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사람은 스킬이 아니라 무대를 짠다.
사람을 잘 쓰는 용인술이 필요했고, 그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아무리 탁월하게 이끌어도 팔리는 판이 짜여 있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허공에 흩어진다. 무대 없는 배우가 존재할 수 없듯, 장기판이 없는 장기에서 수 싸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영업기획은 단순히 판매 기술이 아니라 성과가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무대를 설계하는 일이다.
나는 여러 사업과 컨설팅 현장에서 이 원리를 수없이 확인했다. 팔리는 판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상품기획과 영업기획이 맞물려 돌아갈 때만 비로소 탄생한다. 무엇을 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팔 것인가. 이 두 가지를 함께 짜지 않으면 처음에는 반짝할 수 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상품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쟁우위를 찾는 것이다. 같은 업계, 같은 조건에서 단순히 가격을 낮추면 금세 소진된다. 고객은 잠깐 몰려왔다가도 곧 사라진다. 살아남는 길은 나만이 가진 엣지를 발견하는 데 있다. 내가 가진 서비스와 제품 중 무엇이 가장 희소성이 높고,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가. 그 포인트가 상품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은 타깃시장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모든 고객을 잡으려는 욕심은 가장 흔한 실패다. 처음에는 작은 시장에서 시드머니를 확보해야 한다. 대체로 b2c에서 시작해 b2b, 그다음 b2g로 확장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시장을 키워나가는 순서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상품은 고객의 욕망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일상의 불편과 불만 속에 숨어 있다. 회원제 협회를 운영할 때, 가장 큰 불만은 ‘내가 얻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 불만을 혜택 설계의 단서로 삼아, 단순하고 즉각 체감할 수 있는 보람을 주는 구조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사소한 불만이 곧 상품의 니즈였던 셈이다.
같은 서비스도 포장과 언어에 따라 전혀 다른 상품으로 보인다. 이름과 메시지를 바꾸고, 이야기와 이미지를 덧입히면 시장에서의 위치가 달라진다. 과거 자영업 매장을 리브랜딩했던 경험이 있다. 원래는 실내포차였던 곳을 지역 상권에 맞게 곱창 전문점으로 전환했다. 젊은층이 주 고객인 노량진이라는 특성을 반영해 19,800원 세트 메뉴를 주력으로 내세웠고, 곱창볶음·홍합탕·치킨 반마리를 무한리필로 제공했다. 여기에 낙서 벽을 만들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릴 수 있게 했고, 추억의 불량식품과 바형 아이스크림을 무료로 제공해 120%의 만족도를 설계했다. 입지가 좋지 않아 코너 지하에 있는 매장이었지만, 전단지와 입간판으로 동선을 보완했고, 결국 SNS를 통해 이색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세 달 만에 매출이 네 배로 뛰었다. 웨이팅이 생기는 집이 된 것이다. 자영업 사례이지만 이 경험은 분명히 말해준다. 상품을 어떻게 기획하고 어떤 경험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가격과 패키지 설계 역시 중요하다. 고객은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상·중·하 패키지를 만들어 중간 상품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본은 체험용, 상위는 상징적 프리미엄, 중간은 가성비 최적화. 여기에 작은 혜택을 더해 고객이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게 하면 만족도는 120%로 올라가고, 재구매와 추천으로 이어진다.
영업은 이 상품을 어떻게 시장에 연결할지의 문제다.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온라인에서 만날지, 오프라인에서 만날지, 또는 그 둘을 어떻게 결합할지. 처음 만난 고객은 대부분 떠나버린다. 그래서 영업은 퍼널 설계다. DB를 수집하고 관리하며, 무료 체험이나 샘플을 통해 후기를 확보해야 한다. 후기와 증거는 어떤 세일즈보다 강력한 설득이다. 이후 반응을 분석하며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상담에서 막히는지, 가격에서 막히는지, 클로징에서 막히는지. 그때마다 피보팅하며 최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번의 거래로 끝나는 영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고객의 니즈는 늘 변하고, 그 변화에 따라 추가 상품과 재구매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업세일과 리세일은 영업의 뼈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매출 목표에 맞춰 주 단위, 월 단위로 점검해야 한다. 성과는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수십 번의 미세 조정 끝에 쌓인다.
팔리는 판의 힘은 성공과 실패의 교차 속에서 드러난다. 협회 회원 모집 구조를 재설계했을 때 소극적이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추천하며 배가 성장했다. 퍼스널브랜드 컨설팅 현장에서도 클라이언트가 “내게 맞는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는 확신을 얻자, 억지 영업 없이도 DB가 몰려들었다. 반대로 시니어 교육사업에서는 판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아프게 배웠다. 구매력이 있는 은퇴자들을 타깃으로 무료 교육과 자료 배포를 진행해 DB는 쌓였지만, 창업과 취업, 내향적 성향과 적극적 성향이 한 과정에 섞이자 효율은 떨어지고, 외부 강사 비용은 늘어나 채산성이 무너졌다. DB는 숫자에 불과했고, 판이 맞지 않으면 성과는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영업기획의 최소조건을 프레임을 짜는 힘이라 말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다르게 보이게 만들고, 필요 없는 제품도 필요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 기존 시장에 들어가 경쟁하는 대신 새로운 판을 만들어 독과점하거나 최소화된 경쟁 환경을 만드는 것. 그때 고객은 억지로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온다.
브랜드와 영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제품을 같은 시장에서 팔면 자본과 규모의 논리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브랜드를 가진 사람은 판을 설계하는 권한을 쥔다. 가격을 조정할 수 있고, 프로모션을 디자인할 수 있으며, 다양한 영업 전략을 펼칠 수 있다. 브랜드는 상품의 외피가 아니라 영업 전체를 지배하는 힘이다.
팔리는 판은 결국 이렇게 완성된다. 상품기획과 영업기획을 함께 짜고,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읽고, 브랜드로 차별화된 프레임을 만드는 일. 그래야 성과가 쌓이고, 지속가능한 영업이 가능하다. 용인술이 사람을 어디에 둘 것인가였다면, 리더십은 그들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였다. 그리고 이제 영업기획은 그 모든 흐름을 성과로 전환시키는 무대다. 무대 없는 배우가 없듯, 판 없는 영업은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사업의 성패는 얼마나 정교하게 판을 짜느냐에 달려 있다.
다음 편에서는 실제로 결제까지 이어지는 영업스킬에 대해 간략히 다룰 예정이다. 클로징(계약 성사의 마지막단계)에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이 보시면 좋을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