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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Sep 08. 2018

완벽한 이별을 위한 애도

만남만큼 중요한 헤어짐


10대 때 가졌던 사랑에 대한 생각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그때 머릿속에 떠올렸던 사랑의 모습은 대부분 처음과 시작에 관한 장면들이었다. ‘내 운명의 짝을 어떻게 만나게 될까?’ ‘첫 키스의 순간은 어떨까?’와 같은 상상이다. 하이틴 로맨스 소설과 드라마로 배운 소녀의 사랑은 그렇게 낭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설렘과 환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고, 다양한 온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연인간의 사랑에서,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것도 생겼다. 


이를테면 사랑을 어떻게 시작하느냐보다 어떻게 지속하느냐가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 좋아하는 마음을 강요 할 수는 없다는 것. 상대에게 아무 잘못이 없어도 마음이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 




사랑만큼 중요한 애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다소 차갑기까지 한 이러한 사실을 몸소 배우는 동안 사랑이라는 단어는 내 안에서 무르익어갔다. 물론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 많고, 계속해서 새롭게 알아가야 할 것이다. 여하튼 분명한 사실은 ‘현장’에서 알게 된 사랑은 영화나 글로 배웠던 그것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점은 헤어짐에 관한 것이다. 이별은 사랑 안에서 내 생각보다 훨씬 큰 부 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지 로맨스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삶에서 누군가와 헤어져 그를 떠나보내는 일, 의미있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상실’의 경험은 한 인간을 급격히 변화시킨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반이 바뀔 때마다 겪었던 친구들과의 작은 이별부터, 연인과의 헤어짐, 시간이 흘러 부모나 배우자를 영영 떠나보내는 일까지. 이처럼 크고 작은, 갑작스러운 모든 이별은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성장시킨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어떻게 이별하느냐는 그다음의 사랑과도 긴밀하게 연 결된다. 


이런 이유로 사랑에 대해서 배우는 만큼 ‘애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애도는 모든 의미 있는 대상을 상실함으로써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 정신 과정이다. 프로이트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목표가 내면에서 의존하고 있는 대상(대부분 부모)을 떠나보냄으로써 얻는 주체성, 자립성이다. 그렇다면 이별은 시련이라기보다 온전한 자아가 되는 결정적 기회인지도 모른다. 


애도 과정의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처럼 상실을 경험했을 때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반응이 있다고 말한다. 이 감정이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고 어떤 단계는 나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섯개의 감정뿐만 아니라, 어릴 때의 미성숙한 정신 상태로 돌아가는 퇴행 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이 또한 정상적인 애도 반응 중 하나다.


 상실 후에 느껴지는 감정은 기본적으로 괴로움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억누르고 싶어진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엄살 피우는 아이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슬픔과 분노를 충분히 느끼는 것은 의미 있는 치유의 과정이다. 그래서 이별 후에 곧장 ‘사랑 모드’로 전환이 가능한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병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은 인정받지 못하면 사라지지 않는다 


애도 작업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새로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정서적인 에너지가 제한 되기도 한다. 만약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다시 형성하지 못하고 짧은 만남만 반복한다면 이처럼 ‘잘 떠나보내는 일’의 숙제를 남겨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정적 고통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분노와 우울 등의 감정은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일을 방해할 것이다. 아픈 감정을 충분히 안아주고 정화하여 새 즐거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소설가 김 형경은 오랜 시간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며 깨달은 애도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애도과정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오면 정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이해력이 커진다. 

김형경, 《좋은 이별》 중에서 



 생각해보면 어릴 때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을 기회는 많았지만, 이별 후의 감정과 처신에 대해서 배울 기회는 적었다. 조언이라고 해봐야 고작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며 얼른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정도였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서 처음 느낀 괴로운 감정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애착이 담긴 대상과 분리될 때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위한 ‘의식’ 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정 시간을 통해 마음이 재정비되고 나면 그제야 새로운 무엇을 시도할 힘도 생길 테니까. 




완전한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완벽한 이별도 없겠지만, 상실의 과정에서 충분히 아파하고 좌절하고 바닥을 치고 다시 발을 디디는그 모든 감정과 시도를 통해 비로소 이별이 완성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숙성된 마음은 그제야 다시 사랑의 기쁨을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별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해주고 싶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펑펑 울고, 마음껏 분노하라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격렬히 그 사람을 떠나보내라고. 그것은 열렬히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예의이자,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첫 단계가 되어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사랑의 기쁨으로 살아갈 나를 위해 지금 충분히 아파할 수 있길. 







* 위 글은 책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지>에 실린 "완벽한 이별을 위한 애도"라는 제목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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