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 Jan 28. 2020

어쩌면 사랑일까


결혼이나 연애나 참 피곤한 일입니다. 결혼이나 연애가 피곤한 게 아니라 그 상대방 때문에 피곤한 거겠지만,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일일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우쭈쭈 칭찬해줘야 하고, 가끔은 죽일 놈아 라고 욕도 해야 하고, 때로는 교장선생처럼 훈계를 합니다. 뭣이 그리 중한디, 뭣이 그리 불만이고, 뭣이 그리 맘에 안 드는지, 난 이랬으면 좋겠는데 상대방은 꼭 저렇게 하고, 안했으면 하는 것은 꼭 상대방이 찾아서 하고 있다. 장동건 이었으면 하는데 꼭 옥동자처럼 웃고 있고, 이영애처럼 이었으면 하는데 어찌 그리 박나래처럼(이거 명예훼손 아닌가? 박나래씨 죄송합니다) 마시는지.    


아내와 함께 모임이라도 나가면, 남의 남편은 두잔 밖에 안마시더만 당신은 다섯 잔을 마시더라, 점잖치 못하게 왜 그리 남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느냐, 화장실은 왜 그렇게 자주 왔다 갔다 하느냐, 입엔 뭘 그리 묻히고 먹느냐, 남의 아내 깻잎은 왜 잡아주느냐, 본인 밥은 안 먹는지 오직 남편에게 고정된 인간 cctv입니다.      


하지만, 사실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일 겁니다. 배우 장동건이 옥동자처럼 웃던, 탤런트 이영애가 박나래 처럼 마시던 장동건이나 이영에게 왜 화가 나겠습니까. 내 것도 아닌데. 장동건, 이영애가 아닌 내 남편, 내 아내이기 때문에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속도 상합니다. 나 몰라라 하기 힘든 것, 그게 ‘내’ 라는 단어 속에서 항상 불거지고 간섭을 합니다. 내가 그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 ‘나의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뉴스에서 ‘검찰은’으로 시작하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시작되면 저는 본능적으로 눈길이 갑니다. 저의 직장이고, 제가 평생을 몸담은, 나의 ‘내’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작금 검찰의 행동에 대한 못마땅함, 검사들에 대한 불만, 동료 직원들에 대한 아쉬움, 모두 제가 아직 검찰을 ‘내 직장’으로 사랑하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상대방은 알지도 못하는 갈망이지만, 그래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도 알지 못하게 잠잠해지고 말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저의 cctv도 ‘검찰은’에 고정되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왜 말을 저렇게 하는지,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나운서의 ‘검찰은’이 들리지 않는 날, ‘경찰은’, ‘청와대는’과 똑 같이 취급되는 날, 그래서 미량의 관심도 사라지는 날, 불평도, 불만도, 불평등의 의식도 모두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자니 영 어색하고 닭살 돋지만 어쩌면 아직은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15화 집행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