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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꽃, 사람꽃

by 화수분

지난봄에 겨울땅이 좀 풀린 후에,

창 밖에서 덜덜거리며 큰 밭을 뒤집는 농기계를 구경했었다.

뒤집힌 땅은 벌건 흙이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어느 날

그 벌건 밭에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와!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밭일을 하네?"

"무엇을 심는가 보구먼."


일을 마치고 모두 돌아간 후에도 벌건 밭은 그대로였다.

무엇도 심지 않고 빈 밭 그대로구먼?

궁금한 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뭐.


과연

일주일 이주일 지나면서 새파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가느다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망원경을 바짝 눈에 대고 아무리 보아도 몰랐다.


큰 밭이 점차 푸른 것으로 덮여갔다.

우리 집에 언니들이 놀러 왔다가 그 밭의 작물이 무엇인가 의견이 분분했다.

양파? 대파? 쪽파?


드디어

오랜만에 큰 밭에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고 서고 바삐 움직인다.

무지갯빛 양산도 군데군데 꽂혀있고 울긋불긋 사람들도 어울려 마치 꽃밭처럼 생동거린다.


대파였다!

푸른 대파밭에 흰 꽃도 피어났다.

수확날이 좀 늦었나 보다.

사람들의 손은 참 대단하다.

외출했다 돌아와서 창밖을 내다보니 큰 밭의 푸른 대파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밭은 비어서 다시 붉어졌다.

좀 쉬었다가 또 덜덜거리며 뒤짚히고, 붉은 제 살 속에 또 무엇인가 품고 키워내겠지.

사람도, 밭도 참 신통하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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