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중은 없어
엄마, 나중은 없어.
나중이 되면 '나중'은 또 나중이 되지?
그리고 그 나중이 되면 또또 '나중'이 돼버리잖아.
그래서 나중은 계속 오지 않아.
하고 싶은 건 지금 해야 되는 거야.
"어후 나중에 해, 나중에."
별 것도 아닌 거였다. 종이를 잘리고 오리고 붙여 작은 그림책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꼬맹이에게 당장은 할 일이 많으니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좀 나면 하라는 작은 핀잔이었을 뿐이었다.
당장의 귀찮은 일을 그저 미루고만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알았던 건지 급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긴 말을 보탠다.
"엄마엄마, 바바바.
나중은 없어. 나중이 되면 '나중'은 또 나중이 되잖아? 그럼 또 나중에 해야 되는데 또 나중이 되면 또 '나중'이 되고..... 그러니까 나중은 오지 않아.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거야."
아주 차분히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폼이 멋지기에 중간에 말을 끊지도 않고 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봤다. 작은 선생님의 설교를 '경청'하는 큰 학생이다.
"아아, 나중은 계속 오지 않는 거네?"
"그러엄, 바바바. 기다리던 나중이 됐는데 나중은 나중이니까.....#$$#$%&#^*("
심오한 아이의 철학이 또 한 번 읊어졌다.
'나는 죽기 전에 꼭 책을 쓸 거야.'
이건 내 '책'에 관한 꿈이었다. '나중'에 하게 될 일. 지금은 너무 바쁘고 고되고 여력이 없으니 나아아아아중에 좀 덜 바빠지고 덜 고되고 여력이 생기면, 소위 시간이 나면 할 수 있을 꿈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인생은 항상 제자리에서 바쁘고 고되고 여력이 없는 법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짬이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짬을 '내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걸 꽤 오래 동안 모르고 살았다.
'나중'은 오지 않는다.
'다음'은 오지 않는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오면 또 나중은 저어 멀리 손이 잡히지 않는 어딘가로 도망가있을 테니. 지금부터 아주 작은 발걸음을 시작하지 않고서는 그 자꾸 멀어지는 '나중'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아, 맞아.
"맞네, 그러네. 나중이 되면 정말 나중이 또 도망가네?"
그날 아이의 얕은지 깊은지 모르겠는 그 철학에 힘을 실어주고자 종이를 접고 자르고 붙이고 칠해 그림책을 만들었다. 나중에 하지 못하면 안 되는 일이니 '지금'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해야 했다.
그래, 지금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고싶은 건 '나중'이 아니라 '지금'해야 하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