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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 Jan 22. 2020

부임행차

부임행차가 요란하면 백성들에 폐가 되니 들뜨지 말라


일선 검찰청의 기관장은 1년에 한 번씩 꼬박 꼬박 바뀝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1년 6개월 만에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지요. 어느 기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기관장이 바뀌면 청 분위기도 바뀝니다. 1년 있다가 갈 사람이 업무외적인 부분에 너무 의욕적이면 직원들 입장에서 참 성가신 일입니다. 장기적으로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복지에 관심이 많다면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공부하느라 학교 다닐 때는 못했던 것을 실험 해보려는 심산인지 별걸 다 하자는 기관장도 있습니다.    


좀 지난 일이지만 직원들 입장에서 참 힘든 기관장도 있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직원들끼리 서로 자주 만남의 자리를 가져야 한다며, 10여명 가량씩 무슨 조를 편성하도록 하더니 직원들이 모임을 갖거나 행사를 할 때 모든 것을 그 조별로 진행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미 업무적으로 부, 과, 계, 그리고 동호회가 편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거고, 따로 조를 편성하여 조별로 저녁회식도 하고, 조별 행사를 계획하여 무언가를 하도록 했습니다.


행사를 치른 후에는 후기를 꼭 청 게시판에 올리고 즐거운 표정으로 브이 자를 그리는 사진이 함께 게시되었습니다. 조별 행사는 꼭 기관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송구하게도 행사 때마다 거의 참석했습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을 못하게 되면 다른 간부를 대신 참석하도록 하는 본인만의 배려도 베풀었습니다. 스무 살 대학생 동호회도 아니고, 저를 비롯하여 나이 많은 직원들은 많이 힘들어 했지요. 그렇다고 부·과별 회식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서 직원들끼리의 단합이 중요하므로 부·과별 회식은 당연히 이루어졌고, 기관장이 원하는 조별 행사는 덤으로 따로 진행되었습니다. 모임이나 회식이 두 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민망한 일이지만 매일 직원들에게 순번제로 아침 방송을 하도록 했습니다. 멘트를 만들어 1분가량의 아침 방송을 순번제로 하고, 혹여 그날 방송을 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과 순번을 바꾸어 나중에라도 꼭 하도록 했습니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기관장이 하라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침 방송 시행 전에 설문조사를 하기는 했습니다. 사전에 설문조사로 가, 부를 선택하게 하여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장 의중대로 강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럴거면 설문조사를 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검사들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서 그 방송을 하도록 한 것인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그 기관장은 그런 걸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에 누군가 했던 아침 방송이 부러웠을까요. 학생들도 아니고 나이 지긋한 성인들에게 아침에 일찍 나와 방송멘트를 읽으라니 누가 좋아했겠습니까. 차라리 원하는 젊은 직원들 상대로 방송반을 모집하여 좋은 음악을 틀어주거나 아침에 어울리는 글을 소개한다면야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겠으나 30대 직원부터 50대 직원들까지, 아침에 애들 챙기고 출근하기에 바쁜 여성들까지, 모두를 의무적으로 시켜놓으니 직원들의 불만은거의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뻐팅기기도 그렇고, 기관장을 찾아가 따지기도 뭐했습니다. 100여명이 넘는 직원이니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눈 딱 감고 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려니 백번 양보해도 참 이해하기 힘든 기관장이었습니다. 조별행사에, 아침 방송에, 1년 있을 사람이 직원들을 무슨 본인 재미에 활용을 했는지 아니면 실험도구로 활용을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외에도 일일이 생각나지 않지만 이것저것 많이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법원과의 체육행사를 하자, 직원들 회의를 하여 그 내용을 보고하라, 년말에 부·과별로 업무 우수사례를 발표하라, 볕 좋은 날은 도시락을 주문하도록 하여 야외에서 조별로 먹도록 하고, 어느 날은 저녁에 호프집에서 만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도시락 준비를 추진한 모 검사에게 막말을 하여 좋지 않는 일도 있었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다시 조를 변경하도록 했습니다. 


모임을 갖는 조원들을 바꿔야 직원들의 친목이 더 좋아진다는 의중이었겠지요. 행사 명칭이 아마 ‘화목조’라 했던 것 같은데 직원들의 화목을 위한 것이니 그대로 따르라가 기관장의 취지였을 것입니다. 화목이 아니라 직원들의 화를 돋우는 조별 행사였음에도 기관장은 직원들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별 행사에 참석하여 본인은 참 재미있어 했습니다. 


부임해 오면 그 청과 소속된 직원들이 자신의 소유가 된 것인 양 행동하는 기관장들이 가끔 있습니다. 1년 동안 그 청을 책임질 기관장의 책임감은 얼마든지 이해하겠으나 자신의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인 양 요란스레 행동하는 기관장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목민심서의 부임 편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풍속에 관원의 행차에 교군들이 소리를 내는 풍습이 있으나 이는 자중 하라는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부임 행차가 교외에 이르면 아전을 불러서 행차를 소리 내어 알리는 것을 단속할 것이고, 시경에도 길을 가는  는 소문은 있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으니 군자의 행차는 그 엄숙함이 이와 같아야 한다.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여 하인들이 벼슬아치를 옹위하고 잡된 소리를 어지럽게 내서 백성이 바라보기에 엄숙하고 장중한 기상이 없다면 무릇 근엄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틀림없이 이런 소리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수령 된 자는 비록 말 위에앉아 가더라도 지혜를 쓰고 정신을 가다듬어 백성에게 편리한 정사를 펼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들뜨기만 하면 어떻게 침착하고 주밀한 생각이 나올 수 있겠는가』


부임행차가 요란하면 관원들과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니 들뜨지 말라는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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