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목(冬木)의 옷을 누가 벗겼는가?
융동설한에 아무것도 걸친 게 없다
잎새와 꽃과 열매의 미련도 내려놓았다
무소유의 일념으로
티끌도 남기지 않는 깨끗함이다
낙목한풍이 불어와도 어질게 있는 것은
어쩌다 남겨질지모를 철없는 잎새 때문이다
주인 잃은 둥지도 노쇠하여
나그네의 머물고 싶음도 지나가
하늘표의 하얀 드레스로 유혹해 본다
기웃거림도 없는 가슴 뚫린 공기뿐이다
살아있음을 알리는 무언의 침묵과
숱하게 찾아든 날갯짓의 흔적이
남루한 오두막을 지키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기다림이다
검은 문신 그려놓은 탓에
부끄러워 숨을 죽인다
산천초목 동일한 감정으로
따듯할까 쉼 박수 늘려 봐도
깊어가는 외로움은 꽁꽁 얼어붙는다
춥다는 신호를 알린 죄로
한 꺼풀 두 꺼풀 내어준다
아니라 급한 대로 주우려 해도 낙장불입
품세 잃은 헐거운 알몸으로
한 계절 살아보라 한다
세월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는
속앓이를 나이테로 쌓는다
피고 지다 두꺼워진 어두운 밤과
떨고 있는 느림보 새벽을 위하여
아낙의 불질에 냅다 뛰어든다
행복한 동목이 어디 있는지
소리 높여 뚜렷하게 남긴 발자국과
먼산 보는 무심한 가지에게 간절히 묻는다
얼었다가 녹아져 신분 잃은 낙엽만이
헐어버린 입으로 하얀 말을 한다
초조하게 버텨온 잔설이 무너지고
쉬는 밤 짧아지면 차가운 손님을
들판에 살이 붙어
몸통 사이로 삐져나오는 삶을 위해
아프지만 놓아줘야 한다
겨울나무에는 심연이 있다
그곳엔 얼지 못하는 생명이 자란다
갈라지고 거칠어진 살결로 덮은 것은
사랑의 징표이고
벗은 것이 아니라 봄날을 위한 꽃단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