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우리 반 남자아이 한 명이 다른 남자아이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잔뜩 욕을 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욕을 한 아이에게 옆에서 이런 욕을 하라고 부추긴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어머니께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고 상담을 할 겸 방과 후에 전화를 걸었다.
좀 욱하는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유쾌하고 참 괜찮은 아이인데 어머니께서는 생각보다 아이를 훨씬 문제아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요즘 안 그래도 아들이 자꾸 아버지를 찾아서 너무 힘드시다 하시며 “선생님도 저희 집 사정 아시죠?”라고 물으셨다.
죄송하지만 모른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 한 숨을 한 번 깊게 쉬시고 “저희 아이 아버지가 아이 2학년 때, 그러니까 4년 전에 먼저 갔어요. 참 똑똑하고 멋진 사람이었는데. 암에 걸려서 많이 아파하다가 갔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저도 4년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어떤 기분이실지 알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 이 아이도 4년 전 어느 날 나처럼 아버지를 잃고 서럽게 울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교실로 돌아오니 그 아이와 친한 친구가 마침 있기에 혹시 그 아이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가능하다고 교실을 나선 친구는 몇 분 만에 그 아이와 함께 돌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세요??!!” 라며 사뭇 진지한 척 싱글거리며 들어온 그 아이를 따로 데려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와 통화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4년 되셨다고 들었다. 나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4년인데 아직도 가끔 분하고 억울하다. 옛날에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윤석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내가 기차인데 달려야 할 철길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내 남동생이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게 딱 내 마음이라고 했다.
아들들한테 아버지는 딸에게 아버지보다 더 큰 존재이기에 네가 아버지가 그립고 힘들고 일찍 가신 것이 원망스러운 것은 절대로 이상한 감정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대학교 졸업도 다 시켜주시고 가셨는데도 내 결혼식 때 손잡아 주시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럽고. 혹시라도 내가 자식을 낳게 되면 안아주시고 웃어주시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럽다.
그런데 난 귀신은 안 무섭다. 우리 아버지가 속된 말로 하면 귀신이 되신 건데 다른 귀신이 나를 해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실 리 절대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서 나를 항상 지켜봐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도 절대로 어긋나지는 말아라. 너희 아버지께서도 항상 지켜보고 계시니까. 그리고 네가 삐뚤어지면 나도 너무 힘들 것 같다.
평온하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이 눈물이 나서 어금니를 깨물고. 아이는 바라보지도 못하고 한 마디씩 겨우겨우 내뱉었다.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울음을 간신히 참고 말하는 나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잔뜩 눈물을 흘리고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아이가 아버지가 그리울 때 질질 짜던 내 모습 생각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는 어른에게도 많이 힘든 거구나 하고 피식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201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