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행복하자!

세상에 떠돌고 있는 주인없는 사랑이라도 찾고 싶은 가을이다...

by 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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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건강이라는 말을 한 번 이상은 듣게 됩니다. 나 같은 경우는 듣는 것 보다는 ‘건강하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카톡을 하다가 끝맺음에는 “건강하소서!”가 자동붙임말처럼 얹혀집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하라는, 지시 내지 부탁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운동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걷는 것부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말입니다. 나는 걷는 걸 택했습니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열차가 도착할 때가 플랫폼을 왔다리갔다리 합니다. 매일 나를 포함해 서 너명은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는 으레 뒷골목을 찾아 걷습니다. 걷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두 눈에 들어오는 주변 풍경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세상의 풍속도 같습니다.


항상 다니던 길, 이웃집 마당에 묶여있던 큰 개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인가 궁금해집니다.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텃밭의 절반을 차지해도 나몰라라 하고는 아침부터 땀 흘리며 잡초만 뽑아내는 주인 할머니의 마음이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담을 타고 자라나는 파란 잉크 빛 붓꽃이 바람에 흔들리면 ‘아, 바람이 불어올 시기가 됐지!’, 하고는 손부채를 멈춥니다.

그렇지만 진짜 궁금한 것은, 여름을 이겨낸 나의 힘과 폭염에도 지탱해낸 추억의 여운을 바람 곁에 띄워놓을 수 있는, 여전히 몸에 걸치고 있는 얇은 옷을 벗게 해 줄, ‘아, 가을!’이 오고 있는 위치입니다. 올여름은 유난히 길었던 폭염경보로 고난의 크기가 좀체 줄지 않아 거의 매일 항복의 외침이 있었으니까요.

세상살이라는 것이, 자연의 공격에는 쉽게 무너지고 자포자기의 도착점도 빨라지는 법입니다. 그러다가도 이내 희망을 품을 생각으로 가다듬어 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거나 아니면 세상살이에서 고뇌가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니라, 이와 같은 넋두리처럼요.

그래서, 폭풍우가 성난 파도처럼 덮쳐 와도 이내 곧 태양이 반대편을 비춰 무지개가 뜰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티어냅니다. 장미꽃 가시가 가슴을 찔러대 상처가 난 만큼 통증을 느껴도 붉은 장미를 연인의 품에 안겨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아픔을 참아내는 것이구요.

세상의 순리라는 게, 성난 파도 같다가도 언젠가는 잔잔한 물결이 되고, 날카로운 가시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추겨주는 법입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이라는 것은 아주 가끔은 잊혀졌던 신혼 같은 밤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다 보면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맘속에는 별들이 총총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마음에 신바람이 불지 않아도 얼굴 위로는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는 계절은 순리대로 옵니다. 이렇게 자연과 사람이 한 몸처럼 동화되고 포용한다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가 살아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밤이 깊어 가면서 제법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옵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처럼 들려옵니다. 수레에는 인생을 연주할 악기들이 잔뜩 실려 있습니다.

계절이 시나브로 바뀌니 운동에도 힘을 실어봅니다. 동네 산에 오릅니다. 아스팔트를 벗어나 흙을 밟으니 나의 삶이 움찔거리는 것 같습니다. 산 정상에 서서 아래쪽 도시를 내려다보니 법정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소유가 소유이다!’.


이 계절 마지막 절규와 같은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가을이 오는 길목의 신호소리 같고, 숲의 나무들은 한 달 살이 매미의 아쉬운 함성을 흡수, 저장하는 모양새입니다. 세상 곳곳에는 ‘아카이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에 오르면 흐르는 땀만큼이나 생각이 많아집니다. 자연 때문인지, 그 생각들은 긍정적인 것들이라 다행입니다. 어릴 적 아이들과 행복했던 스킨십의 기억들, 현재 내 눈앞에 놓여진 즐거운 일상들, 잠재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결정을 놓고 시뮬레이션하면서 갖게 되는 행복한 고민, 미래의 성공을 예견하는 황홀한 그림 등등이요.


모든 사람의 인생이 가을만큼 풍성하게 다가오기를 바래 봅니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노래했지요. 누구나 알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그 시인의 따님이 서울대생들에게 13년째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무명시절, 집이 무척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서울대 교수 따님은 가난이 원망스럽지 않았답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주고받은 서신을 묶은 책 ‘나만 아는 풀꽃향기’을 펴냈는데, 거기에는 가난이 원망스럽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우리’의 것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나 대신 가난을 다 막아 줬으니까요.”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읽고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나는, 우리의 가난에 절망하고, 우리의 삶이 빈한해 소유를 탐하고, 답답한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열쇠의 부재를 원망했던 그 시절의 기억 때문입니다. 무소유의 소유를 몰랐던 후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분명 시인 나태주의 부녀처럼, 따뜻하게 사랑을 받고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요. 그리고 누구든 삶 주변에는 걱정과 염려를 잘 막아준 또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랑과 행복 마저 풍성할 것이라고, 마치 가을바람이 말을 걸어올 것 같지 않아요?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길어진 밤 시간 만큼 생각의 깊이가 깊어집니다. 나는 오늘도 물을 마시듯 세월을 먹고 시계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힘을 뺍니다. 몸이 가벼워지니 지긋지긋할 만큼 더웠던 올여름에 살인 더위를 이겨낸 몸과 마음을 칭찬해주고 싶어집니다.

가을이 파란 하늘을 날아오르는 빨간 풍선처럼 다가옵니다. 가슴이 뜁니다. 생각과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이 가을, 함께 행복하자!’라는 함성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세상에 떠돌고 있는 주인 없는 사랑이라도 찾고 싶어지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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