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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9. 2022

어둠이 스며드는 시간

몸에 부족한 수치를 맞추기 위해 먹었던 약이 있었다. 식전 혹은 식후에 먹는 약들과 달리 24시간 동안 4시간마다 일정한 양을 마셔야 하는 물약이었다. 섭취하지 않으면 몸을 이루는 균형이 급속도록 깨져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일어나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자기 전은 물론 자다가도 일어나 물약을 챙겨 마셔야 했다. 

 어릴 적부터 쉽사리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맞이하는 불면증 증상도 있어 잠들기도 힘들고 자다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 수 없는 나날들이 연속이었다. 오지 않는 잠을 힘겹게 청하더라도 약을 챙겨 먹는 새벽 3시 언저리가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잠들었다가도 새벽이 되면 눈을 뜨는 습관은 곧 버릇이 되어 시간마다 챙겨 먹지 않아도 되는 약으로 바꾼 후에도 여전히 잠 못 이루는 나의 새벽은 다른 사람들의 낮과 같은 시간이 되었다.


 불면증으로 약을 먹어 본 적은 없다. 다른 약도 많이 먹으면서 불면증 약까지 추가해서 먹고 싶지 않아 상담도 받지 않았다. 남들의 낮 같은 밤. 어둑한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 한다는 건 꽤 괴로운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고 몸이 피곤하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일상이 무기력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의 시작은 불면증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새벽의 적막함은 사람을 우울감에 빠트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는 작은 소리도 더 크게 들려오고 작은 불빛에도 눈살이 쉽게 찌푸려진다. 아픔이 가장 강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자정을 지나는 새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활기가 넘쳤던 거리도 잠들게 만드는 고요함이 가득한 새벽이 되면 유독 뼈가 아려온다. 오로지 아파오는 부위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아플 때면 적막한 새벽이 너무 길었다. 어디가 특별하게 다치지 않아도 약해진 부위의 뼈나 수술했던 곳이 늘 욱신거림이 느껴진다. 나는 늘 언제 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초조하고 예민했다. 대체로 웃는 얼굴로 있지만 막상 내 안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돋쳐있던 내가 유일하게 울기도 한 시간이 바로 새벽이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던 나는 마음이 울적할 때면 우울한 영화를 보며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아무도 모르게 울기도 했다. 그게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좋잖아. 네가 무슨 스트레스야?" 

무심코 악의 없이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왜 난 이렇게 태어나서 집에만 있어야 돼? 답답하고 억울해. 걷고 싶어.


마음으로 아무리 많이 외쳐도 아무에게도 외칠 수 없는 말이었다. 밖으로 내뱉으면 모두에게 상처가 될 거 같았다. 표현할 용기가 없던 그때는 매일, 매일이 우울했던 시기다. 충동적으로 나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일은 더 잘 지내자, 이걸 배우면 좋겠다…. 등 희망찬 생각들이 가득했다가도 어차피 못할 거 무슨. 내일도 똑같겠지. 부정적인 생각이 일순 떠오른다. 우울한 시기에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다가도 내가 없으면 슬플 사람이 있나? 생각에 잠겨 본다. 나의 우울함은 평소 벗지 못한 지독히 무거운 가면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우는 것보다 내가 웃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맞춰진 포장 잘된 박스에 나를 가둬놓았다. 우울한 나의 진짜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신경 쓰며 막을 내린다. 그리고 다시 웃는 얼굴 뒤로 나의 진짜 마음은 늘 꼭꼭 숨겨 놓고 남에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속이는 긴장감 속에 낮 시간을 보냈다. 


 단조롭고 똑같은 일상에서 나 자신까지 속이며 보낸 하루에 지쳐 쓰러지듯 잠을 청하고 일어나면 그렇게 오지 않길 바라던 하루가 또다시 시작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힘든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에게 결국 돌아오는 건 또 다른 하루. 또다시 답답한 가면 속 마음. 온전히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살아가면서 큰 행운이다. 나는 내가 겪어보지 않은 공간에서 생기는 행복을 좇기보다는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일상의 행복을 찾아 나가기로 했다. 

 남들에게는 어두운 새벽은 잠자는 시간이자 적막한 할 일 없는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자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혼자만의 시간이 되어 내 마음을 들어 내놓을 수 있는 새벽이 그래서 좋았다. 멀리 있는 행복을 찾았다면 새벽은 단지 지나가는 시간일 뿐 나에게 의미 없는 지루하고 아픈 시간이었을 것이다. 일상은 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뜻밖의 행운은 많고 행운을 찾는 건 그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고민이 없는 사람도 슬픔이 없는 사람도 없다. 나처럼 걱정 없이 고민도 슬픔도 없을 것 같은 사람마저도 있다. 다만 혼자 견뎌낼 뿐이다. 

타인에게 위로받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에게 위로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솔직히 마음을 보여줄 용기가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용기가 부족했던 나에게 위로를 해준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없어도 좋다. 남에게 굳이 위로받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인데 왜 꼭 남에게 위로를 받아야 위로를 받았다 말할 수 있을까? 



 마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외면하고 넣어두기만 했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참고 꽁꽁 숨겨놓았던 슬픔도 밤새 쏟아내고 보면 어느새 무직했던 가면 속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지만 나에게도 솔직해지지 못한다면 나에게조차 위로받지 못한다. 혼자만의 시간이니 다른 이를 신경 쓰지도 말고, 눈치 볼 것 없이 진솔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기를. 연락처에 수많은 친구에게 쉽사리 전화 한 통 걸지 못해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똑바로 나를 바라봐줄 내가 있기에 어둠이 스며드는 오늘 밤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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