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퇴사 후 몇 달간 아주 고통스러운 방황을 했다. 주식투자 실패와 각종 생활비 때문에 계좌의 남은 돈은 빠르게 증발하고 있었고, 매일매일 조급한 마음과 무수히 가득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밖으로 나가 노동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다. 잠시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였으나 매일 하다간 골병이 날 것 같아서 신체에 무리가 없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봤다. 아직 전업투자를 포기할 순 없으니 오후부터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고 그 일은 공유사무실 청소 아르바이트였다.
하필 청소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과 대면하지 않기 위해서다. 본래 성격이 내성적이고 사람 상대하는 일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청소일은 그저 혼자 열심히 치우기만 하면 되니까,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사람과 대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사람들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는 있었다. 그건 오직 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스트레스였다.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 일할 장소에 도착했다. 공유사무실이라 그런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분주히 노트북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 줄 사람을 만났다. 일 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하나하나 일을 배웠다. 행주와 분무기를 들고 테이블과 가전기기 등 하나 둘 닦아나갔다.
정신없이 배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덧 늦은 밤 시간이 되었고 몇몇 야근을 하는 직장인들만 남고 라운지는 한가했다.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전임자와 테이블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전임자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아직 첫날이라 확신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럴 것도 같아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며칠 후 전임자가 그만두고 나 혼자 일을 하게 되었다. 몇 가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애플리케이션에 기록들을 보면서 천천히 익혀가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상대하거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어서 나름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이 지나면서 다른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것은 바로 자존감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을 하면서도 주변을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회의실에서 프로젝트를 띄워놓고 회의를 하는 사람들, 외부 사람과 회의를 하는 사람들 등등. 나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나도 소속이 있고 직급과 직책이 있는 직장인이었는데 지금은 쓰레기봉투나 묶고 있구나 하면서 혼자 말을 하고 있었다.
낮아진 자존감과 멘탈은 빠르게 회복되지 않았다. 특히 나보다 어려 보이거나 동갑으로 보이는 직장인들을 볼 때는 더더욱 힘들었다. 그들은 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나는 그들을 보며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었다. 무언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정당한 보수를 받고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비록 청소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하지만 이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다.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순간 며칠 전 보았던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신이 했던 대사가 생각이 났다. "대개 육체노동을 하찮게 여기잖아" "육체노동엔 자유가 가득 넘쳐" "땀 냄새가 나도 그들은 일과가 끝나면 누구보다 행복해" 이 대사 만으로 자존감을 바로 회복할 순 없었지만 청소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게 한 동기부여는 되었다.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해서 불행해하거나 불평할 시간이 없었다. 아르바이트 건 청소 건 나의 젊은 날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고 공부였다. 자존감과 멘탈은 점점 강해지고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에 추진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안 좋은 습관은 내가 매일 버리는 쓰레기봉투에 함께 담아 버리자고 다짐했다. 적어도 나는 멈춰있지는 않았다. 매일 한걸음 오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