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성상회 Aug 01. 2022

아빠 생각

5호 태풍 송다가 서해를 통과하느라 샤시가 꽤나 요란스레 덜컹거리는 저녁입니다. 아빠는 이 태풍이 콩밭의 비료를 호복 하게 적셔줄 비를 내려주길 바라며 이른 잠을 주무실 것입니다.


외갓집에서 신나게 노느라 고단했던 복동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요. 나는 아까 오후에 양손 가득 곤충을 잡아와선 손주들에게 둘러싸여 웃으시던 아빠의 사진을 보면서, 아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아궁이 앞에 앉아 구워진 개구리 뒷다리를 먹어본 적이 있었어요. 삼시 세끼를 먹이기에도 바쁘셨던 엄마가 개구리를 잡아 간식으로 주시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어느 날은 다리에 실이 묶여 폴짝거리는 참새를 마루에 앉아 구경하기도 했었는데, 분명히 아빠 솜씨였지요.


봄날에는 삐비를 한 주먹씩 뽑아다 주시곤 했어요. 풀잎 안에 숨어있는 은빛의 촉촉한 삐비를, 한주먹씩 모아 입안 가득 우물우물 씹으면 하나도 비리지 않은 새순에서 은은한 단물이 나왔습니다. 건드리면 툭 부러질 만큼 연한 찔레순도요. 한 움큼씩 꺾어다주시던, 가시마저 보드랍던 찔레순의 껍질을 벗겨 달큰하고 조금은 아린 맛이 나는 속살을 자주 먹었던 생각도 납니다.


사천 집에서 자라는 동안 재래식 변소가 무서웠던 우리는 언제나 마당에 똥을 눴습니다. 삽으로 그것들을 치우는 일은 항상 아빠 몫이었어요. 모든 것이 당연하던 철부지 시절이었지요.


우리가 어릴 적엔 한시바삐 들로 나가야 할 때에도 엄마가 딸들 머리를 차례로 단장해줄 때만큼은 절대로 재촉하는 법이 없었노라고, 엄마는 몇 번이고 말씀하셨어요.


어느 해였을까요. 서울서 가방 공장을 한다던 아빠 친구네 집에서 여러 날을 보내고 돌아오실 적에 아빠가 바나나를 사 오셨어요. 목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깝기만 하던 내 인생 첫 바나나였습니다. 황홀함을 맛보던 우리 네 자매를 그때의 아빠는 어떤 눈으로 보셨을런지요.






그러니까 내가 두서없이 이런 기억의 단편들을 꺼내놓는 까닭은, 아빠 마음의 흔적들을 더듬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곤충을 일부러 입에 물고 논둑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의기양양 걸어오시던 사진 속 아빠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소한 장난들로 우리를 웃게 하던 젊은 아빠의 표정과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복동이의 웃는 얼굴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면 말이에요.


사랑이지요.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어도 내 어린 날에 아빠가 있는 장면 장면들은 너무나 진하고 선명한 사랑이에요.


나이가 들어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고들 하지만, 우리에 대한 아빠의 마음이, 복동이를 보는 나의 마음과 같은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헤아려 보는 것은 그래도 이만큼 어른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여름의 한가운데, 바람에 일렁이는 벼와 파들 거리는 과실수의 잎들, 투둑 떨어지는 빗방울, 내 가족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이제 일흔이 된 아빠의 환한 얼굴을 차례로 떠올려봅니다. 딸이 이렇게 아빠 생각을 오랫동안 해본 적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깊은 밤, 빗줄기가 시원하게 굵어진 지 한참이네요. 아빠가 내일 아침에는 흡족해하시려나요. 우리 아빠, 내 아버지. 꿈결에 들리는 빗소리에 편안한 잠 주무시기를.







이전 14화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