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필살기 (14) - 목소리가 사라진 시대의 소통법
언제부턴가 전화기가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것 같다. '전화(電話)'라면 마땅히 목소리가 오가야 하거늘,
이제 내 손 안의 기계는 쉴 새 없이 글자만 쏟아낸다. 반가운 마음에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면, 상대방은 당황한 기색으로 묻는다. "무슨 급한 일 있으세요?"
용건이 없어도 안부를 묻고, 목소리 톤 하나로 서로의 기분을 짐작하던 시절은 저물었다. 이제 세상은 짧은 문장과 기호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밥 먹었니?"라는 다정한 물음 대신 스마트폰 화면 '엄지 척' 모양의 그림 하나가 툭 던져질 뿐이다.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글자의 파편들만 떠다닌다.
메시지 세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다. 오타 하나에 마음이 졸이고, 띄어쓰기 하나에 오해가 생길까 신중해진다.
말로 하면 10초면 끝날 일을, 돋보기를 치켜세우고 독수리 타법으로 5분 넘게 씨름하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싶어 허탈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침묵'의 무게다. 전화를 걸면 바로 연결되던 마음이, 메시지 세상에서는 상대방의 숫자 '1'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 된다.
답장이 늦어지면 혹여 내가 실수한 건 없는지, 아니면 내가 이제는 잊힌 존재가 된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통의 본질은 도구에 있지 않다. 전신타자기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에도, 삐삐에 숫자를 남기던 시절에도 우리는 마음을 전하는 법을 알았다.
지금의 메시지 세상 역시 그저 소통의 모양이 바뀌었을 뿐, 그 속에 담긴 그리움과 사랑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툰 손가락으로 공들여 적어 내린 내 짧은 문장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목소리만큼이나 깊은 울림으로 닿기를 바랄 뿐이다.
글자 뒤에 숨은 진심을 읽어낼 줄 아는 혜안, 그것이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베이비부머들의 새로운 소통법이다.
비록 내 타이핑은 느리고 오타는 잦을지 몰라도, 그 속에 담긴 내 마음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다.
목소리가 사라진 시대라지만, 나는 오늘도 정성껏 글자를 골라 세상에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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