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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Jul 13. 2021

32살 아르바이트생

 잘 다니던 회사를 내발로 뛰쳐나왔다. 단순변심은 아니었다. 지금 사무실 직원의 절반이 희망퇴직으로 퇴사를 했다고 들었다. 내 발로 나올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나는 희망퇴직은 아니었지만 일찍이 나온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 온 목돈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주식으로 돈을 몇 배로 불려보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떵떵거렸으나 이미 퇴직금까지 모두 날려버렸다.


 주식을 도전했을 때 혹여나 망하게 되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겠지 라고 했던 말이 씨가 되었다. 32살에 아르바이트를 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오후부터 새벽까지 하는 물류센터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용직이지만 나름 대우를 잘해준다. 하지만 직원들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 사실 32살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 많이 창피했다. 나름 회사에서 주임이라는 직책으로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은 직장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용직 아르바이트라니 자존감이 모래성처럼 쓰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첫 출근 후 지난 나의 생각들이 매우 창피했다. 


 며칠 일하면서 몇 마디 나눈 아저씨 한분이 있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 사장님인데 코로나로 인해 적자를 면하다 결국 가게를 접고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나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왠지 모두 그럴 것 같았다. 나의 편견이 부끄러웠다.


 직장 다닐 땐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매일매일이 페르소나인 일상에서 아무 걱정 없이 스트레스 없이 몸만 조금 고되면 되는 아르바이트가 더 낫다고 생각날 때가 있다. 그래도 소속감이 그리운 건 사실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 금전적 불안감과 매일 어두운 방 안에서 온갖 별 고민과 싸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 불면증으로 힘들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곤 했는데 불면증이 아니라 무기력함에 누워버린 침대에서 낮과 밤 없이 잠들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닐 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 "오늘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라는 말을 아르바이트 끝난 새벽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육성으로 내뱉었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인가. 


 보잘것없는 나의 몸뚱이를 이렇게 성실히 움직이게 해 준 사람은 나의 여자 친구다. 나의 이런 모습이 부끄럽지 않냐고 말했다가 크게 싸웠다. 여자 친구는 나의 이런 약한 마음에 화가 많이 났다. 여자친구는 미래와 과거를 생각, 고민하지 말고 현재를 살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늘 불안감을 갖고 사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여차친구를 만난 후 현재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결정과 나의 선택에 늘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여자 친구 덕분에 많은 힘이 된다.


 32살에 아르바이트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이렇게 글을 쓰나 싶다.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하지만 나의 감정을 세상과 공유하고 싶었다. 새벽 감성이 무서운 게 퇴근하는 새벽 셔틀버스에서 핸드폰을 내려 논 채 깊은 사색을 한다. 심지어 도로의 가로등이 빛나는 별처럼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내일도 열심히 살고 후회와 불안 감 없이 오직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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