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의 자서전(4)

- 미안! 너의 16년을 내가 쓰는 거.

by 화수분

오빠에게 가는 길

엄마는 차에서 물건들을 잔뜩 들고 온다. 또 들고 온다.

엄마 팔뚝에 불끈 불끈 힘이 들어갔다. 냉장고에도 부엌 바닥에도 장보기해온 보따리가 쌓였다.

내일은 아주 먼 곳으로 오빠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나도 가고 엄마, 아빠, 이모들, 삼촌도 함께 간다고 엄마가 장보기를 많이 해왔나 보다. 오빠가 좋아하는 닭매운탕도 꼭 만들어 주겠지.


엄마가 이모들과 전화를 많이 하고 나에게도 예쁜 옷을 입혀주고 내 꺼 밥그릇, 간식도 챙기고 우리 차에 짐을 많이 싣고 떠났다. 아빠가 운전을 하고 엄마가 나를 안고 창문을 열어줘서 밖의 공기를 마시며 재미있게 먼 길을 갔다. 오빠에게 가는 길은 진짜로 먼 곳이어서 엄마가 처음 갈 때엔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난 울지 않는다. 먼 길을 가면 오빠를 만날 수 있는데 엄마는 왜 울었을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두 번 내려서 잠깐 산책하며 쉬도하고 간식도 먹고, 가족들도 모두 차에서 내려 놀다가 또 차를 타고 갔다. 강원도 깊은 산속을 오래 달려갔는데 큰 철문 앞에서 군인 아저씨들이 문을 열어 주어서 우리 차가 들어가고 오빠가 나타났다. 차에서 식구들이 모두 내리고 얼싸안고 그다음에 오빠가 나를 안고 우리 차에 탔다.


숲 속에 있는 작은 집에 모두 들어가고 차에서 짐을 모두 내리고 아빠랑 오빠, 삼촌은 이야기를 하고 엄마랑 이모들은 맛있는 냄새가 나는 요리를 했다. 나는 오빠무릎에 앉았다가 엄마에게 갔다가 이모들이 주는 고기도 먹고 바쁘게 뛰어다니고 엄마는 나보다 오빠가 예쁜지 자꾸 오빠를 만졌다.


큰소리로 웃고 건배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오빠하고 하룻밤 자고, 오빠는 다시 군인 아저씨 많은 곳으로 가고 우리는 다시 먼 길을 차 타고 돌아왔다. 엄마와 나는 차속에서 잠이 들었다.




불쌍한 빨간 나무 우체통

엄마가 마당에서 허리가 부러진 빨간 우체통을 삽질해서 캐냈다.

친구 같고 경비아저씨 같던 우체통이 왜 꺾였을까?


어젯밤에 엄마는 깜깜할 때 집에 왔고 엄마 아빠가 큰소리로 다투고 엄마가 새벽까지 울다가 잠들었다.

나는 엄마의 등에 내 등을 대고 잤기 때문에 엄마가 소리 없이 울어도 다 알 수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저녁이면 엄마 차소리가 집 앞에서 멈췄다가, 엄마는 들어오지 않고 또 차소리가 멀어졌다가 몇 번씩 그러다가 조용히 들어온 엄마를 아빠가 불러서 큰소리로 호통치고 그랬다.

나는 웅크리고 엄마 침대에 엎드려 아빠의 큰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렸지만 아빠는 새벽이 될 때까지도 엄마방을 오가며 소리를 높였다. 엄마는 부들부들 떨면서 이불을 썼다.


이제 우리 집 돌계단옆 잔디밭에 빨간 나무 우체통은 없다.

마당도 썰렁하고 예쁜 꽃도 시들고 구부러지고 엄마의 손길도 가지 않는다.

우체부 아저씨는 편지를 돌계단 위에 놓고 갔다.

바람이 불면 잔디 위로 편지가 날아가고 비가 오면 편지도 젖었다.


엄마가 정성껏 자리 잡아주고 흔들리지 않게 심어주고 우리 집의 경비처럼 돌계단 입구에 딱 세워둔 빨간 나무 우체통은 그날 허리가 부러져 죽었다.

불쌍한 빨간 나무 우체통!




마당 있는 집을 떠나네

"어? 모르는 사람들이네?"

요즘 자꾸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기웃거리다가 엄마가 문을 열어 주면 들어와서 집안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이층에도 올라가고 밖에서도 빙빙 돌아가며 구경을 하고 갔다.

나는 한 번도 짖은 적이 없지만 뭔지 기분이 안 좋다.

"엄마가 허락한 거니까 괜찮을 거야."


여기 마당에서 여름이 두 번 지나가고 가을이 될 때 우리는 또 이사를 했다.

내가 좋아했던 이층 집은,

엄마 아빠 아기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는 다른 집 가족들이 살기로 했다.

이층 집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집을 샀다.

우리가 살기엔 집이 너무 컸다.

엄마는 식구들이 모두 모여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지은 집이지만, 미국에 있는 언니가 한국에 오지 않고 거기서 쭉 살기로 했고, 오빠도 군대를 마치면 다시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삿짐이 너무 많아서 복도까지 쌓였다.

난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왔다.

새 아파트라 그런지 냄새가 많이 났다.

계단을 계속 내려가봤다.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어둡다.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발자국 소리가 빠르게 났고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엄마가 팔을 뻗어 나를 꼭 안았다.

"왜 지하실까지 왔어?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큰소리로 짖어야지."


엄마한테 안겨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돌아왔다.

아직도 짐이 많이 쌓여있다.

이삿짐 아저씨들은 모두 돌아갔다.


엄마 혼자서 정리하고 있다.

엄마가 이모들도 못 오게 했다.

웃지도 않고 쓸쓸한 얼굴을 이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겠지.

새로 이사 와서도 엄마 아빠 사이에는 말이 없고 서먹서먹하다.

나는 그냥 웅크리고 자는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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