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아름다운 청춘들의 치열한 이야기
지방 사립대 비인기학과 올해 8월 졸업, 학점 85.7점, 어학성적 없음, 인턴경험 없음, 봉사활동 경험 없음, 학과 학회장 1년 경험, 관련 분야 알바 경험 2개월, 관련 분야 자격증 2개, 사무 관련 자격증 1개, 현재 노량진 고시원에서 1년 동안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
이번 달 초, 키가 170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에 투박한 얼굴의 한 남학생이 사무실에 찾아 왔다. 우선, 자리를 권하고 그 학생에게 어디를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한국*****'이라는 공기업이란다. 조금 이상했다. 대부분의 공기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공기업이라 말하지 그렇게 한 공기업을 꼭 집어서 말하진 않는다.
"네. 그럼, 공기업을 준비하고 계시는 건가요?"
"아뇨. *****에 지원하려고요."
"아니, 거기만 지원하신다고요?"
"네, 전 *****만 갈려고요."
갑자기 당황스러워졌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 학생이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지방 사립대를 올해 8월에 졸업했다. 하지만 마땅히 취업할 곳이 없는 인기 없는 학과였다. 그래서 졸업반이 되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와 노량진에 35만 원짜리 햇빛을 전혀 볼 수 없는 고시원 방을 하나 얻어 놓고 학원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매일 학원을 오가며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1년여의 시간을 보냈지만 공무원 시험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대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낼 수 있는 스펙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전공했던 학과와 관련된 공기업 한 곳에서 채용공고가 나왔다. 이게 그 학생이 그 공기업에만 지원한다는 답변의 이유였다.
일정이 촉박했다. 흔히 말하는 스펙도 좋지 않았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비인기학과였던 전공이 그 공기업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기회가 있다면 공기업의 NCS 능력중심 채용으로 스펙 보다는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해줄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돈을 주고 구입한 그 공기업의 합격자 자기소개서를 보고 부랴부랴 써온 자기소개서를 내민다. 그 공기업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비전과 경영전략들이 자기소개서의 여기저기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멋진 문장들이었지만 두서가 없다. 무엇이 장점인지,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 설득은커녕 이해하기도 어렵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자기소개서 전략부터 다시 세웠다. 그래서 세웠던 전략이 바로 '촌놈'이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 학생에 맞게, 그 공기업의 사업분야에 맞게 자기소개서에 투박하지만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을 담도록 했다. 잔꾀를 부릴지도 모르고 진득하니 한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그런 지원자의 모습. 호프집이 아닌 논두렁에서 막걸리를 즐겨마실 수 있는 그런 이미지였다. 그게 그 공기업에서 원하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학생은 며칠 동안 자기소개서에만 매달렸다. 밤늦게 보내온 자기소개서를 검토하고 다시 수정 방향을 알려주기를 수차례, 드디어 자기소개서가 완성되었다. 처음 써왔던 자기소개서와 전혀 다른, 투박한 자기소개서가 완성됐다. 멋진 꿈과 원대한 포부, 그럴싸한 다짐도 없었지만 그 학생의 진정성이 담겨져 있었다.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이제, 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 하지만 다시 한 고비가 남아있다. 서류전형 결과 발표 후 면접을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고 바로 면접 연습을 하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1분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했다. 그저 연습일 뿐인데도 잔뜩 긴장해서 1분 자기소개를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멈추고 한숨을 내쉰다. 1분 자기소개를 위해 외웠던 내용을 까먹은 것이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다. 외웠던 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들의 키워드만을 다시 써보라고 조언했다. 그 키워드, 이야기의 순서만을 기억하고 외웠던 내용을 녹음기처럼 그대로 말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조금 나아졌다.
준비해온 예상 면접 질문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면접 질문을 가지고 실전 같은 면접 연습을 시작했다. 답변이 길어지면 가차 없이 "그만!, 그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지원을 했어요?"라는 독설을 내뱉고 다음 질문을 정신없이 내던진다. 답변하는 태도도 문제였다. 면접위원인 나한테 시선을 두지 않고 자꾸만 눈동자를 옆으로 돌린다. 한숨을 내뱉곤 하고 몸을 건들 건린다. 이런 모습을 모두 캠코더에 담아서 모의면접이 끝난 후, 동영상을 보면서 자세를 지적하고 답변 내용을 조언해 준다. 하루에 3시간씩, 이렇게 이틀을 연습했다. 남는 시간에는 사무실의 내 옆자리에 앉아서 그 공기업의 홈페이지에 있는 사업안내 내용을 보면서 벽을 보고 소리 내서 브리핑을 하도록 했다. 그 공기업의 사업내용을 이해하고 사업 관련 용어들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자신감 없던 말투에도 조금씩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제 서류전형만 통과하면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불안했지만 "그래도 잘 되겠지."라는 기대 속에 전화를 기다렸다.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그리고 며칠 되지 않아 드디어 면접 날이 다가왔다. 긴장해서인지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단다. 그 학생에게 "촌놈이니까 촌놈답게 보여주고 촌놈처럼 답변하라고." 마지막 조언을 해주었다. 면접을 마치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조금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저 정말 여한 없이 면접 봤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했고 아는 만큼 다 이야기했어요."
어떤 면접 질문이 있었는지 물어 보았다. 나와 함께 준비했던 질문들과 비슷한 질문들이 제법 있었단다.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에는 "저는 촌놈이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자 "참 씩씩하다"라며 면접관이 웃었다는 소리에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최종합격자 발표일이다. 나까지 왠지 긴장이 되어서 자꾸만 시계를 보게 된다. 합격이 되지 않아서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핸드폰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좋은 소식이니까 전화를 했겠지라며 생각하면서도 불안하기만 하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 합격했어요."
그 학생의 목소리가 울먹이듯 떨린다. 갑자기 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래, 축하해요. 정말 고생했어요. 어머니께는요?"
"네, 방금 전화드려서 오늘 내려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이번 추석에는 그 학생의 시골집은 잔치 분위기일 것 같다. 온동네 사람들에게 아들 녀석 자랑하시려고 일부러 마을 길을 돌아다니실 그 학생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빠듯한 시골 살림에 서울 가서 공부하겠다는 자식 뒷바라지로 더 굽었을 등을 당당히 펴고 말이다.
아마 그 학생이 서울의 좋은 대학의 인기 있는 학과를 나왔더라면 오히려 더 취업이 어려웠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지 않은 학교에 변변한 스펙도 없는 그 학생이 그나마 선택할 수 있었던 직장이 그곳 뿐이었기 때문에 더 집중하고 성공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밤을 새워가며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던 덕분이 아닐까?
지금쯤 설레는 마음에 시골집으로 달려가고 있을 그 우직한 촌놈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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