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Oct 19. 2022

특별하지 않은 어떤 하루

특별할 것 없이 시작되는 일상의 하루,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되는 시간 오후에 시작된다. 


나의 하루는 반려견 꽃순이의 간식을 챙겨주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꽃순이와 함께 시작했던 나날들. 침대에서 일어나면 나를 졸졸졸 따라오는 꽃순이에게 간식을 준다. 꽃순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 사과를 깎아서 먹여주다 보면 어느새 잠은 달아나버린다. 꽃순이는 내가 일어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쫄래쫄래 따라온다. 내가 어딜 가든 내가 무얼 하든 나와의 거리는 1m. 늘 거리를 유지하며도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따라다닌다. 

 그날도 나는 꽃순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 간식을 주기 위해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냈다. 사과를 꺼내고 오는 길 주방에서 과도 칼도 꺼내 들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그렇게 거실까지 가서 사과를 깎아서 꽃순이를 주고 있었을 텐데 그날따라 유독 내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다른 칼집에 꽂아져 있는 과도 칼이었다. 평소에 이상한 강박감이나 결벽증은 있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되도록 있던 물건은 그 자리에 두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꽂혀있던 과도 칼이 눈에 밟혔고 그걸 빼서 제자리 둬야겠다는 생각이 순간 내 머리를 지배했던 거 같다. 이상하게 다른 곳에 꽉 껴 있는 과도 칼은 아무리 뽑으려고 해도 전설의 칼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박혀 있었다. 빠지지 않으려는 칼과 무조건적으로 빼려는 내 힘이 맞닿으면서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았단 일상에 생긴 작은 문제.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처음 깁스를 했던 건 언니와 놀면서 다쳤던 팔을 깁스를 했다고 말이다. 문제는 그 팔이 20년이 지나서 과도 칼을 뽑으려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반자동 현상으로 뒤로 꺾이면서 예전에 다쳤던 그 부분이 그야말로 똑. 하고 부러져버렸다. 


병원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다쳤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놀라움을 표했다. 암튼 간에 당시에 책에서나 나올법한 전설의 칼은 아무나 뽑으면 꼭 문제가 생기는 전설처럼 나는 집 과도를 빼다가 그렇게 다치고 말았다. 하필 그날은 부모님 모두가 장거리에 있는 공항으로 막내를 마중 나갔던 날이었기에 엄마, 아빠가 나에게 오기까지는 장작 3시간 이상이 걸렸었다. 

아픈 팔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면서 마주한 꽃순이는 안절부절. 나의 곁에서 부모님이 올 때까지 함께였다. 간식 먹기 위해 신나 있던 꽃순 이에게도 날벼락같았던 날이었을 거 같다. 

엄마 아빠는 차가 막혀서 속력을 낼 수 없어서 속이 타들어가고 나는 앞에서 서성이는 꽃순이가 신경 쓰이면서도 아픈 팔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속상해서 더 울음이 나오기를 몇 시간, 드디어 엄마, 아빠가 집에 도착했고 차에서 자신 때문에 언니가 혼자 다친 거 아니냐며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래며 함께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 응급처치는 아빠의 몫이었다. 집에서 사용하고 남아 있던 하드보드를 반 깁스처럼 잘라 팔 위에 덧대인 후 움직이지 못하게 붕대를 이용하여 몸에 단단히 고정을 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응급의학과 선생님은 아빠의 응급처치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오랜 기간 동안 환자의 보호자로서 쌓은 노하우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서 잠시 잊고 있던 골절의 고통이 찾아왔다. 수차례 다리 수술을 마치고 나름 몸 관리를 잘 한 덕분에 잊고 있던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다시 겪게 되었다. 그날은 현충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고, 현충일 다음은 주말이 껴 있던 황금연휴 기간이었다. 병원에 가서도 임시 깁스를 하고 꼬박 오일 만에 어긋난 뼈를 맞추는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병원의 휴일은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아픈 것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다리가 아플 때면 드는 생각이 있었다. 팔이 다치면 다리보다는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쳐보니 그 생각은 나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오히려 무거운 깁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나는 스스로 일어나기 조차 하지 못했었다. 24시간 엄마의 간호를 받으며 팔이 나을 동안 줄곧 누워서 생활해야 했다. 다 낫고 나서도 장시간 누워 지낸 후유증으로 한동안은 침대에서 나가지 못했었다. 심지어 한 손을 많이 쓴 바람에 다른 쪽 팔까지 약해지기 시작하여 병원에서는 다른 팔까지 다치지 않으려면 더 조심해야 된다는 말까지 듣고 현재는 수술을 한 팔 관리와 함께 약해진 다른 팔을 치료받으며 새로운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지극히 평범한 날 문제는 생기고 아무런 생각이 없던 부분에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뼈가 다치는 일이었다. 늘 조심하는 부분도 어디에 부딪히지 않기 혹은 무거운 물건 들지 않기 정도였는데 이 일이 생긴 후 나는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 더 생겨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 더 있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모든 일은 우연히 시작되지만 아무도 그 시작을 알리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이전 14화 어둠이 스며드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