 중학교는 지금 다녔던 초등학교만큼이나 오래된 옛날 건물이었다. 신 건물이 옆에 생겨 엘리베이터가 있을 줄 알았지만 시험을 보는 건물은 신 건물이 아닌 옆에 있는 옛날 건물이었다. 옛날 건물은 계단도 높았고 우리가 올라야 할 계단도 많았다. 오전에는 출근을 하기 전 아빠가 데려다주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시험이 끝난 후였다. 그날도 엄마와 동생은 나를 데리러 왔었다. 옛날 건물의 계단은 가파르고 높았다. 눈앞에 펼쳐진 많은 계단을 휠체어와 나를 데리고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엄마의 디스크가 더욱 심해져 내가 업히는 게 불가능했고, 동생이 엄마와 함께 휠체어를 들기엔 무척 어렸고 작았었다. 엄마는 나를 휠체어에 태운 상태로 오직 팔의 힘을 이용하여 나를 태운 휠체어를 뒤로 눕혀 앞바퀴를 들은 상태로 뒷바퀴만으로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었다. 하지만 계단은 높고 많았기에 우리가 내려갈 계단은 끝이 없었고 누가 보아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특유의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웅성거림 속에 우리는 위태롭게 한 계단씩 숨죽여 내려갔다. 동생은 우리보다 아래 칸에서 뒷걸음으로 우리에 속도에 맞춰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며 고스란히 위태로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거처럼 순간 엄마의 손에 힘이 풀려 앞으로 그대로 쏟아질 뻔 한 나와 휠체어를 바라보던 작은 그 아이는 놀라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안간힘을 쓰며 휠체어를 막아 쏟아지는 우리를 막아섰다. 나는 그날 이후 중학교는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애써 놀라지 않은 척했지만 내심 놀란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무리해서 갈 만큼 학교가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 무렵 중학교 과정까지는 의무교육이 실행 중이었지만 오히려 학교에서도 좋은 생각이라며 학교 측 의견을 전달해 줄 처음 본 중학교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자퇴서를 전달하며 작성해주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 처음 보는 선생님이 주는 설렘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의 서랍 속 한 켠에는 그때 방문했던 이름 모를 친구들이 들고 왔던 편지들이 여전히 보관되고 있다.

지난날들은 서랍 속 먼지가 내려앉은 편지들처럼 나의 마음에 한 겹의 단단한 층이 생기는 과정의 한 부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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