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백화점이 문을 닫은 터라, 같은 건물 지하에 위치한 아쿠아리움은 매우 한적했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벤트 트리에는 ‘아빠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사람과 물고기는 계속 같이 살아요, 빨리 23년 5월이 되어 전역하고 다시 오고 싶어요.’처럼 어딘가 애틋하고 아름답고 웃픈 이야기들이 어여쁘게 열려있었다.
남편과 나는 그 한 켠에 ‘아기가 많이 아팠다가 회복하여 아쿠아리움에 오게 되었네요. 또 오고 싶어요.’라는 세속적인 멘트에 전화번호까지 적어 매달며 작당 모의하는 이들처럼 웃었다.
수박만큼 큰 검은 물고기들은 어느 블로그에서 본 터키 하늘의 열기구들처럼 물속을 떠다녔다. 아니, 물고기들은 멈춰있는데 물살이 조금씩 그들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꼭 사람 얼굴인 것 같아서 눈을 맞추기가 민망한 물고기를 보다가, 물고기를 보는 복동이와 남편의 뒤 편에 섰다. 오가는 이들이 드물던 아쿠아리움의 한 코너에서, 떠있는 물고기들의 움직임만큼이나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주변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휘익, 이렇게 마음에 바람이 부는 순간은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한 데서 비롯되지만, 그렇다고 언제고 다시 재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행복이다 싶은 찰나에는 얼마간의 슬픔이 따라붙는다. 사치스럽고 달콤한 슬픔 같은 것이.
찰칵, 우리는 젊고 아이가 건강하여 근심이 없던, 눈물 나게 운 좋은 여름날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