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수분 Oct 24. 2023

농부님, 저 몰래 벼를 베시다니요!

-  나날이 익어가던 벼논이 텅 비어서 아쉬워요.

지난 8월에 이사를 왔더니 워낙 뷰가 좋아서 집에 있는 시간이 온통 뿌듯하고 흐뭇했다.

작은 습지 위로 다랭이 논이 야산으로 이어지고,

숲 너머로는 산맥들이 겹쳐지고,

마지막엔 하늘과 닿아서 거실 창을 가득 채운 한 폭의 풍경화를 매일 감상할 수 있었다.


다랭이 논에서 벼가 익어가는 색깔의 변화를 지켜보다가 짙게 농익어, 잘 구워진 식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로 나들이하다 보면 벼를 수확하는 논들이 보였고, 우리 논에서도 곧 벼를 베겠구나 싶었다.

이제 거실 창밖의 논밭은 우리 것 같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오늘 아침 창밖을 보는 느낌이 쎄---하다.

어제, 날 저문 뒤에 귀가해서 우리 다랭이 논을 못 보고, 아침에서야 내다보니 휑---하다.

어제 나락을 베어버렸나 보다.

내가 보고 있을 베었더라면 덜 서운했을 것을!

어디 농부님들이 나의 감성을 헤아려 논일을 해줄 라디야.


또 하나 서운한 것은 반달만 한 저수지에 흰색 왜가리 '일백이'가 살았는데 얘도 안 보이는 거다.

가끔 이백이, 삼백이, 사백이 까지도 와서 놀더니 모두 가버리고 빈 저수지가 쓸쓸해졌다.

왜가리도 철 따라 서식지를 이동하는지 알아봐야겠다.


계절은 가도, 절기 따라 어김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아오지만,

편도 인생의 궤도에 올라선 우리는 계절이 가도, 계절이 와도 자꾸 시선이 아득해진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묵묵히 제 할 일 하고,

선선하게 세월을 맞이하는 것이 순리!

두 달 후에 벼벤 논에 흰 눈이 쌓이면, 눈이 부시게 세상이 포근해질 테고,

그때 창밖을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리!







매거진의 이전글 지리산에 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