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는 축복이다. 움직이는 대로 가는 마음이고 아름다운 선택이다. 반지는 머무르고 싶은 둥지이고,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는 해방공간이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위한 그리고 기다리고 싶은 사람을 위한 선물이다. 나는 그렇게 행복을 담은 반지를 사야 한다는 단순 사고에 빠졌다.
반지(斑指)는 나누어진 반쪽짜리 링이다. 한 쌍의 링을 의미하는 가락지를 나눈 것이다. 남과 여가 반지를 교환했다는 것은 하나의 가락지를 나누어 가진 것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반지는 섣부르게 주거나 냉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지는 약탈한 신부의 팔에 채운 굴레가 변화한 것,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허리에 띠를 두르던 관습, 상형문자에서 동그라미가 영원을 의미하듯 영원히 함께 하는 결합, 인간을 위해 희생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등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자, 인간을 창조한 신, 인간의 옹호자 등을 의미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푸스 신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로 준 죄로, 코카서스 산에 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수행해야 했던 열두 가지 과업 중 하나인 황금사과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고통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를 구해준다. 프로메테우스는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를 기념하기 위하여 자신의 손과 발을 묶고 있던 쇠를 동그랗게 만들어 손가락에 끼었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인이 반지를 약속과 결부시켜, 시작과 끝이 없는 ‘원(圓)’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기 시작했다.
반지와 손가락이 결합을 하면 매우 의미가 있는 세상을 만든다. 길조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다. 반지와 손가락이 만드는 신비이고 힘이다. 일반적으로 엄지손가락은 목표 달성과 지도력, 검지는 적극성과 행동력, 중지는 행운 기원과 금전운, 약지는 사랑과 감성, 새끼손가락은 시작의 축복과 소원성취 등을 의미한다.
나는 반지를 선택하기에 앞서 10개의 손가락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반지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손가락의 제왕을 뽑고 있었다. 손가락의 선택은 반지를 주는 사람의 마음인가 아니면 받는 사람의 마음인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두 개의 손가락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약지 손가락이었다. 로마인들은 왼쪽 네 번째 약지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꼈다. 약지에는 사랑이 흐르는 정맥인 베나아모리스(vena amoris, vein of love)가 심장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지 반지를 보내게 되면 사랑의 고백이고 선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너무 나갔기에 아주 빠르게 포기하고 말았다.
그다음이 새끼손가락이었다. 일본 에도(江戸) 시대 유곽(遊廓)의 유녀들이 마음에 든 남성에게 새끼손가락을 끊어 마음을 전달했다는 일화가 있다. 일본 야쿠자 세계에서는 조직에 대한 배신 또는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체벌,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 등의 의미로 새끼손가락을 절단하는 의식이 있다. 새끼손가락은 작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없으며 검을 제대로 쥘 수 없어 전투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나는 약지 손가락을 포기하고 새끼손가락으로 접근했지만, 섬뜩하고 부정적인 일화에 거부감을 느껴 선택하는데 망설이고 말았다. 그러나 일순 그들 내용에서 불현듯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의미가 크게 부각되어 자신도 모르게 과감하게 방점을 찍고 편지를 보냈다.
「M군에게
지금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있지만
새끼손가락의 사이즈를 알지 못합니다.
사이즈 재는 방법을 사진으로 송부하니
체크해 주기 바랍니다.
깜짝 이벤트이기에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듯이
비밀로 해주기 바랍니다.
내가 기대하는 기쁨이고
포기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일화가 아니라 현대적 관점에서 새끼손가락은 여자친구 또는 애인을 뜻하는 은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가장 얇고 짧아 약한 손가락이기에 소중하다는 의미도 있었다. 두 사람의 새끼손가락을 교차하는 행위는 약속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더욱이 새끼손가락은 새로운 출발과 소원성취를 의미했다. 새끼손가락 반지를 보내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선생님께
저는 파리에 있습니다.
쿠마모토(熊本)에서 큰 지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좋은 소식 대신에
몽마르트르 언덕과 에펠탑의 사진을 송부합니다.
현재 새끼손가락 사이즈를 잘 모릅니다.
일본으로 귀국하면 사이즈를 재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좋은 주말이 되길 바랍니다.」
아마도 M군은 새끼손가락 반지를 선택한 것에 만족한 듯했다. 이심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잠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보면서, 언젠가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낄 수 있을까?”라는 허황된 생각을 하며 웃었다. 나의 진심이 그녀의 진심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생겼다.
나는 새끼손가락과 반지를 선택한 이유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역시 M군이 어떤 의미로 새끼손가락 반지를 자연스럽게 받으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새끼손가락과 반지의 의미를 서로 확인하거나 공유하지 못하면서도 주고받는 기쁨에 앞으로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