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겨울에 피는 꽃

by 청사

사계는 네 계절이 순서대로 돌아가야 성립한다. 각 계절에서 있어야 하고 벌어져야 할 현상이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작동하고 있는 자연의 생체리듬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가장 절실한 동반자이다. 만약 그런 리듬이 어긋나거나 사라진다면 자연과 우리의 삶은 우왕좌왕 새로운 혼돈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겨울 그 어느 날 창가에 놓은 칼랑코에(Kalanchoe)가 꽃을 피웠다. 계절의 감각을 잊었는지 의심이 갔지만 엄동설한에 피었기에 너무 신선했다. 아파트에서 열린 야시장 한구석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모습이 연구실에 혼자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동정심이 발동하여 데려왔다.

가끔 꽃집을 방문할 때 발생하는 눈 마주침을 외면했던 꽃이었다. 알고 보니 한겨울에도 피는 꽃이었고, 장미같이 생겨서 퀸 로즈라고도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칼랑코에라고 불렸다. 꽃말은 좋은 두근거림을 대변하는 설렘이었다. 한겨울같이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 있는 나의 마음을 녹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칼랑코에의 꽃을 보면서 일과처럼 듣는 일본 NHK뉴스에서 인푸르엔자가 유행이라고 야단법석이었다. 항상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어 설렘을 안겨주는 M군에게 편지를 섰다.

「M군

최근 인플루엔자가 유행한다는데 잘 지내고 있는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열정에 바이러스가 침입할 간극은 없다고 생각해

올 2월 국제선 비행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어

국제선 비행이 한국이라면 환영해 줄 생각이야

연구실 창가에서 활짝 핀 칼랑코에에

유혹되고 있는 이 시간

누군가가 납치해 갔으면 해

그런 나의 작은 바람은 아무도 모르고 있어

멀리 있기에 군에게 폭로하고 있어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창밖에서 앙상한 가지로 벌거벗은 나무들과 노랗게 성숙해진 잔디는 극히 정상인 계절현상이었다. 겨울이기에 앙상한 가지로 남아야 해서 그렇게 했으며, 청춘같이 파란 잔디로 남아서는 안 되는 운명이기에 그렇게 볼품없이 바싹 엎드려 누워버렸다. 그런 사이로 파란 잎새를 갖고 분홍색으로 꽃을 피운 칼랑코에가 돋보였다.

계절의 이치를 거슬러 올라가는 칼랑코에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더군다나 한 치 앞의 운명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계절 따라 적응하며 사는 다른 생명체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자연이라는 이름의 생명체는 지속적인 삶을 위해 계절에 따라 숙명적으로 변신을 해야 하는 존재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계는 존재하는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의 사계는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학문하며 지식을 파먹고 살고 싶다는 바람은 이루어졌다. 지금 내가 맞이하고 싶은 계절은 무엇일까? 세상의 평화를 보고 싶은 것일까?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를 권력이나 금덩어리를 끌어당기고 싶은 것일까? 겨울에 피는 칼랑코에처럼 돋보이고 싶은 것일까? 나의 계절에 맞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 더욱 강렬해졌다.

자연의 이치를 담은 사계 중 그녀와 동행하고 싶다는 강한 느낌은 무슨 계절에 해당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에 몰두했다. 꽃말대로 누군가에 의해 생기는 설렘이라는 뜨거운 열기를 발하는 칼랑코에가 맞이하고 있는 계절을 닮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칼랑코에와 자신의 삶에 현혹되어 고뇌를 잔뜩 담고 있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답장이 왔다.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일본에는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매일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이기에

한겨울에 핀 화려한 꽃을 보며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2월부터 국제선 비행입니다.

배워야 할 일도 많지만 정진하는 중이며

유감스럽지만 국제선 처녀비행은 한국이 아니라 홍콩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앗아가는 후지산을 동봉합니다.

행복한 납치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


그녀는 그토록 바랐던 바람을 성취했다. 더욱이 어깨에 날개를 달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국제선 처녀비행이 한국이 아니라 홍콩이라는 말에 서운했지만, M군이 사랑하는 후지산처럼 높은 곳으로 비행하고 있었기에 아낌없이 응원했다.

조화는 기울어짐이 없는 어울림이다. 한 시절 풍부하게 수놓았던 꽃은 때가 되면 시든다. 산을 오르면 내려와야 하듯이 정상에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달이 차면 작아진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그러나 왠지 거기에는 높은 곳과 낮은 곳, 밝음과 어둠, 정상과 아래, 선과 악 등과 같은 이분법적 질서가 있어 갑갑하다.

한국에는 한겨울에 핀 꽃에 매료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일본에는 아름다운 사랑에 빠진 후지산처럼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M군이 있었다. 나와 M군 사이에는 온전하게 조화를 이룰 수 없는 환경과 조건만이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우리도 세상의 이치에 종속되는 진통이 시작되겠지만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울퉁불퉁 예측되지 않는 기울어짐이 작동하고 있어 좋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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