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는 영웅을 잊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애당초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기대가 크지 않은 곳이었다. 좀 더 정직히 말하면 모든 여정을 시작하게 될 관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여겼다. 첫인상도 좋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도심으로 향하는 지하철 티켓 발권을 하지 못해 쩔쩔매던 내게 방법을 알려주는 ‘호의’와 그에 합당한 ‘현금’을 요구한 현지의 터키계 이민자 청년의 성대한(?) 환대까지 받았다. 모처럼의 유럽 나들이였는데, 기분부터 버리고 시작했다. 액땜이라 생각하려 한다.
그나마 프랑크푸르트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라는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유럽 최대의 금융 허브 도시라고 불릴 만치 도시 규모도 크며, 유럽의 대표적 관문으로 통하니 그 위상도 이 대륙 내에 자리한 큰 도시와 비교해 부족함이 없다. 유럽 하면 떠오르는 동화 같은 풍경은 없어도, 세계 최고 수준 선진국 독일의 오늘을 볼 수 있는 도시다.
그런 프랑크푸르트에 편견 한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직접 마주하기 전, 프랑크푸르트에 도시의 덩치에 걸맞은 규모의 빅 클럽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아스널·토트넘·첼시가 있는런던처럼, 혹은 레알 마드리드·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존재하는 마드리드처럼 프랑크푸르트도 세계인이 모두 아는 클럽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는 그런 큰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도시에는 아인트라흐트·FSV·로트 바이스 등 총 세 개의 프로팀이 자리하고 있다. 다름슈타트·오페바흐·마인츠 등 건실한 프로 클럽을 보유한 인근 도시까지 아우르면 이 지역은 독일 내에서 가장 축구 저변이 탄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팀도 우리가 생각하는 빅 클럽의 위상에는 못 미친다. 그 점이 아쉬웠다. 마니아 수준이 아닌 이상, 라이트 성향의 축구팬들은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도시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굉장히 뜨거운 팬 커뮤니티를 가진 매력적인 클럽이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클럽기가 걸린 장소를 곳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민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 팀은,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정말 의미가 큰 클럽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의 영원한 영웅 차범근이 유럽에서 자신의 재능을 드러냈던 팀이 바로 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다. 적어도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프랑크푸르트는 볼 게 없는 도시가 아닌 셈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오게 된다면, 차범근과 아인트라흐트의 흔적을 좇는 도시 탐험을 추천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핫 스폿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U반 1·2·3·4·5·8호선이 교차하는 빌리 브란트 광장역(Willi-Brandt-Platz)이다. 뜬금없이 지하철역을 소개한 게 아니다. 이곳에는 국내에도 방송과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른바 ‘차범근 기둥’이 존재한다. 그렇다. 차범근 본인이 직접 현장을 찾아 자신의 허벅지를 보고 감탄했던 그 지하철역 내 기둥이다.
과거 서독의 뛰어난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의 이름을 딴 이 역에는 역대 최고 감독 포함 아인트라흐트의 열두 영웅의 현역 시절 모습이 기둥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이 영웅들은 2013년 아인트라흐트가 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토대로 뽑혔다. 팬들이 직접 고심 끝에 선정했으니, 진정 ‘프랑크푸르터’들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이 열두 명 중 차범근이 속해 있다.
한국에서는 오로지 차범근만 조명된 터라, 나머지 열한 기둥에 대해서는 사실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하지만 차범근과 마찬가지로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사랑을 영원토록 받는 이들인 만큼, 그 영광의 주인공들을 일일이 소개한다. 나름의 팁이 될 것이다.
HEAD COACH 외르 베르거 Jorg Berger
동독 출신으로 서독으로 탈주를 감행해 커리어를 쌓은 지도자. 분데스리가에서 강등팀을 구하는 ‘소방수’로 유명했으며, 커리어 황금기를 아인트라흐트에서 보냈다. 리그 최고 성적은 3위.
GK 오카 니콜로프 Oka Nikolov
1992년 아인트라흐트에서 데뷔해 2013년 미국 무대로 떠날 때까지 골문을 지킨 마케도니아 수문장. 독일 내에서는 아인트라흐트의 ‘원 클럽 맨’으로 통한다.
DF 브루노 페차이 Bruno Pezzay
1980년대 초반 유럽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였다. 차범근의 동료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페차이가 수비를 담당하고 차범근이 공격의 핵 구실을 했다는 말도 있다. 1994년 갑작스러운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만 39세.
DF 칼 하인츠 쾨르벨 Karl Heinz Korbel
1972년부터 1991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19년을 뛴 ‘미스터 아인트라흐트’. 쾨르벨이 남긴 통산 605경기 출전은 현재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이다.
DF 우베 빈데발트 Uwe Bindewald
은퇴 선언한 2004-2005시즌 에쉬본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경력을 아인트라흐트에서 보냈다. 프로 커리어 17년 동안 퇴장이 단 한 차례에 불과한 ‘깨끗한 매너’를 가진 명수비수.
MF 위르겐 그라보스키 Jurgen Grawoski
프란츠 베켄바워 등과 1970년대 서독 축구의 황금기를 주도한 축구 영웅. 아인트라흐트 레전드 중 베른트 횔첸바인과 더불어 역대 최고라 손꼽힌다. 차범근과도 발을 맞추었다.
MF 우베 바인 Uwe Bein
1990년대에 활동한 독일의 기술파 중원 사령관. 수비진을 단번에 가르는 패스로 정평난 특급 미드필더였다. 1990년대 J리그에서도 활동했다. 당시 몸담은 팀은 우라와 레즈.
MF 알렉산더 슈르 Alexander Schur
국제적 명성은 없을지 몰라도 현지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드필더.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로컬 스타’이자 ‘투쟁심의 화신’이었다고 평가받는다. 활동 시기는 1995~2006년.
MF 제이 제이 오코차 Jay Jay Okocha
1990년대를 풍미한 ‘나이지리아 마법사’.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화려한 개인기로 유명했으며, 유럽 커리어 출발점이 바로 아인트라흐트였다. 팬들에게서 역대 최고 미드필더로 선정된 이유다.
FW 앤서니 예보아 Anthony Yeboah
분데스리가 역대 최초 아프리카 출신 득점왕. 심지어 2연패였는데, 이 업적을 아인트라흐트의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달성했다. 유럽을 호령한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슈퍼스타라 해도 무방하다.
FW 베른트 횔첸바인 Bernd Holzenbein
현역 시절에는 서독과 아인트라흐트를 대표한 전설적 윙 포워드.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라는 빛나는 기록의 소유자이다. 그라보스키와 더불어 역대 최고 선수를 다투는 전설 중 전설이다.
FW 차범근 Bum Kun Cha
프랑크푸르트를 UEFA컵 정상에 올려놓은 ‘갈색 폭격기’. 함께 선정된 공격수들에 비해 기록적으로는 다소 초라하긴 하다. 그런 차범근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유가 있다.
이 지하철역 기둥을 바라보면서 여러 감정이 밀려들었다. 차범근과 같은 핏줄을 지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당연히 가장 먼저 들었다. 그 후에는 프랑크푸르트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 졌다. 영웅을 기억하고자 하는 그들의 자세 때문이다.
사실 지하철역 내 기둥을 랩핑해 팀과 선수를 홍보하는 건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쩌면 빌리 브란트 광장역의 그 기둥들도 별반 다를 게 없는 흔한 장식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 지우고 새로운 것을 입힌다. 잠깐의 이벤트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래서 이곳을 찾았을 때 사라졌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식’으로는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우리와는 달랐다. 언급했듯이 이 영웅들은 지난 2013년에 팬들에 의해 선정됐다. 그 후 햇수로 6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구도 이 기둥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다. 긴 세월이 흘러도, 시민들로부터 프랑크푸르트의 축구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중에 차범근이 있다.
홀연히 날아온 더벅머리 아시아 청년이 스폰서인 ‘미놀타’가 새겨진 검붉은 셔츠를 입고 찬란한 UEFA컵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은 현지 프랑크푸르트 축구팬 커뮤니티에서 잊지 못할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클럽의 최전성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구전을 통해 지금 세대의 팬들에게 이어져오고 있다. 사실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리 길다 할 수 없는 세 시즌을 보낸 선수였다. 어쩌면 잠깐 스쳐간 선수로 기억할 법도 한데도, 그들은 차범근을 영웅으로 추억한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속 차범근이 주는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프랑크푸르트 빌리 브란트 광장역을 꼭 방문하길 추천한다. 오픈 게이트 지하철역이라 굳이 열차에 탑승하지 않아도 승강장에 갈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찾아도 된다. 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족이 있다. 우리는 차범근이 독일 내에서 ‘차붐’이라 불린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독일 현지 언론에서 붙였다는 이 표현을 현지인에게 말하니, 알아먹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담백하게 그의 영문 풀 네임 ‘붐쿤차(Bum Kun Cha)’라 발음하며 견해를 물어보자. 나이 지긋한 아인트라흐트 팬들로부터 그의 무용담을 들을 수 있을 것이며, 몇몇에게서는 ‘두리’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두리가 맞다. 한국 축구팬들은 그 이야기에 어깨가 절로 으쓱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