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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9. 2022

이대로가 좋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아픔은 갑작스럽게 찾아와 나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단 한 번도 미리 소리를 내고 찾아온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아픔이 먼저 나에게 신호를 보낸 건 처음이었다. 뉴스에서 점점 높아지는 젊은 연령의 암 선고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심해야 되는 부분은 암이 아닌 다치지 않는 게 최우선인 병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나에겐 암은 남의 이야기였다. 20대 중반이 되어 받은 암 진단은 원래 아팠던 것과는 또 다른 무서움이었다. 


 수술했던 팔이 회복되기도 전이었다.

“선생님 요즘 가슴이 좀 이상해요” 언제부터인지 브래지어를 벗으면 속옷 안쪽에 노란색 진물 같은 게 묻어났다. “아픈가요?” 고개를 가로질렀다. “전혀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도 검사는 진행되었다. 평평한 판이 무겁게 가슴을 쥐어짜는 검사는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다. 차가운 젤이 발린 가슴 위로 금속의 가슴을 꾹꾹 누르며 배회한다. 선생님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기계는 새까만 내 속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었다. “어떤가요?”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있던 엄마의 물음이었다. “아…. 모양이 좋지 않네요.” 짤막한 그 한마디가 끝난 후 초음파실은 적막감이 흘렀다. 조직검사도 이뤄졌다. 아픔을 덜어내기 위해 맞은 마취주사가 뾰족한 바늘을 통해 몸에 들어왔다. 감각이 없어질 때쯤 몸에 있던 뜨끈 미지근한 피가 흐르는 났다. “따끔할 수도 있어요.” 딱딱딱, 일정한 소리는 공포탄 소리 같았다. 소리와 동시에 따끔함이 가슴 깊숙이에서 느껴졌다. 기계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암 일지 모를 조직 세포를 몸 안에서 일부 떼어갔다.


 대학병원에서는 검사를 하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된다. 검사와 결과를 듣기 위해 대략 4주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 낫지 않은 아픈 팔로 서울병원을 오가며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큰 문제가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내 마음과 달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들린 병원에서는 암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행히 유방상피내암 0기네요. 다만 수술은 필요해요.”


여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제법 비장했다. 선생님은 다행히 유방암 0기에 속하는 상피내암이라 수술을 하면 죽을병은 아니라고 했지만 암세포가 밤하늘의 별처럼 가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전절제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절제 수술은 암세포가 발견된 가슴 부위를 전체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몸은 비록 아파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 정상인 20대 여자에게 전절제 수술은 충격적이었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심과 가슴을 전절제 수술을 해야 된다는 말이 남의 일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이 순간 모든 게 나에게 일어나는 일 같지가 않았다.


 나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유방암 사이트를 가입했었다. 그곳에서 전절제를 한 사람들의 푹 꺼진 가슴모양과 생각보다 커다란 흉터를 보고 놀란 마음에 곧바로 사이트를 꺼버렸었다. 0기라 죽을병도 아니고 전절제 수술을 하면 오히려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멋쩍게 웃으시며 끝없이 장점을 말하던 선생님의 음성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럼에도 암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심란함이 마음을 지배해버렸다. 유방암 사이트에 있는 환자들의 푸념은 남의 이야기도, 영화나 소설의 주제도 아닌 나의 현실이었다.


 암 진단을 받고 제주도에 엄마와 함께 떠났다. 바람 쐴 겸 다녀오라는 아빠의 즉흥적인 제안이었다. 비행기가 아닌 통통거리는 배에 차를 싣고 제주도로 향하는 길은 멀고 험했다. 사나운 바닷바람에 배는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배는 멀미를 일으켰다. 일렁이는 속과 달리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날이 선 바닷바람에 오히려 마음은 한결 시원해졌지만 우중충한 날씨가 우리의 마음을 대변했다. 바닷가가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 밤이 되어 깜깜해진 바다를 창을 통해 한참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드문드문 빛을 내는 갈치 잡이 배의 불빛이 유독 밝게 빛났다. 암은 암이지만 그래도 목숨을 빼앗은 위험한 암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자는 엄마는 죽지만 않으면 세상에서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끝 모를 검은 밤바다를 멀거니 보던 그날 밤,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행복한 암 환자가 되었다. 

지금껏 아팠던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몸을 가진 20대 여자라면 나보다 더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비해 나는 그다지도 예쁘지 않았던 몸 대신 앞으로의 삶을 예쁘게 만드는 방향을 택했다.


 병원에서는 분비물이 보였던 오른쪽 가슴을 조직검사할 당시에 아무 증상이 없었던 왼쪽 가슴도 혹시 모르니 검사하는 김에 함께 진행하자는 선생님 말에 검사를 진행했었다. 별 문제는 없을 거 같지만 혹시 모르니 해보자는 식의 검사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미 한쪽 가슴에 암 진단을 받았던 터라 다른 쪽 가슴에 대한 검사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의 해가 밝게 떠오르는 이른 아침 02로 시작하는 서울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뜨며 시끄럽게 울렸다.


“다른 쪽에도 암세포가 발견되었어요.”

시끄럽게 울리던 전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결과를 알려주는 전화였다.

친절한 음성이 알려주는 암 선고는 절망적이라기보다는 비현실적이었다. 일반적인 성인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성장을 덜한 내 가슴속에는 암이 있다고 한다. 작은 가슴을 가지고 있는데 한쪽도 아닌 양쪽에 암세포가 생겼다는 자체가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다. 문득 생길 대가 어딨어? 부질없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유방 전문 의사 선생님은 보통 나처럼 젊은 환자가 유방 전절제 수술을 받으면 가슴을 잃는 상실감을 없애주기 위해 보형물 수술까지 함께 권하여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슴 모양을 유지하게 도와준다고 하였다. 그 부분에 걱정은 다음 상담을 받으며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되었다.


“이쪽은 부분절제가 가능한데 그렇게 되면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해요.”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두 가지의 선택권을 주었다. 양쪽 다 전절제를 할 것인가, 아니면 한쪽은 전절제 다른 한쪽은 부분절제로 향후 방사선을 받을 것인가. 내 경우에는 한쪽만 하게 되면 문제가 있었다. 다른 성인 여성에 비해 가슴 크기가 크지 않았기에 제일 작은 보형물을 넣어도 반대쪽과 크기가 차이가 날 거라고 하셨다. 엄마와 아빠는 방사선 치료는 힘들어서 안 된다고 하였고 나도 한쪽과 차이가 많이 날 바에는 양쪽 다 없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엄마 하는 김에 B컵으로 할까?”


괜히 떨리는 마음에 우스갯소리도 해보았다. 물론 엄마의 질색을 표하는 얼굴 덕분에 듣지 않아도 대답은 충분했다. 혼자 밤늦게 들어가 보았던 인터넷 유방암 사이트의 여자 환자들 수술 사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흉하게 커다란 상처 아래로는 본연의 가슴 모양이 아닌 납작해진 맨 살에 난 수술 자국만 크게 나있었다. 전절제를 하면 유두 부분 또한 제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형물 수술을 함께 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의 수술 경과를 보여주었다. 가슴수술을 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가슴의 모양은 예쁜 편이었다. 유두 부분이 없는 걸 빼면 말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치료가 모두 끝나면 문신으로 모양을 만든다고 했다. 나 역시 인공적인 가슴으로 가슴의 모양을 유지하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수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보형물 수술에 대한 수술비 예상 견적은 생각보다 높았다. 집에 그럴 여윳돈이 있던가…. 수술 후 경과도 전절제 수술만 했던 환자들보다 더 아프다고 했다. 지금도 별로 크지 않았던 가슴인데 굳이 많은 돈을 내고 더 아픈 수술을 해서 부모님에게 또 큰 짐을 주는 게 맞나 싶고, 한편으로 나를 생각하기에는 20대의 여자로서 가슴도 없이 흉한 상처만 가지고 사는 것도 서러웠다. 물론 이건 수술이 가능하다면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었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뼈가 부러진다면서요?”

조금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많은 남자 의사 선생님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에서 상의를 걷어 올린 상태로 들었던 말이었다. 암을 제거하고 난 후에 가슴 성형 부분을 맡아주실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의 의문이 가득 담긴 물음이었다. 그분의 걱정은 작은 충격에도 조각나는 뼈를 가졌는데 과연 보형물의 압박을 뼈가 견딜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몸이 아파도 나는 평범한 20대 여자였다. 어릴 적 다리가 아팠던 기억은 원래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픈 거니깐, 담담히 받아들였고 때로는 속상함을 가졌던 것과 달리 육체는 아니더라도 정신만큼은 또래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20대를 겪는 여자로서 가슴을 도려낸다는 건 큰 상처였다. 유방암이 걸려도 전절제 아니고 자신의 가슴을 유지하며 이겨내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 나만 위험하지 않은 암세포 때문에 가슴 전체를 제거해야 된다는 게 서럽고 억울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내가 지내는 일상생활을 생각해 보았다. 서서 오래 있지 못하는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씻는다. 양치질과 세수를 할 때면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상처를 무릎에 지탱하는데 그럴 때면 가슴 부분이 무릎에 꾹 눌려 있었다. 지금보다 큰 가슴이 생긴다면 이자세가 가능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보형물의 압박을 내 뼈가 견디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상담을 마치고 병실에 돌아왔다. 엄마, 아빠는 말이 없었고 나도 입을 앙 다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언니는 병문안을 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사 왔다. 무심하게 햄버거 종이봉투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평소 언니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따뜻한 말이나 위로 같은 낯간지러운 소리는 못하는 성격이다. 역시나 언니는 위로 대신 투박한 말로 애써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줬다.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없으면 어때. 안 아픈 게 낫지”

언니의 말처럼 아픈 거 보다는 나았다. 그럼에도 나는 가슴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울적했다. 언니는 옆에서 자꾸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마저도 위로가 아닌 상처가 되었다. 당시에는 가족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러한 문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비교적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속상했다.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내 기분을 표현하는 걸 꺼렸다. 


 나는 고민을 상담할 사람이 없었다. 마음을 터놓고 말할 친구도 없었고, 나의 치부를 모두 아는 가족들에게 나의 상실감과 서러움을 나누기엔 나는 우리 집에서 여자라기보다는 환자였다. 더 많이 안 아픈 거, 큰 병이 아닌 게 다행이라 생각하는 가족들이기에 쉽사리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언니가 사 온 햄버거는 맛있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으며 먹기보단 집어넣는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새라 햄버거로 입을 막았다. 눈물이 차올라 붉어진 내 눈을 모두들 모른 척 외면하는 그런 밤이었다. 


 처음 수술했던 수술대와는 달리 가슴에 있는 암을 제거하기 위해 누운 수술대는 온기가 가득해 포근하기까지 했다. 유방 전절제 수술은 뼈를 깎는 고통은 없었기에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보형물을 넣었다면 가슴 피부를 늘리는 과정이 꽤 아프다고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이 없었기에 수월하게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수술 경과는 좋다고 말했다. 부분 절제로 하지 않은 덕분에 힘든 방사선은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웃으셨다. 

  예전에는 이대로가 좋다는 말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더 안 아플 수도 있고, 더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잖아.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아프지 않았다면 암을 발견하지 못하고 0기가 아닌 1,2기 혹은 그보다 더 위험할 때 알았다면 지금쯤 글로 쓰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유방상피내암이 아닌 유방암이었다면 생명이 더욱 위험했겠지. 언니의 말대로 가슴 없이 살면 어때. 어차피 잘 살고 있는데. 한동안 뉴스에서 발암물질 나오는 가슴 보형물 때문에 시끄러웠다. 외적인 성형을 위해서 한 사람과 유방암 전절제 수술을 하고 보정 수술을 한 사람이나 똑같이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우습게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때 수술을 하지 않았던 게 어쩌면 큰 행운이지 않았을까? 초조하게 안에 들어 있는 보형 물질을 알아보고 제거 수술을 해야 되는 번거로움과 돈도 들고 아프기까지 한 과정을 다시 경험하지 않아도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더 바라지 않았기에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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