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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Sep 06. 2021

[이상한 꿈을 꾸었다1]

KUA Conte #09

[이상한 꿈을 꾸었다] KUA Conte #09 

꿈을 꾸었다







시작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앨리스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금발에 까만 머리띠를 한 예쁘장한 얼굴 대신 장미꽃이 가득했다. 


장미꽃은 심지어 앨리스의 머리처럼 노랗지도 않고, 대부분 붉거나 보랏빛을 띄었으니 나 말고는 앨리스를 알아볼 이가 없을 것 같았다.











앨리스는 (당연히) 토끼를 쫓아 굴로 뛰어들었다.

처음에 나는 앨리스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굴 속으로 그녀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어느새 앨리스가 되었다.



나는 어느새 앨리스가 되어 빠르게 굴 속으로 떨어고 있었다.



끝없이 길고 긴 굴이었다. 어느 순간 낙하가 지루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떨어지며 벽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흙인 줄만 알았던 벽은 실로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찬 벽장이었다. 꿀단지를 열어 꿀을 한 입 맛보기도 하고(세상에 없던 상큼하고 달콤한 꿀이었다!) 구두솔을 찾아 흙이 묻은 구두를 닦기도 하고, 장미 머리가 되어도 앞은 볼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이 굴은 혹시 세상의 끝으로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럼 어디로 떨어지는 걸까 아마도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는 갑자기! 건초더미 위로 떨어졌다.






건초더미는 폭신하고 따뜻했다. 길고 긴 낙하여행을 한 나는 한 숨 자고 싶었지만 내가 앨리스가 된 이상, 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한 흰 토끼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팔다리에 힘을 준 순간, 건초더미는 거대한 초콜릿 푸딩으로 변했다. 한 번 힘이 들어간 몸은 마치 늪에 빠진 하마처럼 푸딩 속으로 하염없이 파고들었다.






어푸어푸, 푸딩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니 어느새 초콜릿 푸딩이 장미꽃으로 된 입 속에 가득 들어왔다. 우물우물 씹어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푸딩을 먹으면 먹을 수록 내 몸이 작아졌다. 나는 어느새 개미만큼 작아졌다. 세상에! 살려주세요!! 이렇게 계속 작아지다가는 소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개미 사이즈에서 더 작아지지는 않았다.






푸딩 속을 재빠르게 헤엄치던 나는 푸딩의 중심부에서 아직 녹지 않은 초콜릿을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초콜릿을 한입 먹으니 손가락이 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와구와구, 맛을 따질 새도 없이 초콜릿을 모두 입에 넣었다. 아뿔싸, 이번에는 몸이 너무 커졌다. 처음 떨어졌을 때 공간을 가늠할 수도 없는 큰방이었는데, 이제는 장미머리가 방안에 가득차 나는 몸을 구부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방이 폭발시키기 전에 서둘러 다시 푸딩을 삼켰다.





푸딩을 거의 다 먹고 나니 크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방을 둘러보니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흰토끼는 들어갈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작은 문이었다. 문을 돌려 열어보니 밖에는 광활한 해변가가 보였다. 이 밖을 나서면 다시는 못 돌아 오는 거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걱정이 들어서니 머리를 장식한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 이 방에 남아있는다고 해서 돌아갈 길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는데 생각이 미친 나는 ‘까짓거 가보지 뭐,’ 결심하고 조금 남은 푸딩을 모두 먹고 우리집 고양이만큼 작아진 몸으로 문 밖을 나섰다.




해변을 걸어가다보니 모래 사장 위에 새까맣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 쪽으로 가서 자세히 보니 작은 성게들이 모여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 얘, 얘, 너 누구니?

- 나는 앨리스야. 너는 누구니?

- 보면 몰라? 우리는 성게야. 근데 너 어디 가니?

- 아직 모르겠어. 이 해변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혹시 알아?

- 해변은 그냥 해변이야. 이어져 있다는게 무슨 뜻이지?






나는 성게가 해변 저 편으로 가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걸음을 떼려는 순간 성게가 나를 불러 세웠다.








- 앨리스! 애-ㄹ-ㄹ-ㅣ-ㅅ-ㅡ!!!

- ?

- 너 ‘어디로’ 갈거니?

- 모른다니까?

- 나도 데려가, 네 걸음은 나보다 빠르니 가능할거야

- 하지만 너는 너무 뾰족해, 네 가시가 나를 아프게 할 걸

- 보드라운 해초 위에 놓으면 돼! 부탁할게 앨리스! 최대한 찔리지 않게 할게!







나는 조심히 성게를 들어 해초로 감쌌다. 처음에 까칠해 보였던 성게는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의 성격은 성게 속처럼 말랑말랑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성게와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비가 내리며 풍랑이 일었다.





 비는 보랏빛을 띄었다.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오색빛을 발하며 그 중에서도 보라색을 가장 강렬하게 튕겨내는 비였다. 빗줄기는 삽시간에 굵어졌다. 간간히 우박도 보였다. 조금 더 있었다간 내 장미꽃 머리가 산산히 흩어질 터였다. 다행히 우리는 근처 작은 대피소를 찾을 수 있었다.




보라색 비는 옷에 묻으면 곤란하다



나는 모래 사장에 푹푹 빠지는 발을 최대한 빠르게 굴리며 대피소로 들어갔다. 주인없이 버려진 대피소는 나무로 성의없게 만들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안식처였다. 틈 사이로 보라색 비가 새어들어왔다.





전화받아 전화받아!!





듣기 거슬리는 금속성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누군가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작은 탁자 위에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전화기는 살아있는 랍스터였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 벨을 울린 것이다. ‘재미있는 곳이로군' 나는 랍스터의 소음을 그치기 위해서 재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소리는 랍스터의 입에서 나왔다


전화기는 이렇게 생겼다




- 여보세요?

- 코끼리가 가져갈거야. 너는 가져갈지 말지 선택해야해

- 네? 누구세요?

- 코끼리는 총 네마리. 모두 각자의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지. 원한다면 문제를 풀어도 좋아





전화는 툭 끊어졌다. 바깥은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밝아졌다. 나는 랍스터에게 물었다.






- 어이, 이 전화 누가 한거야?

누가 했는지는 안 중요해. 코끼리는 곧 올거야. 그 전에 비를 좀 닦고 정신차리는게 좋을 걸. 지금은 멍청해보이니까

- 너 말 되게 나쁘게 한다. 난 닦고 싶어도 수건이 없어

비는 수건으로 안 닦여, 바람으로 닦는다구. 눈을 감고 집중해서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면 바람이 올거야






나는 급한 마음에 바로 눈을 감고 휘파람을 불었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가 없어서 멍청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 휘파람의 곡조가 선명해지자 기분좋은 산들 바람이 불었다. 성게와 나는 언제 흠뻑 젖었냐는 듯 보송보송해졌다. 휘파람을 멈추자 이번에는 바깥에서 노랫 소리가 들렸다.






Hurray! Ho! 나는 울-거-워!

Hurray! Ho! 나는 우-즐-해!

Hurray! Ho! 나는 초-려-해!

Hurray! Ho! 나는 싫-랑-해!

Hurray! Ho! 나는 늙-젊-어!










코끼리들이 오고 있다





바깥을 본 나는 난생처음 보는 괴상한 생명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섯 마리의 코끼리가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코끼리에 붙어 있는 다리였다. 거미라고 해야하나, 말이라고 해야 하나, 어울리지 않게 늘씬하고 끝없이 기다란 다리를 자랑하는 코끼리들이 구름과 같은 높이에서 노래를 부르며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은 걷는다기보다는 차라리 날고 있었다. 너풀너풀, 사뿐사뿐.




그러나 그 가벼운 걸음은 어딘가 위협적이었다. 나는 장미꽃잎 머리를 단정히 하고 성게를 다시 해초로 잘 감쌌다. 코끼리 행렬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달큰하고 강렬한 향기가 났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 다음화에 계속







⋇ 위 글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과 삶을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KUA Conte 는 쿠도스 아틀리에에서 발행하는 단편입니다

⋇ And More…


- 살바도르 달리는 실제로 잠을 잘 때 손에 펜과 메모를 들고 찰나의 꿈에서 본 이미지를 기억하고 이를 작품에 옮기고는 했습니다

- 이러한 기법을 Automatism(자동기술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꿈과 같은 환경을 통해 의식적 통제로부터 해방된 구성을 만드는데 목적을 둡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이 기법은 초현실주의 화가 뿐 아니라 앙드레 브르통과 같은 시인들도 자주 사용한 창작 방법입니다. (그들은 최면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 이들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상징이나 이미지가 비록 의식의 세계에서는 낯설게 보여도, 이는 사실 무의식적 심리 상태 그대로의 기록이므로 예술적 의의를 가진다고 믿었습니다.

- 달리가 자주 사용한 성게, 바닷가재, 전화기, 빵과 같은 오브제는 딱딱한 외부와 부드러운 내부의 대조를 이루는 사물로, 이는 합리성이라는 외연에 같힌 인간의 내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달리는 실제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달리의 앨리스는 장미 머리를 하고 꼬인 줄로 줄넘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작의 소녀보다는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를 풍깁니다.












<Alice in Wonderland>, 살바도르 달리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살바도르 달리









<랍스터 전화>, 살바도르 달리











<돈키호테와 성게>, 살바도르 달리







달리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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