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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Sep 21. 2019

꿈에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꿈을 꾸었다. 애기 목에 캐뉼라가 빠져 있었다.


무서워 오그라든 마음을 다잡고 다시 끼워보려 했지만 구멍이 작아졌는지 도통 들어가질 않았다.


넋이 나갈 듯 정신없던 와중에 복동이가 계속 무리 없이 숨 쉬고 있는 걸 확인한 순간,


'아- 이제 캐뉼라를 뺄 수 있겠구나.'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은 환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훑었다.


엇, 그런데 목소리가 나질 않는다. 어, 그러면 안되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다시 절망감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캐뉼라가 없어진 아기의 목과 나의 감정 변화가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여, 꿈을 꾸고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것인가. 혹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복동이가 배앓이를 하느라 모두 잠을 설친 새벽,


피곤한 잠, 혼곤한 꿈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다섯 살은 족히 되어 보이던 딸의 울음소리에 앙- 소리가 섞였다.


의아해하며 바라본 딸의 얼굴은 우리 아기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만 꿈에서는 어쨌거나 내 딸이었는데,


어떤 맥락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해님이거든!"  "자전거 탈래요."  이 두 문장을 소리 내어 말했다.


아가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둑이 무너지듯 터진 나의 울음소리가 내 귀를 때리고, 꿈에서의 그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제 끝났구나. 드디어 내 아기가 말을 하네.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다 눈을 떴을 때, 내 눈은 말라있었고 커튼 사이로 히뿌옇게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너무나 생생하던 꿈을 곱씹어보며 또다시 가슴이 저려 나는 정말로 서럽게 울고 말았다. 아기를 깨울까봐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옷소매로 꾹꾹 눌러가며. 꿈이 헤집어놓은 내 무의식에 깔린 슬픔을 다시 가라앉혀야 한다. 오늘은 우리 복동이가 묽은 응가를 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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