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삶은 어떤 삶일까?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욜로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건 아닐까?
나는 일반적인 회사원이 아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아니기에,
평일 저녁에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육체를 쓰는 일을 하기에
컨디션 관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몸이 아프면 사소한 일도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누구나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런 감각이 언제부터 내 삶 깊숙이 뿌리내렸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나는 엄청난 결심을 하고 콘서트를 예매한 건 아니었다.
그저 어느 저녁, 그 남자와 함께 음악을 만나러 나섰다.
콘서트장 안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랜 친구와 함께 온 사람들,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
아빠와 단둘이 온 딸도 있었는데,
그 아빠는 엄마와 연애할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딸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크고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 틈에서 '행복한 시간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앉아 있었다.
영화 OST를 주제로 한 콘서트.
한스 짐머 VS 존 윌리엄스
누군가는 영화를 떠올리며,
누군가는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음악을 들을까?
저학년의 어린 남자아이는 영화를 다 보지 못했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혼자 오신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기에 저토록 멋지게 앉아계실까?
생각에 잠긴 사이, 음악은 시작되었다.
내가 본 영화도 있었지만,
보지 못한 영화들의 OST도 있었다.
어떤 장면의 음악인지 몰랐지만, 좋았다.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진동은
나에게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기 때문에 좋았다.
퍼즐 조각처럼
흘러나오는 선율 하나하나가
그림이 되어 마음으로 넣어 주었다.
붉은 조명과 빠른 템포로 긴장을,
밝은 조명과 잔잔한 멜로디로 평화를 만들어주는 그림도 있었고,
하프의 밝은 줄 하나하나에 통통 튀는 그림들도 있었다.
음악 속에서 나는
배트맨도, ET, 해리포터도 만나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나를 만나고 있었다
20살, 방황하던 나.
30살, 혼자 울고 있던 나.
40살, 지금 이 순간의 나.
그리고 50살, 아직 만나지 않은 미래의 나.
넓은 우주 속에서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자유롭게 떠다니는 아이처럼
시간을 오가며 '나'를 만나고 있었다.
“참 잘 견뎌줘서 고마워.”
40살의 나는 20살의 나를 다독여주고,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묻기도 하였다.
'나'를 만나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고마웠다.
불현듯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꾹 참아본다
음악이 주는 선물들을
그렇게 온전히 받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느껴본다.
즐기며 산다는 게 이런 것임을
처음 느껴본다.
타악기의 강약 속에서
불현듯 수묵화의 붓 터치의 그림들을 선물받는다.
힘을 주면 굵은 선이,
힘을 빼면 가느다란 선이 그려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강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때로는 힘을 빼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고,
때로는 힘을 주어 힘껏 노를 저어야 할 때가 있는것처럼.
삶을 즐기는 방식은 모두 다르겠지만,
이 순간,
나의 온몸으로
선율을 느낄 수 있음은 분명한 선물이다.
오늘의 내가,
기대되는 내일의 나를 만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삶.
그 자체가 바로 '행복'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영화가 주인공이고
음악은 그걸 빛내주는 조연이라 믿어왔던 나는
오늘, 음악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조연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조연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스스로 주인공이라 믿는 순간,
삶 또한 그렇게 달라지는 것임을 느낀다.
시선을 바꾸는 것,
그것이 진짜 '즐기는 삶'의 시작일지도 모르다는 것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