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잘 듣고 있는가?
배경 : 우리는 흔히 '꼰대'라고 하면 타인을 통제하려는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떠올리지만 꼰대의 본질은 나이와 상관없이 발현되는 '자기 중심성'에 있다. 자기 중심성은 내 감정과 내 방식이 곧 세상의 기준이라는 '무감각'에서 비롯되는 태도 말한다. 그런데, 기성세대의 무기가 '경험'과 '권위'였다면, 2020년대의 새로운 꼰대, '젊은 꼰대'의 무기는 바로 '자유'라는 이름의 자기 중심성입니다. 이 글은 타인의 불편에 둔감한 이 새로운 세대의 꼰대에 관한 이야기다.
꼰대는 나이가 아니라 태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꼰대가 경험과 권위로 대화를 막았다면, 요즘의 꼰대는 자유에 대한 무감각으로 대화를 멈추게 만든다. 그나마 한때는 타인에게 배려를 구하며 “그러려니 생각해 주세요”라던 말들이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내 자유인데 뭐가?”라는 한마디가 모든 불편과 비판을 차단하는 새로운 권력이 되었다. 기성세대가 '경험'을 절대화했다면, 젊은 꼰대는 '감정'을 절대화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솔직함'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포기한 또 다른 포장일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사실 매우 무서운 말이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인정할 때 정당성을 갖지만, 그들의 자유는 타인을 배제한 나만의 권리로 축소되어 있다. 꼰대는 자기 확신이 강하기 때문에 타인의 불편에 둔감하다. MZ세대가 자주 말하는 '공감'조차 타인을 향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좋아요', '댓글', '공유'로 확인되는 자기감정의 확신일 때가 많다. SNS 속 공감은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그렇게 자기중심의 세계가 깊어질수록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타인은 점점 불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젊은 꼰대의 자유는 결국 공감의 결핍에서 비롯된 '자기 감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많다. 예전에는 일부 노인들의 큰소리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까지 더해져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자유'라고 생각한다. 버스 안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치 자신들만의 공간인 듯 떠들어댄다.
그들에게 공공성이란 자신들의 자유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타인의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그 불편을 인식하지 못하며 죄책감, 부끄러움, 미안함도 없다. 이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인식의 결핍이다. 이 무감각이야말로 젊은 꼰대의 핵심이다.
이 무감각은 집단적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자신과 다른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슷한 생각끼리 뭉쳐 타인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집단 전체가 꼰대가 된다. 꼰대는 개인이 아니라, 태도의 집단일 수도 있다.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인 콜 포비아(Call Phobia)는 단순한 세대 습관을 넘어, 타인의 감정과 즉각적으로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겉으로는 자유로움을 외치고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들은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공감과 소통을 문자로 해결해 온 세대의 한계다. 그들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나 정작 세상과 대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 꼰대가 권위로 타인을 억눌렀다면, 젊은 꼰대는 타인을 배제한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갈망했던 진짜 젊음은 자기 성찰 없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열정과 가능성으로 세상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였다. 진짜 젊음은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힘이다. 결국, 꼰대는 나이가 아니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불편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자유만을 외치는 젊은 꼰대의 시대,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잘 듣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