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까놓고 싶은 독백

by 청사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빛과 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희망과 절망이 겹쳐 있는 경계상황이다.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거나 탈출구를 찾아 돌진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도 터널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것은 절망으로 가는 길이다.

희망은 그리스신화에서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가 호기심으로 판도라 상자를 열자, 거기에서 모든 악(惡)이 넘쳐났고, 최후로 상자의 밑에 남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희망은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천이며 선(善)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선으로 가는 희망에는 강한 긍정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다. 희망과 동반되는 힘은 현실적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작용한다. 악으로 가는 절망에는 부정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다. 절망에 동반되는 힘은 현실적으로 우리를 살아가지 못하게 작용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에는 희망과 절망이라는 양면의 길이 숨겨져 있다.

희망의 반대편에 있는 절망에서 파생되는 현상은 매우 다발적이며 다양하게 존재한다. 희망을 무너트리거나 짓밟거나 왜곡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절망과 연결되는 부정적인 개념은 칼보다도 날카롭게 그리고 총보다도 더 살상적인 악으로 변신한다.


<희망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

희망을 잃으면 실망이

희망을 훔쳐 가면 도망이

희망을 방관하면 관망이

희망을 사기 치면 기망이

희망을 배반하면 원망이

희망을 무너뜨리면 폐망이

희망을 깨면 멸망이

희망을 부끄럽게 하면 민망이

희망을 거칠게 하면 야망이

희망을 사라지게 하면 허망이

희망을 과하게 부리면 욕망이

희망을 포기하면 절망이 된다.


그렇기에 희망은 망치는 자의 것이 아니다. 희망은 부정적인 주체가 가져서 희롱하거나 독재거나 멸망시키거나 죽여서도 안된다. 불량한 양심과 과욕을 자신 자가 희망을 갖게 되면 파멸이나 저주나 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희망의 반대편에 있는 현상과 존재를 억제하거나 박멸해야 하는 이유이다.

반대로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힘은 희망이다. 희망은 인간을 소중하게 하거나 살리거나 살아가게 한다. 희망과 관련된 긍정적인 개념들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 인간계를 아름답게 하기도 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희망 편에 있는 것들>

희망을 품으면 소망이

희망을 그리워하면 선망이

희망을 펼치면 전망이

희망을 가지면 지망이

희망을 불태우면 열망이

희망을 밝게 하면 유망이

희망을 잘 나가게 하면 촉망이

희망을 갈구하면 갈망이

희망을 넓게 하면 덕망이

희망을 촘촘히 쌓으면 신망이

희망을 키우면 대망이 된다.


그래서 희망은 살리는 자의 것이다. 생명을 가진 피조물 중에 희망을 전유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다. 희망은 발전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나 정당한 사람이 가질 때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찬란한 선을 낳게 된다.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아름다운 꽃으로 피우지는 못한다.

나는 지금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M군에 대해서 불안한 독백 속에 빠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에 발생하는 ‘좋은 희망’이라고 여기기에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좋은 희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묘사하기 어렵다. 다만 절망이 아니라는 감각적 판단을 하고 있을 뿐이다.

독백 속에서 희망과 절망이라는 구도에서 헤매어 명백하게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 이성적인 시각에서 보려는 힘과 감성적인 느낌으로 보려는 힘이 교차하는 데서 오는 흔들림인지도 모른다. 그 흔들림은 희망과 절망이 동전과 같은 이치에서 항상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에 의지하면서 그녀와 함께 멀리 가고 싶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감정이입이 끌어가는 구도가 아니라 흔들림이 없는 이성(理性)으로 동행해야 한다. 나의 미래, 이성, 감성 등에서 처음처럼 살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 심장에서 움직이는 ‘좋은 희망’의 정체인지도 모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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