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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Jan 15. 2020

영화는 영화일 뿐

검사도 그냥 월급쟁이일 뿐인데...

       

몇 년 전 ‘더 킹’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흥행을 못하여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검사가 나오는 검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검사가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한 허황된 꿈을 꾸는 허구의 검사의 이야기로, 영화의 스토리는 말 그대로 영화입니다. 만화 같은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뒷골목에서 껄렁거리며 세월 소비하던 학생이, 양아치 아버지가 젊은 검사에게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검사가 되기로 작정하더니 서울대 법대에 덜컥 들어갑니다. 스토리부터가 만화입니다. 서울대법대가 벼락치기로 딸 수 있는 운전면허시험도 아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등만 해온 학생들도 버거워 하는 게 서울대 입학인데요. 물론 당연히 영화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 주인공은 법전을 고기처럼 씹어 먹었는지 사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고, 유력 재벌의 사위가 됐습니다. 검사로 임용된 후 주구장창 매일 매일 사건만 처리하는 형사부 검사생활에 싫증이 난 주인공은 정치와 재벌에 유착되어 달달한 권력을 휘두르는 선배 부패검사들을 보게 되고, 달콤한 당분만을 쫒는 벌처럼 그들을 따르게 됩니다. 선배검사 한명은 폭력조직을 키우고 있고, 그 폭력조직의 조직원 중 한명이 하필 또 영화 아니랄까봐 주인공의 친구입니다. 왜 그리 영화 속의 검사들은 모두 정권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 대한민국의 2천명이나 되는 검사들이 다 정권하고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면  그 정권이 몇 개나 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영화는 한 정권이 사라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며 주인공은 줄을 잘 선 선배 검사를 뒷배로 승승장구합니다.


애인으로 연예인도 두고 있습니다. 검찰개혁을 앞세우며 또 다른 정권이 세력이 등장하고, 주인공 검사는 감찰의 위기에 처합니다. 영화는 당연히 정치검사에 집중합니다. 정치검사들의 부패를 철저하게 과장하지요.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화려한 파티가 있고, 권력의 독점과 휘두름, 불신과 배신, 어두운 진흙탕 싸움만이 영화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철저하게 비현실적이더라도 영화는 정말 영화인가봅니다. 관객은 권력을 지향하는 조인성에 공감하고, 무차별 권력을 휘두르는 정우성을 암암리에 동경합니다.


가족도 국민도 그들의 뒤에 배경으로 서 있을 뿐 입니다. 그나마 현실감 있는 배성우는 말 그대로 또 조연입니다. 관객의 시야에 조연은 포커스가 아니지요. 철저한 만화적 영화임에도 관객은 정치검사들에게 빠져듭니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거짓이 90이라고 해도 사실을 10을 넣으면 사람들은 사실일거라 믿습니다. 설마 그럴까 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그 10 때문에 90의 거짓을 전부 쳐내지 못합니다. 허구일지라도 영화는 재밌습니다. 관객은 영화에 빠져듭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영화 속의 검사가, 장면이 그리고 상황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래서 가끔 영화는 무섭습니다.      


가끔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정치검사 ㅇㅇㅇ는 ㅇㅇ 사건의 구속을 철회하라! 라고 적인 플래카드가 시뻘겋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검사와 정치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시골 청 앞에까지 저런 문구가 휘날릴까. 왜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저런 의심과 불신이 자리를 잡았을까. 사실 제 경험상 사건 처분을 함에 있어 정치적 연관이 있거나, 정치가 누군가의 부탁이나 음해로 처분되는 사건이나 수사되는 사건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검찰생활 근 30년에 검사실 수사만 20년가량 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에 정치적 사건이라고는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데도 언론이나 매스컴에서는 매일 검찰에 원수진 사람들처럼 족쳐 됩니다. 도대체 어떤 검찰청에서 어떤 검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에 검찰수사관 생활 근 30년을 해온 제가 모르는 또 다른 검찰조직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대한민국 형사사건 중 고소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이상이라고 합니다. 그 중 무혐의 처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70%입니다. 대부분의 고소인은 무혐의 처분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왜 내가 고소한 사건이 혐의가 없다는 것인지, 분명 나쁜 놈인데 왜 처벌을 못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생각은 전혀 없고, 의심과 불신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속에 무혐의 처분 검사는 모두 부패검사입니다. 피고소인에게 부탁을 받았을 것이고, 누군가의 압력을 받았을 거라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검찰 상부기관에서 판단하는 항고, 재항고, 법원 판사가 판단하는 재정신청 등을 모두 거쳐도 불신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언론이 개입되지 않는 사건은 고소인 혼자서 삭이고, 결국은 이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론이 개입되면 달라집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추측성 기사일지라도 언론에 1주일만 때리면 거의 사실로 굳어집니다. 영화와 같은 집중 효과 때문입니다.      


영화와 같은 극단적인 정치검사는 아니더라도 부패검사는 당연히 존재하기는 합니다. 한다. 돈을 받은 검사, 그랜져를 받은 검사, 사건관계인으로부터 향응을 받은 검사, 최고 권력에 과잉 충성하여 정당한 처분을 하지 못한 검사는 있었고 드러났습니다. 이런 검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런 검사들은 다 쪼잔한 그저 그런 검사들입니다. ‘더 킹’ 영화처럼 무슨 거대한 야망을 품고,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냥 쪼잔하게 돈이 좀 필요해서, 좋은 차가 갖고 싶어서, 여자 있는 술집에서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차기에 한 직급 승진하고 싶어서, 잠시 잠깐의 본능을 억제하지 못할 정도로 좀스러워서 순간적인 행동을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평범하고 쪼잔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쪼잔한 부패검사, 정치검사들의 비중이 검찰에서 어느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통계를 알 수 없으니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차용하여 약 1%~5%라고 하면, 95%~99%의 성실한 검사들은 그 억울함을 어디서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요. 저와 근무했던 수많은 검사들은 막상 사적인 자리에서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치에 관심도, 어떤 이는 정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더군요. 검사로서 검찰공무원으로서 주어진 일을 개미처럼 하고 있을 뿐입니다.


1년에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 하는 일선 검사들은 사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하면 퇴근시간은 따로 없지요. 사람을 조사하는 외에 기록 검토에 몰입하고 집중하여 사건 한건을 처리하는데 엄청난 심력과 시간이 소비됩니다. 저는 검사도 아니요, 검사를 옹호할 생각도 없습니다만 제가 알고 경험한 검찰의 세계는 언론에서 비리집단으로 매도할 만큼 그리 암울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권력지향형 집단, 타락한 비리 집단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많이 안타깝고, 99%의 검사들이 짠합니다. 그들도 월급 받아 생활하는 월급쟁이들이고, 저녁이면 치킨을 사들고 퇴근하는 아이들의 아빠, 엄마일 터인데요. 예전 어느 개그 프로의 유행어가 생각납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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