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 씹는 소리는 왜 태도의 문제가 되는가?
누군가 껌을 씹는다. 문제는 껌을 씹는 것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소리다.
딱. 딱. 혹은 질겅질겅.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바뀐다. 그리고 곧 이런 말이 따라 나온다.
“태도가 왜 저래.”
흥미로운 점은 같은 씹는 소리라도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밥을 먹으며 나는 소리는 “예절이 없다”고 말하고,
껌을 씹으며 나는 소리는 “태도가 문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가장 단순한 이유는 이것이다. 껌은 필수적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사는 생존을 위한 행위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씹는 소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껌은 그렇지 않다.
껌은 배고픔을 해결하지도 않고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껌은 습관이거나 심심함을 달래는 행동이거나 긴장을 풀기 위한 행동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껌 씹는 소리를 들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특히 공적인 공간에서는 그 의미가 더 강해진다. 이 행동은 단순한 습관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행동에서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읽는다. 껌을 씹는 소리는 그 자체로 말한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가 만들어내는 메시지다. 이 현상은 사회학적으로도 설명된다.
고프먼(Erving Goffman, 1959)은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일상생활에서의 자아연출)에서 사람들이 사회적 상황 속에서 자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도록 행동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몸의 움직임과 행동을 조절한다. 회의에서는 자세를 고쳐 앉고 면접에서는 말을 고르고, 공식 자리에서는 행동을 조심한다. 이 모든 행동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가진다.
“나는 이 상황을 존중한다.”
그런데 껌 씹는 소리는 그 메시지를 깨뜨린다. 껌을 씹는 순간 사람들은 이렇게 읽는다.
“이 사람은 지금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껌 씹는 소리는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사회적 신호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매우 빠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 몇 초 만에 판단한다. 저 사람은 성실한 사람인지, 무례한 사람인지, 가볍게 행동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가 때로는 아주 사소한 행동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껌을 씹는 방식, 다리를 떠는 습관, 의자에 기대 앉는 자세 같은 것들이다.
이 작은 행동들은 사실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는 신호가 된다. 그래서 껌 씹는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 소리는 종종 무례함의 신호가 되고, 성실성의 척도가 되고, 태도의 판단 기준이 된다.
쩝쩝거리는 소리가 예절의 문제라면 껌 씹는 소리는 태도의 문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질문이 남는다. 껌 씹는 소리가 정말로 사람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단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신호 체계를 읽고 있을 뿐일까.
우리는 종종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규칙을 얼마나 잘 연기하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 소리는 예절이 되고, 태도가 되고,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쩝쩝거림과 껌 씹는 소리는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지금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태도나 성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가 만든 규칙에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는지를 보고 그것을 곧바로 인격이나 태도로 번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껌 씹는 소리가 싫다. 어쩌면 그것조차 내가 이 사회의 규칙을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배워버렸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