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함에 대해
아기들은 말을 할 줄 모르기에 울음을 통해 의사를 표현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게 신기한 점은 '그 울음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누가 가르쳐 준 걸까?'라는 의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표정으로 보내다가, 울 때만 찡그리는 정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제는 웃는 표정을 짓고, 웃음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부모의 웃는 모습을 따라 하는 것일까?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소리와 표정이 부모와 다르고, 설령 보았다 해도 그렇게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 '아빠'를 하기 시작했다. 옹알이와 의미 있는 단어로서의 '엄마', '아빠'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고 하지만, 그 경계는 모호하다. 처음에는 그저 옹알이처럼 들리던 소리가 이제는 엄마를 보면 '엄마'라고 할 확률이 높아지고, 아빠를 보면 '아빠'라고 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리고 수유 타이밍이나 이유식을 먹을 시간이 되면 '맘마'라고 외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치 강화학습처럼, 아이는 특정 상황에서 특정 소리를 냈을 때 부모가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면, 이를 보상(reward)으로 받아들여 점차 확률분포를 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강화학습은 보상의 기준과 측정 방식이 명확한 반면, 아기는 어떤 보상 체계도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습을 해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는 점이 놀랍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라는 말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신비를 단순히 DNA에 새겨진 학습 기전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부모가 교육을 돕는다 해도, 학습 자체는 오롯이 아이가 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단순한 물질의 작용이나 생물학적 산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 이는 단순한 신비주의나 맹목적 믿음, 혹은 막연한 낭만 같은게 아니다. 아이를 지켜보면 매일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더더욱 끼어들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