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 너의 16년을 내가 쓰는 거.
아침 일찍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막 들어오고 큰 상자에 물건을 담고 엄마는 나를 안고 신발을 신고
방마다 돌아다닌다.
엄마가 아저씨,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큰소리로 빨리빨리 할 때,
사다리 차가 징- -하고 시끄럽기 때문에 엄마는 할 수 없이 더 크게 소리를 쳤다.
언니 꺼 피아노도 내려가고 엄마 꺼 화장대도 내려가고 오빠침대도 아빠소파도 무섭게 밖으로 징--소리를 내며 떨어질 듯 내려갔다.
나는 밥을 먹은 건지, 안 먹은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무서워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 내 꺼 살림과 엄마 꺼 작은 살림을 작은 상자에 담아 차에 넣어두고 나하고 산책길을 걸었다.
화단에 심어둔 엄마나무 층층나무도 보고 애기사과 나무도 보고, 아파트를 크게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소란스러운 우리 집에 오고,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뒤돌아서서 한참을 서 있다가 차를 타고 다른 동네로 왔다.
넓은 길과 예쁜 나무도 많고 병원, 학교 같은 건물도 많이 지나왔다.
큰 다리를 건너와서 아파트 아니고 마당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나하고 엄마 둘이서만 차를 타고 왔다.
아빠도 이 집에 찾아올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된다.
대문이 없고 마당에 잔디가 깔린 집으로 들어왔다.
집안에 계단도 있고 구경할 게 많다.
2층에 올라갔더니 또 계단이 나오고 다락방까지 올라갔다.
엄마는 내가 집 밖으로 나갈까 봐 걱정이 많았지만 나는 집안에 궁금한 게 많아서 밖에 나갈 생각이 없다.
다락이 있는 2층 집에서 내 자리는 1층 거실 소파 옆이지만 잠잘 때는 엄마 침대에서 잔다.
아빠는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서재에서 잔다.
나는 엄마가 잠을 못 자는 것보다는 아빠가 다른 방에서 자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서재가 따로 있어서 거기가 아빠 방이 되었다.
2층은 아직 비어있다.
언니는 여전히 먼 데서 공부하고 오빠는 군인 아저씨가 돼서 집에 안 오니까.
이 집은, 엄마가 현장을 지키고 6개월 동안 지은 집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남의 집도 잘 지어주고 우리 집도 잘 지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나갔나 보다.
나중에 나중에 언니 오빠랑 모두 모여 이 집에 살려고 튼튼하게 지은 이 층집!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고 잔디를 가꾸는 일도 엄마는 참 좋아했다.
엄마가 마당일을 할 때는 나도 마당에서 놀았다.
내가 잠깐만 밖에 나가도 엄마가 큰소리로 부르니까 난 얼른 돌아왔다.
이웃집에도 내 또래 친구가 있는 것 같다.
그 친구는 마당에서 살고 사람들에게 짖으며 집을 지킨다.
나에게도 짖었다.
엄마는 내가 그 친구 옆에 못 가게 하지만 나는 같이 놀고 싶다.
이젠 집 밖에도 구경할 게 많아서 뒷집도 들여다 보고 집 앞에 풀 밭에서 향기도 맡았다.
풀 밭의 흙에서 진짜 좋은 냄새가 났다.
키가 큰 풀이 빽빽해서 내가 들어가면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어? 왜 엄마 목소리가 안 들리지?
풀 숲에서 한 참을 놀았는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빙빙 돌아도 우리 집 가는 길이 안 나오네.
여긴 길이 없어. 이쪽? 저쪽?
깜깜하고! 무섭고! 앙앙 엄마!
조금 밝은 곳으로 계속 가보자.
짠!!! 맨 처음 들어간 곳으로 나왔다!
악!!! 엄마는 눈물, 콧물, 땀까지 범벅이 돼서 소리 지르며 나를 안았다.
회사에 갔던 아빠까지 와 있네.
엄마는 마당일에 잠깐 집중했다가 내가 안 보여 나를 불렀다.
이 집 저 집 마당을 들여다보고, 나를 봤나 물어보고, 걷다가 뛰다가 큰소리로 부르다가 울었다.
아빠에게 전화하고 차를 타고 먼데까지 찾아보고 다시 돌아와 발만 동동 구르다 집 앞에 주저앉았다.
언젠가 학교를 지으려고 남겨둔 빈 땅, 키 큰 풀밭 속에서 내가 한 시간도 넘게 헤맨 거라고 엄마가 말해줬다.
집을 잃어버렸으면, 차에 치어 사고라도 났으면, 어떤 사람이 잡아갔으면, 어쩔 뻔했냐고 엄마가 꾀죄죄한 내 얼굴을 붙잡고 일장 연설을 했다.
앞으로는 엄마가 마당일 할 때 나는 집안에 있기로 했다.
목욕을 하고 털을 말리다가 귀에 진드기가 붙었다고 엄마가 놀랐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오고 내 가출은 끝났다!
큰 집에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세 식구만 살게 되어 쓸쓸했다.
여전히 엄마 아빠는 일이 바쁘고 나는 거실에서 큰 유리창밖을 보다가 잠을 잤다.
엄마는 틈만 나면 마당을 가꾸고 어제는 삽질을 해서 우체통 하나를 마당에 심었다.
키 크고 구부러진 나무기둥에 빨간 편지함이 달려있고, 담장과 대문이 없는 우리 집 출입구 돌계단 옆에다 엄마가 심어주어서 마치 경비아저씨 같기도 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키 작은 남천 생울타리 밖에다 오토바이를 세우면 빨간 우체통 경비 아저씨가 "여기요-"하고 부르는 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젠 나무 우체통도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딱 어울리는 제자리를 잡고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사실 엄마가 몇 번 고쳐 주었지만 또 흔들려서 아저씨가 와서 땅을 더 파고 시멘트를 조금 붓고 나서야 딱 자리를 잡은 것이다.
나는 저기 서있는 키 크고 빨간 나무 우체통을 만난 날과 헤어진 날을 모두 기억하기 때문에 슬프고 눈물이 난다. 아마 우리 엄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