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를 치료하는 일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출품작]

by 강상록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의대에 진학하여 내과의사가 되었고 군의관과 전임의(펠로우)를 마친 후 ‘알레르기내과 분과전문의’ 자격을 얻어 개인병원에서 알레르기 질환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재미있게 일했다. 대한민국에 200명도 되지 않는 ‘희귀한’ 의사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료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개인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전문적인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 말고도 간단한 병으로 오는 환자들이 많았다. ‘기침, 가래, 콧물, 목 아파요’로 대표되는 감기 환자가 특히 많았는데, 한 주에도 수십, 수백 차례 반복되는 감기 진료 때문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연속 36시간의 고된 당직과 200장 가까이 되는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며 4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해서 받은 다섯 자리의 내과전문의 번호와, 아내와 떨어져 타지에서 1년간 혼자 살며 팔자에도 없는 논문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고 받아낸 세 자리의 분과전문의 번호는 정녕 감기 환자를 위한 것이었을까.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난 듯한 답답함으로 힘들어하던 어느 날이었다. 한 20대 남자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오고 뒤따라 어머니로 보이는 보호자가 들어왔다.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환자의 특이사항에는 역시나 ‘감기’라고 적혀있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었으나 어머니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20대 아들의 감기 진료를 위해 병원에 따라오는 어머니. 인사조차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쓸데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거나 “우리 애는 항생제를 먹어야 감기가 나으니 처방해 주세요.”같은 요구를 하는 사람일 것 같았다.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진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꾸짖지만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진료실 문을 지나 내 앞에 있는 의자에 앉기까지 짧은 몇 걸음을 걷는 동안 남자의 걸음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는 남들의 두세 배는 되는 시간이 걸리고서야 간신히 의자에 앉아 나를 마주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와 눈을 마주치던 찰나에 나는 깊은 슬픔과 공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따라온 어머니, 그녀는 무례한 사람이 아니라 지쳐있는 사람이었다. 머릿속 빨간불을 급하게 끈다. 스스로 뺨이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자세를 고쳐 앉고 목소리의 톤을 높인다. “오늘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남자는 훤칠한 청년이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단정한 머리에 안경을 쓴 모범생 느낌의 그. 그의 어머니는 꾸밈이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무심하게 풀어헤친 짧은 머리에는 군데군데 새치가 보였고, 뿔테 안경에 허름한 티셔츠를 입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차림이었다.


“아들이 뇌종양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어요. 어제부터 열이 많이 나는데 원래 다니는 병원이 멀어서 일단 확인받으려고 왔습니다.”


뇌의 악성 종양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는다던 그는 항암치료를 마치고 며칠 만에 고열이 있어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항암치료 후에 열이 나는 경우에는 혈액의 백혈구 수치, 특히 ‘절대 호중구 수치(ANC)’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항암제의 독성 때문에 ANC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간단한 감기로도 폐렴, 패혈증 등의 합병증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게 이런 경우에 개인병원에서는 환자를 원래 항암치료를 받던 병원이나 가까운 큰 병원으로 보내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발생할 위험한 상황이 아무래도 부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걸음이 불편한 그가 서울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일 텐데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검사하고, 다시 대기하고 치료까지 받으려면 하루를 거의 다 보내게 될 것이다. 수많은 암환자와 보호자가 익히 겪는 어려움을 알면서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간단한 신체검진으로는 그의 상태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았고 우리 병원에서 혈액검사와 흉부 사진이 가능했기 때문에 적절한 진료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다섯 자리의 내과전문의 번호와 세 자리의 분과전문의 번호를 가진 의사가 아니던가.


그렇게 서울에 가지 않고도 그는 무사히 치료를 받았고, 내가 신경을 써줬다고 느꼈는지 그날 이후로 그와 그의 어머니는 자주 병원에 왔다. 환자가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어도 끝까지 기다려 진료를 받고 갔다. 아주 사소한 증상이 있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나를 꼭 만나고 갔다. 나 역시 그가 오면 최선을 다했다. 첫 진료 때 그랬듯이, 과민할 정도로 진찰하고 검사했다. 그들도 그런 처치에 오히려 안심하는 듯했고 나 역시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항암제를 투여받는 환자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배웠다.


어느 날은 어머니만 병원에 왔다. 평소보다 더욱 핼쑥해 보이는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온 그녀는 38도가 넘는 고열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녀도 심한 감기였다. “약을 세게 지어주세요. 빨리 좋아져야 해서요. 아들 때문에.”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다 아시죠?’ 혹은 ‘제 처치가 처량하죠?’ 같은 의미를 담은 미소 같았다. 많은 것을 체념한 듯한 슬픈 미소였다.


그녀와 짧게 아들에 대한 근황을 나눴다. 꽤나 오랜 기간 항암치료를 해왔던 아들은 최근 시도하던 항암제에 효과가 없어 이제는 더 써볼 약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아들이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 이전에 하던 항암제라도 다시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나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무언의 약속이라고나 할까. 아들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절망적인 상황이 그저 상상이 되었다가,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다시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든 질문을 조용히 삼켰다.


속사정을 알고 나니 그가 올 때마다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동정으로 오해받을만한 말이나 표정, 눈길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젊은 나이에 걸린 암 때문에 이미 숱하게 받았을 동정은 그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 고민했다. 증상을 물어보고 차트를 적는 중에도 어떻게 그를 위로할 수 있을지에 온통 신경을 쏟았지만 결국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나의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를 진료하고 어머니와 대화하며 나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름 세심하게 배려하며 진료를 했더니 이제는 나를 믿고 계속 병원에 오는 그들. 한마디 말보다는 최선을 다해 감기를 치료해 주는 일이 그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감기를 치료하는 일은 모든 병을 치료하는 일이자, 외로운 보호자의 속마음을 들어주는 일이고, 최악의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할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제 보니 나는 ‘감기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의사가 되었나 보다. 정확히는 ‘감기’가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 무슨 병으로 병원에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누구이고 그에게 병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의사를 만나러 자주 병원에 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그의 어머니가 자주 병원에 왔으면 좋겠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끈질기게 싸우다가도 누구나 걸리는 감기로 나를 만나러 오면 나는 또다시 최선을 다해 그를 치료해 줄 것이다. 감기는 그가 일상을 살아간다는 증거일 것이므로 기쁨으로 그를 맞이할 것이다. 감기를 치료하는 일은 곧 삶을 치료하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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