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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Oct 29. 2022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읽고…

읽는 사람마다 눈물 바다가 되었다는 바로 그 책!

일본 소설은 장르를 막론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아한다. 소설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다면 일본 소설은 가볍지도 무겁지지도 않은, 마치 중용中庸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 같은, 딱 그 무게다. 아사다 지로,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등등. 물론 일본 소설 작가들을 많이 알지 못한다. 대체로 읽었던 일본 소설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궤도를 이탈한 열차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네 사람의 이야기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네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마치 무대가 다른 연극 대본 처럼 읽혀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같은 열차의 이야기라 느끼게 된다. 기가 막히도록 절묘하게 연결되는 구성이다.


사람은 슬픔의 감정을 이이제이以夷制夷식으로 다스리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슬픔 보다 더 슬픈, 지금의 슬픈 감정과 쌍벽을 이루는 슬픔, 슬픔을 슬픔으로 포개어 슬픔을 통제하는, 그것은 어쩌면 슬픔을 이겨내는 아니면 슬픔의 감정을 즐기게 하는 ‘역설적’ 환타지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이 바로 이런 류의 환타지 소설이다.



제1화 연인에게

제2화 아버지에게

제3화 당신에게

제4화 남편에게


연인에게!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 뭐든 주고 싶은 마음, 하물며 바로 곁에 있어도 보고 싶기 마련이다. 그 연인은 열차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세상을 먼저 떠나고 만다.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연인,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도 그를 좋아했다. 세상에 내세울 것 없었던 그와 그녀는 서로를 의지하며 미래를 키워가기로 한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그가 먼저 사랑하는 그너의 곁을 떠난다. 92쪽에 나와 있는 내용은 이렇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해야할 말이 남아 있다. 고맙다는 말.

그에게 마음을 담아 고마웠다고 전해야 한다.

열차의 바퀴가 서서히 멈추면서 삐걱삐걱 쇳소리를 냈다.

마음을 다잡고 몸을 돌려 세워야 한다.

그러나 말을 하려다 말고 다시 집어삼켰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마지막 인사로 고마웠다고 말하고 나면, 그와의 이별을 정말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 같아서.

“네토모….”

사고 나서 울고, 울고, 또 울다 지친 내 마음 속에 마지막으로 자리한 감정. 그건 고마움이 아니었다.

그러니 고마웠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안녕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네토모.”


아버지에게!

남자들에게 아버지는 늘 이율배반의 대상이다. 마음의 한 자락에서 안쓰럽다가도, 또 한 켠에서는 ‘그냥 싫은’ 대상 말이다. 오직 한 길 만을 묵묵히 걸어오던 아버지는 열차 사고로 가족 곁을 떠난다. 아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비로소 깨닫는다. 슬픔을 에너지 삼아 후회가 마구 진동한다. 아버지의 희망이었던 아들은 아버지 없는 세상의 삶을 새롭게 느낀다. 슬픈 아버지를 통하여 아들은 이렇게 변하게 된다. 171쪽의 내용이다.


‘나는 아버지가 일하던 회사에서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직 어설프다. 하지만 언젠가 존경하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 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 싶다.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진짜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루는 날이 오면….

아버지 방에서 그 술병을 열고 싶다.’


당신에게!

초등학생 아이는 이혼한 아버지와 둘이서 산다. 얼굴에는 새까만 점이 있어 큰 거즈를 붙이고 다닌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다니던 아동센터를 끝마치고 나오는 동생을 데리러 온 중학교생 누나를 만난다. 오르골 멜로디가 울려나온다. 누나는 우산이 없고 데리려 오는 사란도 없는 이 아이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어린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아이가 타고 있던 열차에 누나도 타고 있었다. 결국 누나 만 세상을 등지고 만다. 아이는 누나의 진심을 떠난 후 알게 된다. 책의 256쪽은 아이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빗소리가 겹치듯 아동센터 안에서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아, 다카코 누나가 좋아하는 곡이다.”

유타가 교실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저녁 7시를 알리는 벽시계에서 오르골이 아름다운 음색을 연주했다.

“전에 누나가 그랬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고.”

“…이 곡, 제목이 뭐야?”

“이건 ‘사랑의 인사’라는 곡이야.”

금속을 두드려서 만들어낸 맑은 음악 소리가 귓가에 날아들었다. 느릿한 선율이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는 듯이 온몸을 휘감았다.

눈꺼풀 안쪽이 천천히 젖어 들었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약해지면 안 돼….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소용없었다. 눈물 줄기가 두 볼을 타고 줄줄 흘렀다.

이미 젖어버린 노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숨을 길게 내쉬고, 시선은 정면을 향해 두었다.

“자, 가자, 유타.”

나는 힘차게 말하며 오른빰에 붙은 거즈를 벗겼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세상의 남편들은 늘상 묵직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다. 일반화된 남편의 상이다. 별 재미가 없는 사람을 고급화시킨 표현이랄까. 소설 속 남편이 그렇다. 운명의 장난인지, 남편은 사고난 열차의 기관사였다. 묵묵히 40년 동안 한 길 만을 걸어온 남편은 3년 후 환갑을 맞을 나이였다. 아내는 남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사고를 면피하려는 회사 측과 싸워야 했다. 슬픔을 저장하는 은행이라도 있다면, 잠시 맡겨 두고픈 마음이었다. 은행의 금고 속에서 슬픔이 이자 처럼 늘어날지라도 지금은 남편의 명예회복이 우선이었다. 아이가 없었던 부부, 남편은 아내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죄책감을 감싸주려고 애를 썼다. 아내는 그 마음이 더 안타까웠다. 사랑은 질투의 신과는 싸워 이길 수 없었던걸까! 아내는 절규한다. 273쪽의 이야기가 독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여러분… 저는 기타무라 미사코라고 합니다. 이번 사고가 난 열차를 운전하던 기관사의 아내입니다.”

수런대는 눈앞의 사람들을 향해 90도로 구부리며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사망한 제 남편은 여러분께 사죄를 드리지 못합니다. 이 자리에 없는 남편을 대신해 아내의 제가 여러분께 사죄하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회장 한 쪽에서 누군가가 “누구 맘대로!”하고 내지른 소리가 귓가에 와 닿았다. “누가 저 사람 좀 밖으로 끌어내!”라며 욕설이 날아드는 와중에도 나는 말을 계속 했다.

“이번 사고가 명백히 밝혀지고 남편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면, 그때는 제가 그의 아내로서 제 목숨을 바쳐서 속죄하겠습니다. 여려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이 후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자연스레 두 번 읽게 됐다. 처음 읽었을 때 보이지 않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책 띠지에 나와 있는 독자들의 후기 중 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


가족이든 연인이든, 또다른 인연이든, 어느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었으면 싶다. 더구나 그 사랑이 슬픈 사랑이라면 더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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