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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제주 Oct 22. 2023

[10]. 아이가 거꾸로 있다.

모든 관문을 통과했다고 생각한 순간, 평안이의 반격

32주 6일

 오늘은 또 4주 만에 평안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단다.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태명대로 평안하게 큰 사건 없이 엄마아빠 걱정 안 시키고 잘 지내고 있던 평안이가 아빠의 글쓰기 소재고갈을 걱정해서인지 짜잔 하고 거꾸로 뒤집혀 있었단다.


 이제 산부인과 좀 다녀봤다고, 처음에 평안이를 보러 다닐 때보다는 긴장도 덜 한채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일찍 퇴근해서, 지하철역 근처에 안정적인 곳에 주차까지 해두고 여유롭게 엄마를 기다리며, 이제 이렇게 병원 다닐 일도 몇 번 안 남았다고 약간의 감상에 젖어보기도 하다가,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엄마를 완벽한 타이밍에 태워서(지하철역 근처는 주정차가 안 되는 데다가 바로 옆은 경찰서고, 주기적으로 단속차량도 돌아다녀서 정확한 타이밍에 차를 대지 못하면 몇 바퀴를 돌아야 한단다) 병원에 딱 맞게 도착했단다.


 도착해서 엄마는 몇 가지 검사를 했고, 아빠는 여유롭게 건물 5층 화장실(진료실은 1층인데 남자화장실은 5층에 있단다.)까지 다녀온 후에 평안이를 만나러 들어갔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평소처럼 초음파를 보시다가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시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재차 확인하셨어. 그 순간 무언가 특이사항이 생겼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살짝 불안해졌단다.


 의사 선생님은 평안이가 거꾸로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 보통 아기는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엄마뱃속에서 머리가 땅바닥을 향해 있는데, 평안이가 지난 검진 때까지는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에 머리가 하늘을 향해 있었어. 이렇게 출산 때까지 하늘을 계속 보고 있으면 자연분만이 어렵고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는 엄마도 아빠도 많이 당황스러웠어. 아빠는 애써 담담한 척하려고 했고, 엄마도 눈물이 그렁그렁 거리기 시작했단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양수의 양이 충분해서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하시면서, 집에서 매일 고양이자세를 통해 평안이가 자연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고, 혹시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면 서울에 있는 중앙대병원에 가서 아기를 원래 위치로 돌리를 방법도 있다고 권해주셨어.  그리고 일단 중앙대 병원 예약을 해보고 3주 뒤에 평안이가 다시 돌아왔는지를 확인한 뒤 서울에 가서 진료를 받을지 확인해 보자고 하셨어. 간호사선생님도 이 정도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셨어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는데 엄마는 자책과 불안에 눈물을 흘렸단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서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나오니 굉장히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였을 거야. 아 사연 있는 여자가 맞긴 하지. 그래서 그런지 병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측은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 같긴 했단다.


 아빠도 진짜 서울까지 가서 평안이를 위치를 돌려야 하나, 교정술을 받다가 양수가 터지면 바로 응급수술로 아이를 꺼낸다고 하는데 그렇게 까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많을 생각을 했단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긍정적인 사람들이란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차츰 안정을 되찾아갔고,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어. 


 첫째, 서울까지 가서 응급수술로 조산이 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평안이를 제자리로 돌리는 건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둘째, 평안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제왕절개수술 하면 그만이다. 요새는 일부러 산통을 피하기 위해 수술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아빠도 제왕절개로 나와서 건강하게 잘만 크고 있다. 심지어 지금은 기술이 훨씬 좋아졌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


 이 두 가지 결론을 내리고는 마음이 편해졌고, 집에 와서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줄 치킨을 아빠가 만든 양배추샐러드. 할아버지가 농사지으신 상추, 밥이랑 같이 맛있게 먹었단다


 그리고는 할머니 외할머니랑 통화하면서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단다. 할머니는 처음에 할아버지를 통해서 전치태반이라고 잘못 전해 들으시고는 굉장히 걱정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지만 단순히 거꾸로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목소리가 밝아지셨어. 제왕절개로 두 아들을 낳으셨으니 평안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수술하면 된다고 안심시켜 주셨어.


 외할머니와도 통화했는데, 엄마도 외할머니 뱃속에 있을 때 거꾸로 있었는데 체조와 고양이 자세를 열심히 했더니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 그리고 양가 모두 평안이를 인위적으로 돌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단다.


엄마는 집에 온 순간부터 평안이가 돌아오는 걸 돕는 체조를 시작했어.


평안아


엄마랑 아빠는 평안이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는 게 최우선 고려사항이니까 거꾸로 있더라도 평안이가 세상에 나오는 데는 아무 문제없으니 평안이는 걱정 말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주면 되고, 엄마 아빠의 욕심이지만 앞으로 다음번 병원 가기까지 3주 동안 엄마가 체조를 해서 공간이 생기면 잽싸게 돌아와도 된단다.


아 참 세상은 이제 정말 가을이 오는 것 같아. 낮에는 햇볕이 여전히 뜨겁지만 습도는 조금 덜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분단다.


그럼 3주 뒤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 아빠가



33주 0일

 생각해 보니 이것만 위기가 아니었단다.


 평안이가 뱃속에 아주 작게 있었지만 알 수도 없던 시기에 엄마 아빠는 코로나-19에 걸렸었어. 그 시기에는 평안이가 엄마뱃속에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코로나 약도 먹고 감기약도 먹었었지


 그리고 몇 주후 평안이가 생긴 걸 알고 나서 걱정이 되었단다. 임신 중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감기약도 안 먹는데, 감기약은 물론이고 그것보다 독할 것 같은 코로나약도 먹었으니 혹시 평안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문제가 생길까 봐 염려가 되었단다.


 물론 그 시기에는 약이 영향을 미치면 평안이가 생기지도 못했을 거라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주변에서는 얘기를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어찌 그럴 수 있겠니. 그래서 임신초기에 검사를 할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단다.


 다행히 평안이는 임신 중에 했던 각종 검사에서 문제가 보이지는 않았어. 지나고 보면 그때 집에서 일주일 넘게 밖에도 안 나가고 집에서 잘 쉬어서 평안이가 안정적으로 엄마 뱃속에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단다.


평안이는 코로나를 이긴 아기니까 나와서도 무척 건강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엄마아빠는 평안이가 건강하게 엄마뱃속에서 지내다가 나와서도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단다.

- 걱정이 많은 아빠가



33주 3일

 엄마는 이제 스스로 양말도 잘 못 신고,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감을 수 도 없단다


34주 1일

 평안이가 엄마 뱃속에서 예전처럼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거대한 지각이 움직이듯이 꾸우우우앙 움직인다.


34주 4일

 엄마는 어떻게 누워도 불편하다. 


 옆으로 누우면 평안이가 꼬물꼬물거린다. 


 새벽에 깨면 자세가 불편해서 쉽게 잠들지 못한다.


34주 6일

 엄마는 출산이 한 달 남았는데 배가 매우 매우 무거워지고 있단다


35주 2일

 평안이가 딸꾹질할 때 귀를 대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부터는 평안이의 움직임이 밖에서 잘 안 보인다고 하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뿌꾸뿌꾸 움직이는 게 아니라 대륙이 움직이듯 거대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35주 6일

 지난번 평안이를 만나고 온날 평안이가 거꾸로 있어서 그날부터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또 시간이 날 때마다 아기가 돌아온다는 체조를 하고 있었단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중에 무언가를 더 선호하는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인위적인 수술보다는 자연분만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아. 태동이 심한 날에는 평안이가 돌아오고 있나라고 생각도 했지만 이걸로 혹시나 평안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어. 어떤 자세이건 평안이가 편한 게 최고니까


 그리고 오늘 드디어 3주 만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오늘따라 앞의 시간 산모가 늦게 오면서 진료는 많이 밀려있는 상황이었어. 진료실에 들어가 초음파를 보러 가는데 의사 선생님도 많이 긴장한 모습이셨어.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평안이는 여전히 보통의 남들과는 다르게 반대로 자리 잡고 있었어. 의사 선생님도 이 정도면 평안이가 이 자세가 편한 거라고 말씀해 주셨단다. 그리고는 바로 수술날짜를 잡으면서 평안이의 생일이 결정되어 버렸지.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이 경험도 많으니까 수술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해주셨어


 막연하게 예정일만 알고 사실 정확히 언제 평안이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가 수술날짜를 받으니 시험 전에 수험표를 받은 기분이었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이제 뭔가 실감이 강하게 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오히려 평안이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것보다 날짜가 정해지는 게 엄마아빠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출산 전후의 계획을 세울 때도 편해진 것도 있어(요새 유행하는 MBTI로 보면 아빠는 파워 j라 계획대로 진행하는 걸 선호한단다. 이 얘기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빠도 할머니뱃속에서 2주나 빨리 나왔는데 평안이도 세상구경이 빨리 하고 싶어서 거꾸로 있는 걸까? 또 아빠는 어릴 때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내려왔었다고 할머니가 자주 말씀하시는데, 평안이도 보통의 아이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남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눈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 


이제 평안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명확해졌으니 엄마아빠는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겠어


이제 진짜 아빠가 될 날을 기다리며

-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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