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배운 선택의 기술

3부. 화려한 번아웃 직전

by 게으른 우보만리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영어가 된다는 이유로 해외사업 부서에 배치되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맞닥뜨렸다.


해외사업은 정말 낯설었다. 계약 문서에는 처음 보는 용어가 가득했고, 협상 테이블에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모두가 머뭇거릴 때, 나는 주말 내내 제안요청서를 읽고 정리했다. 월요일 부서회의에서 설명하자 모두 놀랐다. 유학 경험이 처음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나를 증명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열정은 금세 반발을 샀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해?”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총이었다. 노력해서 뭔가를 해내는 게 아니라, 괜히 나서서 분위기를 흐린다는 뉘앙스였다. 결국 중요한 업무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나는 지원 업무에 머물러야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이 참여하는 사업의 파트너사와 협상을 하러 본사에서 두 명이 출장을 갔다. 그러나 출장자들은 협상을 제쳐두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나는 한국 사무실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조건을 정리하고 제안서를 작성했지만, 사업은 결국 참여도 못한 채 끝났다. 그 순간 결심했다. 이 부서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다행히 다른 길이 열렸다. 옆 부서에서 새로운 기회를 제안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조직 안에서는 늘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누구를 따를 것인가, 어디에 몸을 둘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내 길이 되었다. 때로는 억울했지만, 그 억울함 덕분에 더 많은 것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 준비가 나중에는 무기가 되었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의를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일을 다 가져갈 수는 없고, 어떤 건 잃어야 다른 걸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현장은 늘 내게 선택을 요구했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 선택들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려운 선택들이야말로 나를 성장시켰다.

때로는 억울한 자리에서, 때로는 버려진 일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배웠다.
그것이 현장에서 배운, 가장 값진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 나는 또 다른 무대에 서게 되었다.
첫 해외 프로젝트에서의 좌절을 뒤로하고,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번아웃을 맞게 되었다. 파견과 동시에 시작된 긴 싸움, 그리고 무너지고 다시 회복하기까지의 시간은 이 책의 첫 장을 열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지나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희희재라는 작은 집을 얻었다. 이제는 그곳에서 비로소 숨을 고르며, 새로운 삶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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