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 Jan 19. 2020

가운데자리

최고의 권력자는 사랑을 가진자


제가 근무하는 검찰청에선 기관장과 검사들, 그리고 간부들이 점심식사 후 청사주변을 산책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볼 때마다 매번 생각하는 일이지만 시키지 않아도 매번 대부분 같은 자리에 같은 직위의 검사나 간부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보 대형은 항상 삼각대형입니다. 제 1선에서 걸어가는 사람은 항상 한명입니다. 제 1선은 한 명이상 걸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는지 2명이 같은 선상을 점유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검찰청법을 찾아보니 그런 규정은 없었습니다. 제일 앞 가운데 기관장, 살짝 반보 뒤 왼쪽 자리에 차장, 오른쪽 자리엔 1부장, 그 뒤를 2,3부장과 평검사들이 반보에서 1보 가량씩 뒤에서 삼각대형으로 산책 행사가 진행됩니다. 비단 검사들만의 행동은 아닙니다. 일반직 간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검찰청 뿐 만 아니라  다른 관공서나 기업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운데 자리는 중심이 되는 자리입니다. 가운데 자리는 뭔가 안정적입니다. 제가 어릴 적 밤길을 걸을 때면 항상 가운데 자리를 파고들었습니다. 안정감이 있었고, 뭔가 보호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귀신자리라며 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가장자리는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가장자리를 걸을 때면 누가 옆구리를 건드는 듯 등줄기가 서늘해졌고, 왼쪽 옆구리엔 무형의 무언가가 팔짱을 끼는 것 같았습니다. 견디지 못하고 가운데 자리를 파고들면 불안도 무서움도, 무형의 무언가도 사라지고 없었지요.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걸을 때면 아이는 항상 가운데 자리를 차지합니다. 양손에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걷는 아이의 얼굴엔 안정감이 있습니다.      


어릴 적 가운데자리와 사회에서의 가운데 자리는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사회에서 가운데 자리는 대부분 대표성과 중요도를 나타냅니다. 유식한 체 해보면 가운데는 한자어로 사방지앙(四方之央)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중국인의 중화사상도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에서 나왔다고 하고, 이기어검술을 펼쳐 칼을 타고 날아다니는 중국 무협무대의 중심인 중원(中原)도 가운데라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피겨스케이팅 레전드 김연아가 어느 시상식에 참석한 후 포토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다른 시상자에게 가운데자리를 양보했다는 기사가 미담으로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미덕을 발휘하여 얼굴만큼 예쁜 김연아’라는 문구와 함께였습니다. 가운데자리를 양보한 행위가 미덕이 될 만큼 가운데자리가 중요한 자리일까요.    


제가 근무하는 검찰청에서의 회식자리 중앙은 항상 간부가 앉습니다. 과 회식은 과장이, 부 회식은 부장이, 청 전체 회식은 기관장이 앉습니다. 계 회식은 계장이, 수사관 회식은 수사관 선임이, 동기 회식은 나이 많은 놈이 앉지요. 신규검사나 수사관이 전입 온 환영회 자리나 전출이나 퇴직의 환송연 자리에서도 가운데자리 상석은 항상 그 자리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가장자리는 지위가 낮은 순서대로 바깥으로 이어집니다. 검찰청에서 지위가 가장 낮은 검찰서기보는, 항상 끝자리 이거나 자리가 부족할 경우 모서리 부분이나 기관장의 사각지대에 공손히 앉습니다. 자리의 대화 주도는 거의 대부분 가운데자리 사람 위주입니다. 통곡을 할 판에 농담 같으면 박장대소하고, 세상 재미없는 플라톤 이야기에도 리액션은 정형돈입니다. 회식자리가 마련된 취지나 목적과는 상관없습니다. 신입직원 환영회도, 전출직원 환송회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신입직원이나 전출직원에게 한마디 시키기는 합니다.


이후 대화의 주도는 가운데입니다. 물론 가운데 자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내가 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가운데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사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운데가 몇 마디 꺼내야 겨우 대꾸하는 직원들도 많지요. 항상 가운데가 중심이 되어 왔던 조직문화의 후유증입니다.     


연주회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케스트라의 자리배치는 지위의 순서가 아닙니다.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현악기로 그룹을 나누어 악기의 음색을 최대한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위치로 자리를 배치합니다. 지휘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중심부에 플롯,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등을 배치하는 지휘자도 있고, 바이올린을 중심부에 배치하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연주하는 음악의 조화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위치를 찾습니다. 연주자들이 각각의 그룹에서 함께 연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로 배치하는 것입니다.     


최근 기관장 한 분은 저녁 회식자리의 좌석배치를 가위바위보로 정했습니다. 이긴 사람 순서대로 가운데자리에 앉게 하는 것입니다. 자리를 정하는 것부터 그 자리의 흥을 돋우는 참신하고 색다른 방법이었습니다. 기관장이 제일 끝에 앉는 불충을 저지른 자리였지만 그날은 아무도 불충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관장이 끝 부분에 앉아 가운데 중심이 아닌 주변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는 기회가 되었겠지요.    


저와 근무하던 모 검사 한분도 점심이나 회식자리에서 가운데자리를 앉지 않는 분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 자리를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검사라고 항상 가운데 자리를 앉아야 하는 법이 어디 있냐는 의미였겠지요. 사소한 일이지만, 그냥 서로 편한 자리에 앉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처음엔 저를 비롯한 직원들이 불편하여 가운데를 권했지만 차츰 익숙해지니 자리에 대한 불편이 없어졌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승용차의 상석은 뒷좌석 오른 쪽이지만 그 검사는 앞자리 조수석을 먼저 선점하였습니다. 본인이 지리를 잘 아니 네비게이션을 하겠다는 멘트를 하고 말입니다. 별거 아니지만 그렇게 아무나 편한 자리에 앉게 되면서 격의 없는 대화가 가능해졌고, 그 만큼 검사와 직원들의 사이도  돈독해졌습니다. 행동보다는 검사의 마음을 직원들이 읽은 것이지요.    


반면에 모 검사 한분은 항상 가운데자리나 상석을 먼저 찾은 분도 있었습니다. 네 명이 가는 자리나 5명이 가는 자리나 항상 자연스럽게 상석을 찾았고, 직원들도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상석이 어딘 지부터 보고 그 검사를 위해 상석은 피해서 앉았습니다. 상석을 잘못 알고 앉은 직원은 먼저 앉았다가도 일어서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본인이 상석에 앉지 않으면 기분나빠하는 케이스였습니다.     



사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심리는 권위주의의 산물입니다. 중심이고 싶어 하는 심리이지요. <인문학 명강>의 이진우 교수는 니체를 이야기하며 이렇게 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항상 권력을 지향하고, 권력은 정치나 조직, 사회 뿐 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 어디에나 존재하며 자신을 표출하려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밥 한끼 먹는 자리에서도 그 의지는 나타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힘이 센 사람이 권력자인 것처럼 보이는 권력은 권력이 사라지는 순간 힘도 사라지므로 니체가 말하는 권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력은 상대방의 약점, 모순, 허점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최고의 권력자는 사랑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미래로 이어지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무한한 과거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므로 과거와 미래가 무한히 연결 되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순간의 권력은 가운데 자리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의지는 인간의 권력에의 의지라 하므로 니체를 능가할 논리나 능력이 없는 저로서는 이를 비난하기 어려워졌지만 곧 사라질 지위의 힘으로 가운데자리를 독점하는 행위는 실제 권력이 아니니 사랑을 가진 자로 거듭나, 진실한 마음에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진정한 권력자가 되길 바란다는 이진우 교수의 편에 서서 소심하게 ‘옳소’를 주저려 봅니다. (이진우 교수님이 가운데자리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길) 내일 회식 때는 후배에게 가운데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여 칭찬을 받아보고 싶은 같잖은 마음도 함께 말입니다. 그러고보면 어릴 적 부모가 아이를 가운데자리에 두고 손을 잡아주는 행위는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 11화 영화는 영화일 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