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 세상이 하얬다.
그림책 '눈의 여왕' 세상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전 날 저녁부터 눈발이 조금씩 흩날리더니
방앗간에서 빻아놓은 쌀가루처럼 굵어졌다가
점점 더 많은 눈발이 날렸다.
눈은 아침까지 내리고 있었다.
눈 내리는 풍경에 빠져보고 싶었다.
털이 꽉 들어찬 뚱뚱한 부츠를 신고,
긴 패딩으로 중무장을 한 뒤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귤밭 사잇길 하얀 눈길을 밟을 때,
발밑에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는 하얀 세상으로 덮여 있는 길 가운데에 그냥 누웠다.
어린 시절 눈싸움을 하고 놀았던 순간들이 떠올라서일까?
헤어졌던 연인과의 추억이 떠올라서였을까?
눈송이가 내 얼굴에 내려 앉았다.
팔다리를 위 아래로 움직였다가 다시 아래위로 움직였다.
사람 컴퍼스처럼...
춥진 않았다.
눈 침대 위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입을 한껏 벌였다.
눈송이가 얼굴에 눈두덩이에 콧구멍에 입안에 떨어졌다.
차가운 경쾌함이 내 안으로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