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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공항 Aug 15. 2024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억해줘

오늘 요가원에 가기 위해 교통카드를 찍고 공덕역 개찰구를 나서는데 한 여자아이가 “샘!”하고 나를 불렀다. 뭐지 하고 바라본 곳에는 5년 전 5학년 담임했을 때 우리 반이었던 눈이 동그랬던 아이가 키가 쑥 큰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는 은평구에 살고 있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요가원에 다니고 있고. 그 아이는 성북구에 있는 이전 근무 학교에서 가르쳤던 아이고, 우리가 만난 장소는 마포구에 있는 공덕역이고. 너무 뜬금없는 장소에서의 만남이라 얘가 걔 같긴 한데 맞나 갸웃했다.


그런데 아이는 씩씩한 목소리로 “저 옛날에 5학년 때 가르치셨잖아요.”라고 말했다. 얘는 어떻게 5년 전 담임을 전혀 엉뚱한 장소에서 만났는데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을까. 반가움도 반가움이었지만 그게 너무 신기해서 “어머, 너는 나를 어떻게 알아봤니.”라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 살던 성북구의 그 동네에 계속 살고 있지만, 공덕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주스라도 하나 사서 들려 보내주고 싶었는데 운동을 가는 길이라 시간을 지체하기가 애매했고, 아이도 친구와 어딘가에 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라도 뭐 하나 사줄까 싶어서 “샘 운동 여기로 다니니까 나중에~”라고 얘기를 꺼냈는데, 막상 말을 하려고 보니 내가 운동을 오는 시간은 아이가 이미 집에 갔을 시간인 것 같고. 아이 번호도 없고. 아이도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래서 그냥 얼버무리고 서로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나를 당연하다는 듯 알아보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넨 그 아이의 태도에, 나는 오늘의 우연한 마주침이 4년 전 내가 근무하던 이전 학교 복도에서 아이를 6학년으로 올려 보낸 뒤 마주친 것만 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묘했다.   


2달 쯤 전에는 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는데 맞은편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했다. 거기서 한 중학생 여자아이가 버스에서 내리더니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전혀 모르겠는 얼굴이어서 이를 어쩌지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저 000예요.”라고 이름을 말했다. 2년 전에 담임했던 아인데 너무나 얼굴이 달랐고, 무엇보다 못 알아본 것이 미안해서 “어머, 너 왜 이렇게 많이 변했어? 못 알아보겠네.”라는 말만 연신 내뱉고 말았다. 아이는 씩 웃더니 “안경이요! 그리고 저 쌍테 해서 그래요.”라 했다. (그게 쌍꺼풀 테이프라는 것을 깨닫는데 꽤 시간이 걸렸지.)


잘 지내냐고 묻자 그냥 그렇다고 그러더니 나에게 샘도 잘 지내라고 씩씩하게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집으로 걸어갔다. 아이와 나는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아이도 나도 길을 건너 상대방의 정류장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도로를 건너 오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안부를 물은 아이에게 묘하게 배려 받은 느낌이 들었다.


담임 첫 해, 3월 2일에 학부모님들께 보내드렸던 설문지에 ‘기타 담임교사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써 주세요.’라는 질문을 넣었다. 그 때 한 학부모님께서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써 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 문장은 특별할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 때는 그것을 보고 ‘내가 정말로 이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실감이 들어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몇 년간은 열과 성을 다해 좋은 추억으로 남고자 노력을 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인 선생님이 되는 것’만큼 ‘누구에게도 나쁜 기억은 아닌 선생님이 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사실 요즘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선생님이 되어도 선방한 거라 생각한다.


이런 나에게 이 두 아이와의 만남은 좀 힘이 된 것 같다. 엉뚱한 장소에서도 나를 알아봐주고,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그리고 내일 또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고, 내가 못 알아봐도 씩 웃어준 그 아이들이 참 고마웠다. 퇴근 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가끔 나도 모르게 눈으로 ‘쌍테하고 안경을 쓴 그 아이’를 찾는 것처럼, 앞으로는 공덕역을 갈 때면 ‘눈이 큰 그 아이’가 혹시 지나가나 종종 두리번거리게 될 것 같다.(201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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