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공항 Aug 14. 2024

성장을 지켜보다 위로를 건네는 직업

얼마 전 버스에서 작년에 담임했던 남자아이를 만났다. 작년에도 버스에서 만난 일이 종종 있었지만 그때는 나도 그 아이가 버스에 올라서는 것을 보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고, 그 아이도 나를 보고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를 싫어했다기보다는 그냥 동네 사람들 다 타고 있는 버스에서 ‘내가 선생이오.’ 광고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오랜만이어서 그런 걸까 아이가 버스에 올라서자 내가 먼저 반갑게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건네고 말았다. 아이도 반가워하며 내가 앉은 의자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보통 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강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편하게 1대 1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졸업한 아이들이 혼자 찾아오겠다고 하면 한편으로는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아이는 대화의 기술이 중1 같지 않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이가 “중학교 생활이 힘들다.”고 하기에 “너는 작년에도 학교  생활 힘들어 했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중학교는 조금 다르게 힘들다고 하기에 도대체 뭐가 힘이 든 거냐고 물어봤더니 “저희반 평균이 낮아서 담임선생님이 자꾸 뭐라고 하세요.”라고 했다. 아니 평균 점수를 개개인에게 어쩌라는 거냐며 내가 궁시렁 대고 있는데 아이가 “그런데 저희반 평균 점수가 진짜 낮긴 한가 봐요. 제가 중간고사를 그다지 잘 보지 않았는데 반 1등이에요.”라고 말했다.


맞아. 이 아이 정말 똑똑하고 재치 있는 아이였다. 특히 글을 참 짜임새 있게 논리적으로 잘 써서 이 아이가 쓴 글을 보고 나는 해보지도 않은 롤의 규칙과 축구의 전술과 농구에서 슛의 종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까먹었음.)


작년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은 겉으로 잘 지냈지만 뒤에서 서열 경쟁(?)이 심했다.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기보다 조금 못한 느낌의 친구가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면 전화를 해서 욕을 퍼붓기도 하고, 채팅창에서 “찌질 한데 놀아줬더니 주제를 모르고 나댄다.”고 모욕을 주기도 하고. 학교 근처 농구코트에서 맞짱을 떠서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보고 파출소에 신고하시기도 했다.


며칠 전에 만난 아이는 작년 우리 반의 소위 일짱이라 할 만한 아이가 발야구 경기할 때 투수 포지션에서 공을 좀 빨리 굴린 것을 가지고 “매너 없다.”고 얘기한 것 때문에 전화로 욕을 퍼먹은 일이 있었다. 우리 반 일짱은 내 앞에서는 크게 못되게 굴지 않았는데 남자아이들만 있을 때는 모습이 많이 달랐는지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도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아이도 그 아이와의 관계에서 몇 번의 어려움이 있었고 어느 날인가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내려오지 않아서 교실로 쫓아 올라가보니 텅 빈 6학년 복도에서 꺽꺽 비어져 나오는 소리를 꾹꾹 참으며 울고 있기도 했었다. 그 때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학창시절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의 감정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구나하고 묘하게 위로받고 아이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밤 늦게 이 아이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PC방을 안 가겠다고 해 놓고는 그 약속을 지속적으로 어겨서 오늘 퇴근하면 두고 보자고 했는데 아이가 교회 예배를 가서 핸드폰을 꺼 놓고는 여태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래서 같이 있을 것 같은 아이들의 이름을 대시며 학부모님 번호를 좀 알려달라고 하셨다.


번호를 알려드리고 나도 함께 전화를 돌리다가 일짱의 어머니로부터 일짱 아이가 “내일 아침에 들어갈 거니까 찾지 마세요.”라는 문자를 ‘PC방 때문에 혼날 예정인 그 아이’ 핸드폰으로 보내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소식을 아이 어머니께 알리고, 아이 핸드폰에도 “웬만하면 들어와서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 놓고. 아무튼 그날 밤 늦도록 참 분주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로부터 죄송하다고 이제 집에 들어간다는 메시지를 받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한편으로 그 둘이 함께 의지하고 밤을 지새우며 많은 것을 얻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겠지.


인생을 ‘성장’이라는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학교가 개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그냥 배경이 될 뿐이고 성장은 개인이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는 그 성장의 과정에 있는 개인에게 약간의 위로를 줄 수 있는 직업이 아닌가 싶다.


성장이라는 것은 결국 부딪히고 깨져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지켜보다가 위로를 건네는 것이 심리적으로 소모가 많고 지치지만. 그래서 솔직히 담임을 하지 않는 지금 엄청 행복하지만. 그래도 내 직업이 버스에서 반갑게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제자가 생길 수도 있는 직업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2015.6.12.)

작가의 이전글 여든네 살의 안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