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할아버지

by 유수한 책방

지난 일요일

가게에 잠깐 나와 콩을 삶는 나를 수선집 사장님이 붙잡아 세우셨다


' 뒷집 할아버지 ~ 가셨어 '

' 어제, 가셨데.. '


작년 여름부터인가, 언제 부터 할아버지가 우리 가게에 오셨는지 기억이 나지않지만

할아버지는 늘 한여름에도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진 두꺼운 겨울바지를 입고 나오셨다


아니, 할아버지 덥지않으세요? 놀라며 물으면 본인은 추위를 많이 타서 더위를 모른다고 말을했지만, 상의는 목이 다 늘어나 가슴뼈가 보이는 런닝이라고 말하기 너무 낡은 난닝구였다


가게에서 바로 보이는 하늘색 지붕 단독주택

수선집 바로옆이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이였다


할아버지는 가게에 불이 켜지자마자

천천히 걸으며 가게앞으로 다가와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밥하나 볶아줘요~


어떤날은 밭에서 가져온 풀들을 정리할 새도 없이

바로 밥을 해달라 말씀하셨다

가끔씩 새벽에 나와 가게일을 볼때면 가게불이 켜지자마자 항상 하시던 말씀은

이르케~ 보니까.. 불이 켜졌어

휴무일이든 이른 새벽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할아버지는 하루에 두세번씩 꼭 그렇게 가게를 들러 밥을 사거나 이유없이 들르곤 하셨다

지하상가에 다녀오시다, 커피 한잔 타달라 , 은행까지 차를 태워달라, 택시를 불러달라는 소소한 부탁까지

우리에게 종종 말씀하셨다

가족과도 멀리 떨어져 사는 할아버지는 우리가 유일한 벗이였다


할아버지는 밥을 볶는 15분동안

이젠 떨어져 사시는 할머니 얘기를 하셨는데, 할머니가 40년동안 바람을 피웠다는 끝없는 얘기에

아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40년동안 바람피셨으면 , 할아버지가 내연남 아녜요??

그리고 바람은 할아버지가 다방 레지랑 폈다고 했잖아요

왜 자꾸 할머니를 탓하셔..


' 내가 어디가서는 이런말 안해.. 여기니까 말하는거지... 내가 어디가서는 마누라 얘기 안해.. 여기니까 하는 말이지 '


자식도 한참 자식뻘인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믿고 하셨던 말.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작년 가을, 할아버지가 마당 감나무에서 딴 감 한바구니를 안고 오셨다

아니, 할아버지 이걸 어떻게 따신거야?

이걸 우리 주려고 가져오신거야?? 이거 황송해서 어떻게 먹지??


그렇게 익어간 작년 가을

할아버지는 곧잘 말씀도 하시고 알아 듣고 종종 걸음이였지만 거동은 불편하지는 않으셨다


그러곤, 올봄부터 할아버지는 발이 아프시다고 한의원을 다니시기 시작했다

거동이 점점 불편해지셔서 신북에 있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시골로 모셔갔었지만

할머니 말을 듣지않고 고집을 부려, 다시 집으로 오기를 몇번

할아버지는 그렇게 몇달 할머니댁에 있다가 다시 집으로 오시면, 우리 가게를 먼저 찾아

집에 왔음을 알리셨다


할아버지는 옛일을 기억이 선명한데, 조금전 주문했던 볶음밥을 어딘가 두고

수선집이 훔쳐먹었다는 흉을 여기저기 보시곤, 수선집이가 아주 나쁜새끼들이라 욕을 하셨다


수선집은 그런 할아버지 상태를 아시는지, 종종 우리에게

'할아버지 정신이 왔다 갔다해, 그냥 그려려니해.. 약을 먹을땐 아주 말짱한데.. 안먹으면 그래 '


수선집 사장님 말씀이 맞긴했다

바쁜 여름, 밥하나 볶아달라 말하고

점심장사 끝내고 돌아서면 다시 밥을 잃어버렸다고

밥을 해달라 말하고

또 돌아서면, 배고프다 밥 달라 화를 내셨다


할아버지, 좀전에 밥을 가져가시고 왜 배가 고프셔

끼니때마다 와서, 밥하나 주문하시고 돌아서면 없다 다시 해달라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가

어떤날은 답답하고 귀찮았다


하루는 닭갈비 택배 주문이 밀려, 하루를 꼬박 서서 일하느라 조리 하지못하는날인데도

와서 밥을 달라, 떼를 쓰셨다


할아버지, 오늘은 우리가 주방이 좁고 ,화구 위에 야채를 다 쌓아둬서 오늘은 못해요

오늘은 할아버지, 우리가 택배 시간이 촉박해서 다른 단체주문도 못받았어요!

아무리 안된다고 해도

밥 하나 달라고, 가게앞 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쓰는 바람에

하던일을 다 치우고 밥하나를 볶아 내주면 , 또 가던길에 밥을 훔쳐갔다고 다시 밥을 달라하셨다


그렇게 몇날을 할아버지 주문을 해드리다가, 하루는 화가 나서

오늘은 안된다고 하고 다른 작업을 하는 내내 할아버지는 바닥에 주저 앉아 계셨다


이렇게 해야 할아버지가 말을 듣겠지 싶었던 내 고집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절뚝거리며 중앙시장 국밥집에서 밥을 사오느라 언덕을 몇번을 쉬며 밥사러 다니시셨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자기 욕 엄청 했어

아.....


할아버지는 며칠 언덕을 오르 내리시다가, 거동이 불편해져서 할머니가 다시 신북으로 모셔가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여름이 지난 겨울


요즘 아예 보이질 않는 할아버지는 신북에 잘 계신지, 할아버지댁 마당에 감나무 감을 따셨는지

올해도 또 따서 가져오신다던 할아버지는 왜 아무 거동도 없으신지

수선집 사장님께 할아버지 근황을 묻고, 아직 신북에 계신다는 말만 들었다



'뒷집 할아버지.. 가셨어.. 가셨데...'


' 넘어지셔서.. 할머니가 병원가자고 그렇게 하는데, 고집 부리다가 늦게 가서 .. 돌아가셨데.. '

자기네는 장례식장 가지않아도 돼. 그집 식구들 모르잖아.

가지마 안가도 돼..


할아버지 발인이 있던 아침. 할아버지가 계시던 담이 낮던 집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잘려진 감나무 사이로 보이는 여름 내내 신던 할아버지 털신발을 보며, 할아버지를 찾고 또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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