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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9. 2022

인정하는 자세 배우기

엄마는 어릴 때부터 뭐가 잘 못 되었다면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잘 못한 게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라고 나무라셨다. 

무조건 “네 탓이야. 너 때문에 잘 못 됐잖아”라고 말하며 남을 탓할 시간에 나를 탓하며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했다. 위험상황으로부터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기 보호 본능은 일이 풀리지 않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모습을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매일을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작은 실수조차 하지 않아야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입버릇처럼 남의 탓을 하는 그 사람은 늘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이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말했다.

이건 안 될 거 같아, 한 걸음.

별로야, 두 걸음.

싫어, 됐어. 세 걸음.


그는 실패하기를 무서워하였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자기 보호하기 좋은 말들을 짜증스레 내뱉으며 빠르게 남을 탓하며 자신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자신에게 오점을 남기지 않는 완벽한 생존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생존법의 단점이 있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는 발전 없이 늘 그 자리였다. 

사람은 잘 못한 게 있다면 깨닫고,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더 나아가지고 발전하는데 비해 그는 나아가기보단 머물기를 선택한 것이다.


앞날을 모르는 도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무섭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삶은 도전이었다. 작은 것 하나를 시작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생각해야 했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용기가 필요했다. 무섭다 포기하고, 두렵다 시작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은 나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느 때처럼 새벽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문득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새벽이 아쉬워서였다. 새벽에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 뭔지 생각해 보았다. 당시 목발을 구입해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하루하루 새로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스름한 새벽녘 목발을 딛고 집을 나섰다.

몇 걸음이지만 드높은 산을 등반하는 기분이었다. 집을 나설 때의 목표는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까지로 정했지만 멀리 가진 못했다. 고작 집 앞 골목길 정도.

목발을 사용하여 처음 혼자 집을 나선 것 자체만으로도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되물을 수 있는 그 정도의 거리였다. 남들에게는 가벼운 산책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나서는 문을 넘기까지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문밖은 나에게 어떤 위험한 생길지 모를 위험하고도 무서운 곳이었다.


하지만 새벽을 맞이하는 골목길 풍경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이른 새벽부터 새벽기도를 나가시는 바쁜 할머니들의 걸음.

출근을 준비하시는 개인택시 아저씨의 분주함.

동네 초등학교로 새벽 운동을 나가시는 앞집 아줌마와

큰 사고가 후 나처럼 목발을 지탱하여 아침 공기를 마시던 할아버지.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하루, 이틀이면 나가지 못할 것 같았던 나는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제법 꾸준하게 새벽시간 집을 나섰다.


하루는 교회를 가시는 할머니가 힘내라며 요구르트를 쥐어주는가 하면, 힘들어 보이는 내게 집까지 태워주신다고 말하던 택시기사 아저씨와 몸이 힘들어 며칠 쉬다 다시 나가면 반갑게

다가와 왜 안 보였냐며 수다스럽게 묻는 앞집 아주머니, 안 보여서 걱정했다면 넌지시 운을 띄우시던 할아버지까지.


그분들 덕분에 생각보다 힘들었던 새벽 산책을 게으름 없이 꾸준히 나갈 수 있었다. 많은 걸음은 아니지만 나갈 때마다 한 걸음씩 더 내딛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다.

 늘 부정적인 그는 불만불평을 늘여놓으며 다치면 어떡해? 무모한 짓이야. 그냥 가만히 있어. 말하며 또 한 발자국 물러나는 일상을 보내라고 말했다. 생기지 않은 나쁜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었다. 

그는 걱정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가만히 있었더라면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제자리걸음으로 발전 없이 조금도 더 내딛지 못했을 거다. 

부정만 하기보다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긍정이 필요했다.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위험할 순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혹은 운동을 해야 몸이 더 좋아질 수 있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잘못이라는 것도 똑같은 것 같다. 

사람들은 잘못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꺼려한다. 그러다 보면 남의 탓으로 돌리며 순간을 회피하기 바쁜 비겁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 듯 모든 일이 성공적일 수 없다. 두려움에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 잘못을 제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용기가 있다면 고쳐나갈 수 있다.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고칠 수 있는 건 잘못이 아니야. 그걸 알면서도 못 고치는 게 잘못이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니 남을 탓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까지 남 탓하기 바빴다면 한 번쯤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먼저 내보며 조급한 마음 대신 긍정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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