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같이 사셔요'라는 말을 듣고...떠나신 아버님

아버님, 이번 주에 또 오신다구요?

by 이작가야

''얼마 줬을 거 같나? 함 맞춰봐라.''

5일장에서 구두를 사 오신 아버님 기분이 최고시다.

늘 그렇듯이 아무도 아버님이 사 오신 구두, 그것도 백구두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유독 막내며느리 나만 눈을 똥그랗게 뜨고 리엑션 중이다.


''와~~~ 아버님 완전 멋쟁이 구두에요. 게다가 백구두네요.

아버님 흰색 한복 입으실 때 신으심 완전 최고겠네요.''

''그렇고 말고.''

''음... 그래도 구두니까... 이만 원?''


이만원이라는 내 답에 아버님이 세상을 다 얻은 얼굴이시다.

''그렇게 보이지?.. 틀렸다.''

''만 오천 원요?''

''아니다.''






아버님은 계속 싱글벙글이시다.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신 게 틀림없다. 아버님 기분을 최고로 띄워드려야겠다.


''아니라뇨. 어떻게 이렇게 좋은 구두를 더 싸게 사요.

에이, 아버님 장난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만 오천 원 맞죠?''

''아니라니까, 잘 맞춰봐라.''


''설마 만원? 팔천 원?''


손은 허리 뒤로 뒷짐을 지시고 어깨는 하늘까지 올라간 아버님은 백구두를 집어 드시고 내 얼굴 앞까지 들이대신다.


''오백원 이다.''

''꺄~~~ㄱ, 꺅~~~ 아버님 진짜요? 우와!

아버님 최고예요. 우와~~~.''


아마도 교회 바자회를 다녀오신 게다.


아버님이 손꼽아 막내며느리를 기다리시는 이유,

아버님에게 대화 상대가 생긴 것이다.






코드가 맞는다?

아버님과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코드가 맞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돌직구, 솔직함 등...

게다가 아버님이 나를 이뻐할 수밖에 없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집사님(남편)은 6남매 막내아들이다.

집사님의 큰 형님은 딸만 셋이다. 둘째 형님은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집안에 대가 끊겼는데, 막내며느리인 내가 아들을 낳았다.

집안에 복덩이가 들어왔다며 시부모님은 나를 이뻐했다.

다행히 그 후 둘째 형님이 아들을 낳았다. 경사다.


연세가 칠십이 되셔서, 막내며느리를 보신 아버님은 체구는 왜소하시고 머리는 백발이셨다. 간혹 할아버지라고 부를 뻔한 적도 있을 만큼 난 아버님이 친근했다.

매일 아침 안부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막내예요. 별일 없으시죠.''

매일 하는 안부 전화인데, 별일 없으시냐고 여쭙는다.

''별일 없다.''

''식사는 잘하시고요?''

''못한다.''

''왜요, 어디 편찮으셔요.''

''아니다. 그냥 밥알이 모래알 같다. 죽지 못해 먹는다.''






집사님에게 아버님의 안부를 전하며, 걱정을 하니...

집사님 하는 말이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신 지가 20년이 넘었다'며 신경 쓰지 말란다. 아버님이 입맛이 없으시단 말씀이 막내네 집에 오고 싶다는 신호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신혼 때부터 아버님은 막내 내외가 맞벌이 부부인데도 거의 매주 오셨다.


''아버님, 또 오신다고요? 지난주에 오셨는데... 저도 좀 쉬어야죠ㅋ.''

''지난번에 참기름을 안 갖고 갔다.''

''참기름 사 먹으면 돼요.''

''아니다. 내가 가면 되는데 왜 사노!''


아버님은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 등...

암튼 한 번에 가져오실 수 있는데도 세 번에 나눠서 매주 오신다. 꼭 일부러 한 가지는 두고 오시고, 깜박 잊었다며 또 오신다.







낑낑대고 어찌어찌 음식을 해드리기도 하고, 맛난 음식을 사드리기도 한다. 아버님은 해드리던 사드리던 다 좋아하신다. 그냥 막내 집이면 좋으신 거다.

저녁을 먹고 아버님, 막내아들 그리고 막내며느리인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아들은 슬며시 없어진다. 홀로 남겨진 내게 아버님은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신다. 어느 집 못된 영감, 할망구, 며느리... 미담부터 뒷담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너무 재밌다. 표정도 하나도 안 바뀌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무 웃겨서, 나는 배를 움켜쥐고 웃다가 숨이 넘어간다. 재밌고 웃기지만 밤 12시가 돼가니 눈이 감기고 고개가 몇 번이나 뒤로 넘어간다.


''아버님, 졸려워요. 그만 자요.''

''그래라.''


내가 그만 주무시라고 할 때까지 안 주무신다.






새벽 네시, 거실에서 TV 소리가 난다. 아버님이 벌써 일어나신 게다.


''아버님, 벌써 일어나셨어요.''

''그래, 실컷 잤다. 드가 더 자라.''


신혼 초엔 충혈된 눈을 크게 뜨고, 새벽부터 말동무를 해드렸다. 그렇게 아버님은 신혼 때 부지런히 막내네 집에 오셨다. 물론 제일 먼저 큰아들 집에 들르신 후 오신다.

신혼 땐 그랬다.


우리 부부에게 신이 주신 귀한 선물, 아들이 태어났다.

맞벌이를 하니 여차 여차 해서 친정엄마랑 합가를 했다.

합가 후 아버님의 발걸음이 끊어지고, 우리가 자주 시골로 시부모님을 뵈러 갔다.

믿거나 말거나 그렇게 나는 아버님이 마치 할아버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이 들었다. 시집살이를 한 며느님들께는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아마도 나를 제일 이뻐한 친정아빠의 빈자리가 커서 일지도 모르겠다.






간암으로 시어머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홀로 남겨진 아버님을 더 자주 찾아뵈었지만, 떠날 때는 더 맘이 아팠다.

'이래서... 남자가 먼저 떠나야 한다는거구나.'

아버님은 끝내 '막내 집에서 살고 싶다' 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신다.


''아버님, 저희 둘 다 출근하면 감옥이나 마찬가지예요.

서울 길도 모르시는데 어딜 나가실 거며, 식사는 또 어떻게 해요. 안돼요 절대...''

''왜 안되노, 내가 다 차려먹는다. 길도 너들보다 더 잘 찾아다닌다.''


우리 사정도 사정이지만 형제들이 큰 아들이 있는데, 그건 안 될 말이라 하여 결국 서울 큰아들이 아버님을 모셔왔고, 집사님과 나는 큰집으로 아버님을 뵈러 갔다.

큰며느리 입장에서는 시동생, 동서가 자주 오니 큰 일거리다.

큰며느리도 일을 하시니 얼마나 힘든 일인가.


''여보, 형님도 힘드신데, 차라리 당신 혼자 가서 모셔와.

그럼 형님도 좀 쉬시고 좋잖아.''


그렇게 아버님은 큰집, 막내집을 오가며 지내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 해, 집사님과 나는 아버님 청을 수락하기로 했다. 형제들이 어떻든, 아버님이 너무 간곡하게 바라시니 그리 하기로 한 것이다. 아버님이 아무리 나를 이뻐하셔도 함께 살 자신은 없다. 함께 살다 아버님을 미워하게 될 까 봐 두려웠다.


집 가까이에 사실 집을 알아봤다. 계약 하기 전주에 막내아들은 보통 때처럼 아버님을 목욕시켜드리러 갔다.

목욕은 막내아들 몫이었다. 그날은 마침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여름방학이라 집에 와 있던 터라 아들도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아버지요, 막내며느리가 집을 알아봤어요. 이제 아버지 소원대로 막내랑 같이 살아요.''

''야야, 고맙데이...''


할아버지를 뵙고 온 아들도 좋아라 한다.


''엄마,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막내랑 같이 살자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어. 아이처럼!

짠하더라.''

''짠하긴, 엄만 걱정이 태산인데, 막상 가까이 살면...

아휴 ㅠ 낮엔 집에 아무도 없는데... 큰일이라도 나면.''






아버님께 뜻을 전한 후 매일 걱정이 한가득이다.

잠깐잠깐 뵐 때 좋은거지, 같이 사는 건 천지 차인데...

앞일이 막막하다.

아침엔 '괜찮을 거야.'

저녁엔 '아냐, 이건 아닌 거 같아.'


그렇게 걱정으로 일주일이 흘렀다.


딱 일주일이 지나고...

아버님이 떠나셨다.

'막내랑 같이 살 수 있다'라는 말만 들으시고...


큰 병 없이 90세에 주무시다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란다.

상인데 '호상'이라니...






오래된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아버님, 어머님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시고

찍은 액자가 나온다.


아버님 얼굴을 뵈니

죄송한 마음뿐이다.

조금만 더 먼저 같이 사시자고

할걸...

얼마나 같이 살고 싶으셨으면...


매주 오신다고 잔소리하고,

어떻게 같이 사냐고 잔소리하고,

왜 용돈 안 쓰시고 궁상떠시냐고 잔소리하고,


잔소리꾼 막내며느리를 그렇게도

이뻐하신 아버님이 문득 문득

보고싶다.

친정 아빠를 생각함 눈물은 안나는데,

아버님 생각을 하면 코끝이 찡하다.

친정아빠는 맛있는 음식을

원없이 드신거 같은데,

아버님은 ...

그래서 일까~~~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변해간다.

오늘 아침엔 걸으면서

내내 아버님 기억이

아련하다...




ㅡ아버님이 유난히 보고 싶은 날에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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