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이 앞에서 재롱 부리는 아빠

내가 재롱이라니

by 써노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에게 관심이 거의 없었다. 주변에서는 종종 "나도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조카가 생기고 나니 조카바보가 되더라"는 말을 하곤 했지만, 나는 예외인가 보다 싶었다.


교회에서 섬길 부서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치부는 물론이고, 아동부(초등학생)를 섬기라는 제안도 단호하게 사양했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아이들을 다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이텐션의 목소리, 가끔씩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요구되는 복장이나 액션들—그보다는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그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너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늘 중고등부나 대학·청년부를 선택하곤 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영유아 대상 콘텐츠에서 성우들이 왜 그렇게 과장된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의성어나 의태어처럼 아이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반복적 표현이야 학습 과정의 일부라고 치지만, 아이들의 말투나 몸짓을 과장되게 재현하는 교육 자료(노래, 영상 등)를 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너무 아이들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 인지가 가능한 초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이런 방식이 오히려 아이들을 유아적인 존재로 고정시키는 건 아닐까 싶었다. 성인의 관점에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준다는 노력이 자칫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모순에 빠지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곤 했다. 이런 이유들이 내가 유치부나 아동부 섬김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내 이런 개똥철학을 남들 앞에서 주장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한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익숙해졌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냥 무뎌지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 앞에서 하이텐션 목소리를 내고 춤을 추고,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로서는 이게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인데, 아이 앞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지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단순한 몸짓과 목소리에 자지러지게 웃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즐거움과 기쁨을 너무 절제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좀 더 순수하고 솔직하게 살아도 괜찮았을 텐데. 결국, 아이를 위해 했던 몸짓과 목소리가, 어느새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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