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을 앞둔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짐을 싼다. 비록 병원에 가면 입는 옷은 병원복뿐이지만 퇴원할 때 몸이 불편해도 환복 하기 편한 옷 위주로 옷을 고르기 위해 서랍을 서너 번씩 열어서 옷을 찾았다. 이건 입기 불편해서 안 돼, 이건 붙어서 안 돼, 신축성이 없어서 안 돼…. 여러 가지 이유들로 어여쁜 옷들은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큼직하고 신축성이 좋은 옷들이 가방에 들어간다. 그밖에 병원에서 필요한 세면도구, 생필품까지 챙겨서 가방에 넣으면 영락없이 여행을 떠나는 짐 같았다. 입원을 앞둔 날에는 앞일을 알 수 없는 설렘과 두려움의 공존이 마치 여행을 가기 전날 느끼는 감정과 닮아 있었다.
짐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먹는 약을 줄지어 나열한 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먹고 있는 약을 입원할 때 병원에 미리 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은 약들도 소분하여 입원해 있는 동안 먹을 만큼 약통에 담아 짐 가방 대신 쉽게 꺼낼 수 있는 핸드백에 넣는다. 몸에 수치가 조금만 변해도 큰 변화가 오기에 약은 언제나 꼼꼼하게 챙겨야 했다. 모든 짐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꽃순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항상 멀리 나갈 때면 함께 가는 꽃순이지만 입원을 위하 가는 날에는 집을 지켜야 했다. 아쉬운 잠깐의 작별이었다.
입원하는 길은 늘 떨렸지만 가장 떨리고 슬펐던 건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입원한 날이었다. 그날이 가장 병원을 가기 싫었던 날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고 했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었다. 나는 신체의 일부는 잃지만 건강을 얻은 셈이었다. 비록 예쁜 몸도, 가슴도 아니었지만 아직 비키니도 입어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는데 가슴을 잃었다니. 앞으로 연애는 못 하겠다. 그날의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나의 머릿속은 가슴속만큼이나 답답하고 복잡했다.
병원 가는 길목,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모습이 창을 통해 보인다. 겨울을 알리는 희끗한 눈발이 바람결에 휘날리며 창과 땅에 닿자마자 사르륵 녹았다. 몸에 있는 안 좋은 것들도 눈처럼 사르륵 녹아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점점 사그라져 드는 나의 마음이, 나의 청춘이 아쉽게 느껴졌다.
언제나 붐비는 지하철역 출구, 활기를 띈 마로니에 공원은 병원을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어디서 저 많은 사람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지하철역 출구는 갈 때마다, 매 시간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넘쳐나는 사람들 사이로 여름이면 명언이 가득 담긴 붓글씨 종이나 스타킹, 주스 등을 팔고, 겨울이면 뜨거운 김을 내뿜는 옥수수나 군밤, 구운 떡 같은 군것질거리를 팔고 계신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기한 건 그 많은 사람들 중 나 말고는 아무도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사 먹기라도 할까?
오고 가며 내가 보았을 때에는 딱히 관심 있는 사람도, 사 먹는 사람도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항상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꼭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일상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시는 것 같았다. 무더운 여름이면 펼쳐놓은 파라솔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따사로운 온기로 얼어붙은 병원의 첫 문을 녹여준다. 오로지 병원이 주는 외로운 첫인상이 그들 덕분에 조금은 정겹게 느껴졌다.
병원이 보이는 언덕을 넘을 때면 이제 진짜 왔구나 싶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신기하게도 모두가 분주하고 정신없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가득한데 이상하리만큼 적막하기도 하다. 병원에 올 때면 나보다 더 떨려하는 아빠가 오늘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딸,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잔뜩 힘이 들어간 아빠의 목소리가 나를 응원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때면 세상이 나에게 꽤 냉정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원래 아팠던 것도 부족해 또 다른 병까지 나에게 찾아왔을까 싶었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은 참 쌀쌀맞다. 살얼음 같은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제 깨질지 몰라 늘 조바심을 내고 지내야 하는데 막상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깨질 바엔 차라리 물이 되리라, 주위에서 주는 온기를 온전히 받고 녹아 유한 물이 된다면 깨질 걱정이 없어진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 나의 마음이 달라졌다. 조급함 대신 천천히, 조바심보단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했다.
“응, 잘하고 올게.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닐 무렵,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며 아침에 나누는 그런 평범한 인사를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나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야 하는 아빠에게 인사를 해 보였다. 학교를 가는 것처럼 가벼운 입원 하러 가는 길. 병원을 다시 나설 때 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늘 모르는 일이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변하든 여전히 나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