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성지의 수호성인 차범근
프랑크푸르트 빌리 브란츠 광장역 내 차범근 기둥은 한국에서 워낙 유명한 조형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우리의 ‘축구 영웅’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모두 알 수 없다. 기왕 프랑크푸르트에 왔으니 전성기 시절 차범근의 흔적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으로 달려간 이유다.
이 박물관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홈 경기장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 자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S반을 이용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역에 하차한 후 도보로 약 1㎞를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네이밍 라이츠 마케팅의 일환으로 독일 내 굴지의 금융기업인 코메르츠방크의 이름을 따고 있는 이 경기장의 본래 명칭은 발트슈타디온(Waldstadion)이다. 우리말로 숲 속의 스타디움이라는 뜻인데,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역에서 경기장까지 숲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는다는 경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숲 속 경기장이 발트슈타디온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우니온 베를린 등 14개 클럽이 숲 속에 스타디움을 조성해놓고 있는데 이 경기장들을 통칭해서 발트슈타디온으로 부른다. 물론 발트슈타디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발트슈타디온이 맞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은 훈련 구장으로 쓰이는 발트슈타디온의 보조구장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입장료는 5유로, 우리 돈을 약 7,000원이니 저렴한 티켓 값이다. 여타 축구 박물관에 비해 크기나 시설이 그리 대단한 편은 아니긴 해도, 클럽의 역사를 충실히 보존해놓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박물관 내에서 주목해야 할 역사는 세 가지다. 첫째는 1959-1960 유로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 전신) 준우승이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한 결승전에서 3-7로 대패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해트트릭, 푸스카스 페렌치가 한술 더 떠 네 골을 휘몰아치며 프랑크푸르트를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1950년대 유로피언컵 5연패를 달성했던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기를 거론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경기다.
언뜻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처지에서는 치욕이라 여길 만한 경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이 경기를 가장 빛나는 역사 중 하나로 여긴다. 이유가 있다. 독일 클럽으로는 사상 최초로 유럽 클럽대항전 결승에 올랐다는 위대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물론 결승전에서 어마어마한 스코어 차 패배를 당하긴 했어도, 객관적 전력상 당시 유럽 내에 적수가 없었던 레알 마드리드가 상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바로 최근 3년간 클럽이 일군 성과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2016-2017시즌 DFB 포칼 준우승으로 이미 꿈틀대는 승자 기질을 보인 바 있고, 2017-2018시즌 DB 포칼에서 ‘최강’ 바이에른 뮌헨을 물리치고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 우승을 발판 삼아 출전한 2018-2019 UEFA 유로파리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현재 진행형인 클럽의 중흥기라 지금 이 순간을 굉장히 특별하게 여긴다.
세 번째가 바로 차범근이 활약했을 당시의 팀이다. 차범근은 1979-1980시즌을 앞두고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했는데, 바로 이 시즌 UEFA컵(現 유로파리그의 전신) 정상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1980-1981시즌에는 DFB 포칼을 손에 거머쥐었다. 참고로 1979-1980시즌 UEFA컵 트로피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클럽 역사를 통틀어 가장 소중한 우승으로 여겨지는데, 클럽 사상 최초의 유럽 클럽대항전 우승이기 때문이다.
차범근은 에버딘전을 비롯해 총 세 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에버딘 사령탑을 맡고 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차범근을 통제 불가능한 선수로 평가했다거나, 당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떠오르던 신성으로 주목받던 로타어 마테우스가 차범근을 마크하는 데 진땀을 뺐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바로 이 시즌 UEFA컵에서 나왔다.
그 시절 차범근의 사진에 계속 시선이 갔다. 사실 몸담고 있는 <베스트 일레븐>의 전신인 <월간 축구>의 1970년대에 발간됐던 호를 보면 차범근의 풋풋한 시절부터 국가대표팀 최고참의 모습까지 모두 살필 수 있다. 처음 접하는 게 아닌 ‘선수’ 차범근의 사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들에 시선이 자꾸 갔던 이유가 있다.
1970년대 우리네 신문이나 잡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진들은 지금 기준에서 보면 작위적인 느낌까지 주는 연출이거나, 품질이 매우 좋지 못한 경기 사진이 대다수였다. 인쇄할 때 마치 잉크가 번진 듯한 사진도 여러 장이다. 어려웠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축구가 낳은 최초의 슈퍼스타가 담긴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웠다.
그 아쉬움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에서 해소했다. 약간은 손흥민의 모습도 겹쳐 보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차범근 모습은 자꾸 봐도 특별했다. 지금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축구를 전파하는 할아버지가 된 차범근의 모습이 친숙하지만, 이 사진에는 유럽 축구계를 호령한 ‘진짜 차범근’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전에도 늘 그랬지만, 그 사진을 보며 새삼 그에게 경외심을 느꼈을 정도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발트슈타디온 내부를 운 좋게 보게 됐다. 본래 스타디움 투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개방된 게이트를 발견해 슬쩍 들어가 풍경을 즐겼다. 우스갯소리로 ‘개구멍’을 통해 안을 보게 된 것이라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차범근이 이 경기장을 누비며 골을 넣는 모습을 상상한 게 먼저였다. 바로 이곳에서 차범근이 유럽 신화의 초석을 놓았다.
그런데 문득 기가 막힌 우연을 떠올리게 됐다. 발트슈타디온은 2006 FIFA 독일 월드컵서 ‘태극 전사’들이 토고를 상대로 원정 대회 첫 승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가 낳은 슈퍼스타의 숨결이 스며든 곳에서 한국 축구의 역사가 쓰였다고 생각하니 그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졌다. 그 역사적 승리가 발트슈타디온 속 한국 축구 수호성인의 가호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