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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un 29. 2021

참는 자에게 복이 있냐!





예전엔 생각지 않던 얘기였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복을 받으려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그래도 싸움 나기 싫거나, 대립을 원하지 않을때 참는다.

그럴때 하는 말이다.

그렇게 참다 보면 복이 오겠지...


하지만, 세상만사 인간사

나만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은 많다.

잠시 잠깐 참는다고 그 시간은 넘어가겠지만, 그 상황은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하는데

왜 믿어 주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는 걸까...


나만 참으면 모든 것이 조용해질 거야...

잠시 잠깐 참으면 해결될 거야...

나중에 다 설명하고, 얘기하면 될거야...


이렇게 시간을, 상황을 넘기려 했던 내게 세상은

'또 너냐.'였다.


인식의 정의는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것이라고...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한번 실수에 대한 관념은 머릿속에 남아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다.


참는 것이 좋은게 아니란 말일까?


세상은 24절기, 12개월, 365일, 24시간, 60분, 60초를 살아간다.

치열하게, 스피디(speedy)하게...

내가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고,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노력해야 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또 너냐'는 대단한 약점으로 잡힐수 밖에 없다.


입 다물고 있다고 미덕의 관용을 베풀지 않는 세상이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면,

그래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어떤 복이 내게 올지는 모르겠다. 이제껏 참고 살았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천벌 받을거야.'란 사람은 천벌 받지 않고 잘 살고 있고,

'복 받을거야.'란 사람은 어떤 복을 받고 사는지 알고 싶다.

그렇게 참았던 속 쓰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대립이 싫어 참고 있다고

말하는 걸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싸움이 싫어 피하는 것이지

성질 없는 사람이 아니다.


참는 미덕이란

내가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약자가 아닐때 할수 있는 행동같다.

참아야 할때를 알고 참는 것과,

참지 말아야 할때 참는 것은 첨이하게 다르다.

잘못하면 누명을 쓰거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또 너냐'는 소릴 들을수 있다.

상황판단을 잘해서 참는 것이 미덕으로 남을때,

우린 참는 보람을 느낀다.

참는 다고 얼마나 복(福)을 받겠나

그저 둥글게 둥글게 싸우지 말고 웃으며 살자는 말이겠지...


















'참을 인(忍)이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살인을 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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