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ING : 제2화 불꽃이 붙은 나비 날개

by 청사

존재하는 것의 묵언은 떼창이었다. 맑은 하늘을 나는 바람은 요란한 환호성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행방을 모르게 질주하며 파동을 일으키는 자동차, 과거나 현재나 변신을 모르고 일편단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체 건강한 건물, 숨을 쉬도록 내주어도 과시하지 않으며 영웅심에 무감각한 공기, 시시각각 다양한 개성을 갖고 응원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얼굴을 가진 과묵한 하늘, 밟는 것보다 달리는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온몸으로 발열하는 아스팔트, 옷깃을 대가 없이 조용하게 흔쾌히 흔들어주는 가로수 등이 보여주는 신선한 눈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기다리고 있는 빈 의자를 향해 액셀레이더를 힘껏 밟았다. 휘몰아치는 바닷바람에 역비행하는 갈매기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예정된 빈 의자와 마주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갔다. 어제와 오늘이 하나인 듯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비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침착한 아침에 어울리는 사뿐하고 절제된 발걸음으로 집무실 옆에 있는 본부장실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심한 거부감과 난폭한 난도질에 대한 어떤 반추도 없이 검은 옷을 입은 빈 의자가, 공허할 정도로 무심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황금빛이나 노란색이 아니어서 다행스럽고 안심이 됐다. 지난주 내내 머릿속에서 강하게 추었던 난무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소문은 소문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듯이 속내를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충직한 모습이었다. 앉으려고 살짝 뒤로 끌어 공간을 만들자, 대면인사라도 하듯이 가볍게 회전하면서 어떤 반역이나 역행할 마음이 없다는 듯이 적나라하게 온몸을 보여줬다. 주어진 기회가 날아갈까 봐 잽싸게 손으로 잡고 털버덕 앉았다. 몸과 의자가 하나이기를 확인하기 위해 좌로도 우로도 힘차게 돌렸다. 조용한 의자 바람이 일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황금빛 의자와 그 주인의 모습이 눈앞에 연인처럼 아른거렸다.

검은 빈 의자를 마련한 황금빛 의자의 정총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주인이고 보스다. 전반적인 스타일은 매우 싸늘하지만 깔끔했다. 얼굴 생김새는 구성요소가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어서 그런지 빈틈이 없다. 언뜻 보기엔 시골 촌놈이 머리에 푸마 기름을 바르고 위엄을 높이려는 의도된 모습이 확연하게 노출되었다. 그리고 돈이 빚어내는 달콤한 맛을 지속적으로 삼켜버린 몸뚱이가 뿜어내는 허풍의 부상을 자랑질할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애당초 부유한 집에서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돈벼락을 맞았거나, 투자를 잘해 벼락부자가 되었거나, 건설 붐을 타고 한탕을 한 돈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허깨비 같은 졸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시사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덥거나 춥거나 관계없이 검은 계통의 명품 정장에다 조끼를 입었다. 양복은 상의와 하의를 정열이라도 하듯 통일감을 주는 패션을 좋아했고, 타인들도 그렇게 입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양복의 상태를 보면, 단벌 신사 내지는 두 세벌 정도로 돌아가면서 입거나, 아니면 동일한 색깔이나 색감을 가진 양복을 많이 구입해서 입고 다니는지 항상 동일한 인상을 느끼게 했다. 그처럼 의도적이며 의식적인 패션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대신에 항상 깨끗하고 정갈했기에 신사 같은 느낌을 줬고,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에게 양복은 패션이라기보다는 예의범절이고 권력이고 사회적 지위였고 자신감이었다. 검은 양복과 권력은 그렇게 하나로 몸에 베여 한치도 균열도 보이지 않았다.

양복의 겉과 속 그리고 조끼 주머니에는 무엇인가가 가득 들어있어 마치 양복이 외투처럼 두툼하고 무거웠다. ‘양복을 입으면 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원칙을 봄이나 여름, 가을이나 겨울에도 고수했다. 조끼를 입기 위해서 양복을 입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끼는 내부를 다스리는 안방마님과 같은 그런 존재였고, 축적된 힘을 넣어 두는 최적의 장소였으며, 비밀과 역량을 감추는 중요한 요새와 같았다.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양복 안주머니에는 회의나 잠깐의 만남에서 생기는 좋은 아이디어나 기억할 내용을 기록할 수 있도록 수첩과 볼펜이 준비됐다. 수첩에 적힌 빽빽한 일정은 애첩과의 밀회를 적어 둔 듯 정성을 들여 썼다. 그것은 외부인을 만날 때 종종 좋은 화두를 제공했다. 사회적 위상을 자랑하기 위해 준비한 병기나 다름이 없었다. 넥타이는 타고난 하얀 피부를 돋보이도록 깔끔하고 수려한 노란색이나 핑크색이었다. 넥타이는 항상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겹치거나 구겨지지 않도록 똑바르고 반듯하게 매었고, 황금색의 넥타이핀을 사용했다. 나름대로 고상하게 보이고 싶은,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냄새가 흥건하게 풍기는 그런 콘셉트이었다.

이목구비는 잘생긴 미남처럼 뚜렷하게 굴곡진 선명한 선이 아니지만 곱게 이어지는 가느다란 곡선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느다란 실선의 조합은 가까이 있는 누군가와 상통하는 점이 있었고, 서로 교류하게 하는 매력적인 청신호처럼 보였다. 섬세함으로 연결된 외모는 어딘가 모르게 조용하고 반듯한 질서를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즉각적이고 직선적으로 호감을 유발하는 강력한 인자로 작용했다. 몸집은 보통이었고, 키는 아담하고 적당했으나 어딘가 조금은 왜소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오밀조밀한 선으로 만들어내는 잔잔한 미소와 굵은 쇳소리 말투는 일품이어서 한 번 보거나 들으면 바로 매료되는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했다. 그는 물려받은 천연의 신체가 발하는 호감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고 내재된 약점을 숨기거나 덮는데 활용했다.

그는 전제적으로 보면, 전횡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독단적인 독재자와 같이 거대한 공포감을 주거나 포악함을 주지는 않지만 중압감을 주는 카리스마를 풍겼다. 다만 그를 마주하게 되면, 부드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그런 성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완전하게 떨치도록 매사에 단호했다. 따라서 어떤 여지나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하지 않았다.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숨겼고, 위협적인 기운을 느꼈으며, 신뢰할 수 있는지라는 의구심보다는 그냥 따르면 되겠다는 감각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타인이 알지 못하는 매우 연약하고 깊은 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리고 단번에 무장해제가 될 수 있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신을 잘 알기에 상대방의 언행에 대응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세밀하게 계획된 언어와 행동을 통해서 위엄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정과 냉담을 구분하기 어려운 난해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그가 누구이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규정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특히 성격상 지금까지, 대학 운영과 관련된 대부분의 구상과 계획은 스스로 연출하고 기획했다. 교육과정을 제외하고, 인사, 홍보, 각종 정책과 운영, 미래 마스터플랜, 캠퍼스 조성 등을 독자적으로 관장했다. 예를 들면, 캠퍼스를 확장하는데 부지선정, 건물형태, 벽돌 모양이나 색깔, 창문과 내부 인테리어, 문, 조경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관철했다. 그런 것을 보면, 전형적으로 머리 좋은 사람처럼 인식되었고, 전능한 힘을 갖춘 지도자미며, 변신 잘하는 카멜레온처럼 행동했다. 기획된 내용에 대한 이의제기나 토론은 없었다.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깊숙이 파면 팔수록 도전하는 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신분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론하다 죽은 사람은 없었다. 구상이나 계획을 실천하는 위치에 있거나 실행 명령을 받은 사람은 문제가 발생할 때나, 계획이 잘못되어 어긋나거나 실패하면 온몸으로 알아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항상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전능한 존재로 있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있는 부하는 일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거나 꿀벌처럼 꿀을 따다 바치면 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많은 고급노예를 다스리고 통제하는 인간농장주나 다름이 없었다.

닭의 세계나 사자의 세계나 원숭이 세계처럼 그는 오로지 힘을 바탕으로 혼자 무리를 독점적으로 지배해야 하고 그 구성원을 통제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왕이었다. 운영, 회계결과, 구조개혁 등의 결과물이 어디로 갔는지, 무엇에 쓰였는지에 대해서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나 지표를 공개하지 않아 알 수 없었다. 더욱이 그 결과에 대해서 비판이나 문제제기는 물론 언급하거나 최종 행선지가 어디인지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신이 세운 선악의 규범, 인간이 가진 양심, 전문적 경영체계는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판단하는데 또는 받아들이는 기준으로 삼는데 매우 위험한 도구에 불과했다. 피상적으로 노출된 그의 저돌적인 행동은 다음 세대를 위해 상처를 입으며 죽음을 향해 거꾸로 도도하게 회귀하는 연어의 몸부림이었고, 그가 숨기고 있는 자신감은 연어 가죽만을 벗겨 먹으며 몸체를 버리는 배부른 곰의 거드름이었다.

그러나 그가 동물 세계에 군림하고 암컷을 지배하는 사자처럼, 권력을 독점하고 구성원을 지배하고, 구조개혁과 구조조정을 하여 미래로 가려는 철저하고 확고한 의지는 자신의 개인 이익이나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명감이었다. 공동체 생존을 위한 철학이었고 신념이었고 고육지책이었다. 공동체를 위해서, 그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집단이익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역량을 통절하게 쏟아부어 희생한 것은 진심이었고 진실이었고 참이었다. 그러나 철저하게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이나 구성원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대학을 운영하였고, 그것이 공익과 공동체 정의의 실현이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그는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인 권력자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고도로 절제하며 공동체의 존치를 위해서 전력을 다해온 애교주의자였다. 그가 그렇게 지독하게 권력을 갖으려 했고, 놓지 않으려는 것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위험성과 폭발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가십이나 스캔들에 대한 괴소문이나 권력행사에 대한 불법성을 밝힐 수 있는 근거나 설명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없는 것인지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인지, 사전에 예방하거나 억제하여 삭제하는 것인지 그만이 알았고 주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존재나 눈에 보이는 존재를 장악했기에 그의 손아귀에 들은 것은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벗어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인식하지 못한 것일 뿐 알고 놓아준 것이 아니었다. 권력자의 욕망에는 물욕과 성욕이 동반한다는 통설 같은 속설은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 사실상 무용지물의 전언이었고, 허공에 떠도는 헛소리이며, 머물지 못하고 지나가는 바람이고, 역류하지 못하고 물결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지키는 특이하고 그만이 가지고 있는 처세술이 있었다. 그것은 매우 명확하고 정나라 하게 사실을 보는 혜안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어 잘 대응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먹잇감으로 만드는 놀라운 기술이었다. 일단 논쟁이나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이 되면, 전쟁과 같은 전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주먹질하면 몽둥이로 내리쳤고, 몽둥이로 도전하면 칼과 같은 더욱 강한 무기로 대응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어떤 이유로든 그와 싸워 이긴 사람이나 그가 패배한 경우는 없었다. 돈으로 경쟁하거나 법으로 대결을 해도 동일한 결과를 내는 신비로운 싸움꾼이고 처세의 귀재였다. 천부적으로 싸움을 할 수 있는 기질을 갖고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을 망하게 하는 특출 난 마법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실패자를 양산하고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고, 그 대가로 포획물을 획득하는 승리자가 됐다. 이해관계에서 최소한 상생을 할 수 있는 협상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아니 그럴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승리의 전유물은 훈장처럼 사진을 찍어 집무실이나 복도에 빽빽하게 나열해 놓아 모두가 보도록 했다. 아름다운 화해와 형제애와 같은 살가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치열하게 싸운 결과로 생긴 상처가 부드러운 연고로 포장된 것에 불과했고, 가시적이며 과시적인 평화로 인식될 뿐이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일방적인 승리의 신호였고, 힘차게 흔드는 악수는 자기중심적 질서 세우기의 완성을 의미하는 춤사위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끔 절제할 수 없어 발산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악의가 없는 전지전능한 신의 선을 악으로 이용한 미친 성직자나, 노동을 착취하여 하마처럼 돈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가나, 성범죄를 저지르고 뒤집기 하는 치한과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누설되거나 공개된 적이 없어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밝혀지지 않은 내재적 사실들이 있다면, 언젠가는 작은 균열이 도화선이 되어 터질 가능성을 가졌다. 들어가 보지 않은 숲 속의 동굴처럼 그가 만든 비밀의 세계에는 황금이 있는지 주검의 시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비밀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고의 처방이라는 것을 잘 알아 활용했다.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폭발이 멈추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위험하게 작동하고 있는 사실은 그가 지키고 있는 비밀들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혼자만의 자만심이었다. 그것은 마치 엉성하게 뒤틀리게 잘못 쌓아놓은 성벽과도 같았다. 해돋이로 한꺼번에 무너지는 밤이나 아름다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햇빛으로 쌓아 올린 그림자처럼 일순간에 사라지는 그런 붕괴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잔금이 많이 있는 금이 간 다이아몬드나 미끈하게 잘 빠진 가짜 진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이 종종 발생했다.

가느다랗고 섬세한 선으로 연결된 미세함은 그가 추구하는 추학과 미학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의 균형은 그가 기획한 계획을 추진하는 행동과 연결되어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중에서 하나가 누락되거나 잘못 작동하면 전체가 화마에 휩싸이는 단초가 될 것 같은 성질을 가졌다. 그것은 잘 매진 넥타이와도 같았다. 때로는 몸과 마음의 정갈한 미를 돋보이고 유지하는 지킴이기도 하지만, 언제든지 목을 조를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잡동사니를 담고 있는 주머니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 사연을 묶어두거나 세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점차 중력을 이기지 못해 터지거나 넘치게 할 수 있는 원흉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잘 맞춰진 사금파리 모자이크처럼 조직화된 성공신화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내포하고 있는 위기와 불안요소를 제압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었다. 세간에는 그의 성공, 권력, 특권, 신분, 유희, 신화 등을 칭송하고 있지만, 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뜨거운 햇빛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눈사람 같은 운명에 있는 듯했다.

물이 고이면 냄새가 나 벌레가 생기는 자연법칙은 그가 강력하게 다스리고 있는 인간농장에도 적용되었다. 그가 만든 연못의 물길을 막는 암흑세력들이 있었던 것이다. 섞어가는 고기에 똥파리가 끼듯이, 권력을 정체시켜 부패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향기로 맞는 권력관종들이 숨죽이고 파리처럼 양발을 비비며 아부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들은 악함을 감추고 생존하기 위해 나약한 척 몸체를 굴리는 구더기와 같은 존재였다.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빌붙었고, 죽는지 사는지에 관계없이 돌진했다. 전지적 권력이든 눈먼 권력이든 작동하는 곳이라면, 권력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서라면 공간만 생기면 빨대를 꽂아 끊임없이 빨아댔다. 겉으로는 진솔하게 보좌하고 충성할 것을 맹세했지만, 결코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고, 지독한 냄새가 펄펄 풍기는 하수구 방향으로 주둥이를 들이미는데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전혀 없었다.

권력자의 주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도적으로 유인한 눈깜박 마주침을 총애로 받아들여 어깨에 힘을 주고 위력을 행사하는 우매한 인간들이 스스로 농장에 들어가 사육되고 있는 형상이었다. 권력이라는 달콤한 먹이에 매몰되어 흡수되고 있었다. 정당성이나 객관적인 진실성이 담보하지 못해도, 사실관계나 인과관계의 확신이 없어도 아전인수하는 것은 당연했을 뿐 아니라 눈속임으로 사기행각을 서슴지 않았고 권력자를 향해 딸랑딸랑거리는 연체동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워지지 않아 존재하지도 않는 굴뚝이 있는 듯이 슬금슬금 무조적으로 충성하는 검은 마음을 피웠다. 정도의 길을 포기한 권력은 옆길로 가서 위력이 되었고, 올바름을 가식 하는 중간지도자는 뒷길로 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스스로 타락한 길을 내고 은밀하게 걸었다. 인간농장은 파릇파릇 싹이 자라 탐스러운 지식인이나 인재를 키우는 상아탑이 아니라 음산하고 축축한 습지가 되어 미꾸라지들의 놀이터로 점점 변해갔다.

맑고 투명한 하얀 하늘이 먹구름의 농간으로 상처 입은 검푸른 색으로 멍드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체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서라는 슬로건 하에서 개혁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대학구성원을 옥죄는 작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지해 오던 호봉제가 경쟁으로 몰아가는 연봉제로 전환되고, 인원삭감, 각종 부속기관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담보하기 위한 구조개혁과 균형예산을 위한 제도개혁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공동체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제고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구성원을 살려야 한다는 공동체 정의라는 명분이 독재를 위한 고속도로 내기라는 음모론에 매몰되고 있었다. 그런 순풍과 역풍의 마주침은 거대한 폭풍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빈 의자의 주인 본부장은 진퇴양난에 빠져 허부적대고 있었다. 사활을 건 명분 간의 투쟁이 목 조르고 있는 상황에 어떻게든 개입하지 않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생존전략으로 빈 의자에 앉으며 입과 귀와 눈에 자갈을 물리고 인내할 것이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포기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용기가 아직 겉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개혁바람으로 폭풍전야에 놓인 구성원은 결코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여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각자의 지위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각개전투와 서바이벌 혈투를 마다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다. 공동체가 개별체에 의해 완전하게 무너지는 상황이 되면서, 그동안 끈끈하게 생긴 개인 간의 믿음이나 신뢰감은 점차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공동체 생존을 위한 다수의 결집과 결기의 움직임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정당하다는 권력과 부당하다는 권력 간의 싸움이 표면화되고, 그 사이에 생기는 틈새를 파고들어 이용하는 제3의 얌체 세력도 발생하면서 생존전선에는 서로 다른 날을 가진 칼들이 서로를 향하고 있어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하였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숨 막히고 세밀한 음모가 기획되는 가운데 위장한 배신과 가식적인 충성이 각자 옳다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어느 길이 옳고 그른 가라고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나 명분의 정당성에 대한 뜨거운 논란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이면에서 숨어있었다. 정총장의 타고난 억압기술이 발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박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호출하는 반비서의 목소리는 위기에 처한 본부장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기에 은혜로운 신호였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였고, 정상에서 한 모금 마시는 생명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비록 그런 호출이 이득이 되거나 소용돌이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하거나 빠져나올 수 있는 사다리 기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힘을 가진 권력자의 거침없는 권력 행사에 발을 맞춰야 하는 임무와 반대세력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상황을 잠시 멈추게 하여, 머릿속을 비우는 휴식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비서가 중요하게 된 이유였다. 어느 날 낭랑한 반비서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날아들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해방시키는 소식이라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본부장님, 오늘 저녁에 정총장님과 일본 손님과의 만찬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나는 대로 접견실로 오시면 됩니다.”

“하시모토 회장님인가요?”

“네.”

“오늘 만찬은 어디에서 하는가요?”

“전에 가셨던 호텔이에요.”

“반비서도 동행하는가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부장은 반비서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총장과 합석하는 만찬에는 내성이 붙었다고는 하나 반비서가 있으므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에는 도움이 된다는 의미와 잘 부탁하는 의미가 함의도어 있었다. 정총장과 손님과 함께 호텔에서 먹는 품격 있는 스테이크보다는 홀로 자유롭게 퍼질러 앉아 게걸스럽게 김치를 얹어 먹는 라면이 진수성찬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가끔 정총장은 식사하기 전 두툼한 고깃덩이를 뚝 잘라 본부장 접시에 아까운 듯이 던져 놓곤 했다. “다이어트 중이야.”라고 하면서 얼굴을 한번 보고 웃으며 주는 행위에는 나름대로의 깊은 배려와 의도가 있었다. 진짜 다이어트를 위한 던짐인지 아니며 충성에 대한 보상인지 모르지만 받은 것을 되돌려 준 적이나 기분 나쁘게 표현하거나 거부한 적은 없었다. 가끔 반비서에게 던질까 또는 본부장에게 던질까 망설이는 장면을 보곤 했다.

오래된 허물없는 친구 사이로 일본에 사는 하시모토(橋本卓也) 회장은 성공한 일본기업가였다. 많은 기업을 운영하고 거대한 부를 쌓은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는 하얀 양복에 백구두를 즐겼다. 외모는 마음속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었고, 절제라는 단어를 모르는 인물처럼 자유로웠다. 과격하고 직설적인 말투, 날렵하고 단단한 몸놀림, 낙천적인 사고 등 불량아의 삼박자를 갖추고 있는 듯했다. 잘못 보면 바람둥이나 야쿠자라고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았고, 건방진 지식인이라고 해도 어긋날 것 같지 않았다. 한국기업과 거래를 하면서 한국어를 배워 발음이 어눌하게 들리지만, 상황에 잘 맞는 단어를 정확하게 표현했다. 한국어를 일본어 감각적으로 다루어 언어 능통자라고 인식할 때도 있었다. 그의 화통한 친화력은 그가 매우 좋은 일본사람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친한파처럼 느끼게도 했다.

딱딱한 격식이 필요 없었고, 경어로 형식을 만드는 어색함 없이 편하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자유롭게 섞어가며 대화를 했기에 나름대로 유쾌한 접점이 있는 살가운 이야기가 몽실몽실 피어나기도 했다. 합석한 여비서는 “정총장님 이 요리가 아주 맛있어요. 회장님께서도 ...”라고 하며 마치 자기 집에서 식사하는 것처럼 거침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런 반비서의 립서비스는 만찬과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또한 즐겁게 했다. 눈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시간차 없는 손놀림과 입놀림으로 맛과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정총장의 묵인된 허락이 있는 듯이 보였고,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관계를 능가한다는 증표로 해석하는데 충분한 언행이었다. 그러나 그런 속사정의 진위에 대해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본부장의 생각도 거기에 머물고 있는 뿐이었다.

정총장과 하시모토 회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문제와 대학이 처한 위기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시모토 회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더불어 일본에서의 대학 개혁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방향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묘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어서 약간의 농담이 오가는 틈새를 이용해서 하시모토 회장은 즉석에서 “이번에는 장학금 3천만 엔”이라고 하며 두툼한 봉투를 내놓았다. 휘향 찬란한 봉투를 보면, 정성과 마음을 담았다는 것과 본인의 자부심도 잔뜩 넣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본부장은 그런 상황에 대해서 처음 목격하였지만, 하시모토 회장의 자연스러운 언동은 주기적으로 장학금을 기부해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학에 하시모토 회장이나 그 회사의 이름으로 장학금이 지급된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혹시 정총장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는지 정총장은 “본부장 하고 반비서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세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사담을 나누기 위한 응급조치라고 인식하면서도 무엇인가 비밀이 있는 듯해 석연치 않은 말꼬리가 생겨났다. 밖으로 나오면서 사적인 인연에 의해서 기부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장학금이라고 목적과 사용처를 언급한 것이라면, 그것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 장학금은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가 궁금해졌다. 미묘한 상황이 정리가 된 듯하여 본부장과 반비서는 다시 합석했다. 앉는 순간 반비서는 직격탄을 날렸다. “장학금은 소중한 곳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시모토 회장은 “아 그래요.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정총장은 “개인적으로 좋은 친구이고, 우리 대학 입장에서는 매우 귀한 분이지.”라고 말했다. 하시모토 회장은 그 대화에 만족한다는 듯이 껄껄껄 웃으며 다른 화두를 꺼냈다.

“정총장님 시간이 되시면, 일본에 한 번 오시죠. 좋은 곳을 안내해 드릴게요.”

“예, 언제든 갈 수 있죠.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좋은 일이 있어 가야 합니다. 일본외무성 산하재단에서 포상을 받을 예정입니다.”

“네? 그래요, 축하합니다.”

“아마도 그 단체의 명예총재로 있는 명문가의 당주가 직접 수여하는 모양입니다.”

“아주 잘 됐습니다. 아주 명예로운 상이 될 것 같습니다. 크게 한턱내겠습니다.”

“반비서, 일정을 확인하고 출장 스케줄을 잡아봐”

“저도 동행하는가요?”

“이번에는 즐거운 행사이니 모두 같이 가지 뭐.”

“반비서에게는 수고에 대한 보너스이고, 본부장에게는 노고를 치하하는 셈이야.”

반비서는 “동행하는데 무슨 휴가람”이라고 속삭이며 “본부장님도 수고 많이 하시겠네요. 잘 부탁드려요.”

“뭐 수고라고까지...”

공동체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정총장의 화기애애하게 들뜬 마음, 하시모토 회장의 유쾌한 기부, 반비서의 살가운 언동 등은 만찬장을 화려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개혁인가 아니면 개인의 권력유지인가에 대한 진위의 물음과 함께 이번에는 장학금의 쓰임새에 대한 의문이 더해져 복잡하게 되었다. 그런 의문점은 해우소에서의 미완 같은 움직임으로 재생되는 듯했다. 특히 사석에서 장학금수수로 유난히 들떠 있던 정총장은 그와 관련된 작은 불씨를 감지라도 했다는 듯이 하시모토 회장의 얼굴을 보며 큰 소리로 “고맙소.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할 것입니다.”라고 반복해서 말을 했다. 그리고는 하시모토 회장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의구심을 털어내려는 듯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상하로 크게 흔들었다. 자신의 마음을 세뇌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처세법이었다. 그러나 손의 흔들림 속에는 장학금에 얽힌 사연뿐 아니라 많은 비밀들이 우수수 땅바닥에 나뒹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공동체 존립과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끈질기게 지켜온 권력의 분신인 황금빛 의자가 불꽃이 붙은 나비 날개처럼 위험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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