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반가운 책이 출간되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과 생각, 고민을 담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 이다. 저자는 반려견을 키운 경험을 시작으로 동물보호운동을 연구하고, 동물보호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국회의원실에서 동물정책 업무를 담당했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고, 반려견을 키웠고 저자의 생각과 닮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나와 달리 그녀는 실천하는 삶을 살았고 감사하게도 인간이 알아야 할 꼭 필요한 내용을 담은 책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를 출간했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소영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리뷰를 써보고자 한다.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 던져보아야 할 질문과 알아야 할 일들에 대해 무겁지 않은 목소리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 8p
모르기 때문에 저질렀던 잘못
반려동물, 특히 반려견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여지없이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온다. 그것은 아마 반려동물에 대한 연민, 미안함과 죄책감, 인간의 갑질에 대한 분노가 섞인 감정일 것이다.
약 13년전, 나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를 위해 오빠와 돈을 합쳐 강아지를 구입했다.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반려동물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두달쯤 된 코카스파니엘이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봤었고 그 아이는 고속버스에 배송되어왔다. 몇달 지나지 않아 그 아이를 집에서 키울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입원을 해야했고, 나는 학업 때문에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 그 아이를 어딘가로 보내야 했다. 그리고 1년즈음 지나서인가, 나는 병원을 통해 또 다시 갈색 푸들을 샀다. 수의사선생님이 붙여준 '댄디'라는 이름을 그대로 불러주었다.
댄디는 사고로 죽기 전까지 본가에서 약 9년을 함께 살았다. 엄마가 댄디를 잠깐 데리고 나갔다가 잃어버렸고 한참을 찾다가 엄마는 결국 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렸다. 나는 당시 알고 있는 부산에 살고있는 모든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사진과 정보를 공유하고 SNS나 커뮤니티 등에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늦은 밤시간 연락을 받았다. 대학가 앞 도로에서 파란색 옷을 입은 갈색푸들이 차에 치었고, 119에서 데려간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친척동생이 글을 올려준 커뮤니티에 댓글이 달려 내게 연락을 주었다. 그 아이가 분명했다.
관할 소방서에 연락해 보니, 구청으로 넘어갔을 거라고 했다. 구청으로 연락해보니 그날 들어온 갈색 푸들은 없다고 했다. 소방서에 다시 연락해 구청에 넘긴 당사자분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알고보니, 파란옷을 입은 갈색푸들이 소방서에 옮겨졌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두었단다. '사체'로 분류되어 버렸다고 했다. 죽었기 때문에 반려견등록 내장칩 또한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날이 밝으면 데리러 갈테니 버려진 그 아이를 다시 데려와 보관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나는 그 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죽었다는 사실보다 괴로웠던 것은 길을 잃고 난 후 사고직전까지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겁많은 강아지가 길을 잃어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엄마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고, 낯선 곳에서 헤매면서 불안감은 증폭되었을 것이다. 무서운 마음에 인간들에게 짖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인간은 그에게 발로 차는 시늉이나 나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을 피해 정신없이 길을 건너다가 자기 몸집보다 몇십배는 더 큰 차에게 치었을 그 순간. 그런 장면들이 상상이 되어 숨을 쉴 수조차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악몽같은 시간이었고, 내심 그 아이가 살아있지는 않을까, 살아있다면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을 지샜다.
나는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댄디는 차가운 상자 속에 담겨 편안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보내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두렵지 않겠지, 지금은 고통스럽지 않겠지 그렇게 애써 위로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https://blog.naver.com/gamja206/220387045733) 얼마간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엄마와 달리, 나는 그나마도 제정신으로 회사생활을 해냈다. 반려견을 잃은 슬픔보다 죄책감이 훨씬 더 컸다. 죄책감은 동물에 대한 엄청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미 늦어버린 관심이었지만,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다행히도 이른 관심일까.
나는 사고로 반려견을 잃고나서야 그 생명이 나와 동일한 생명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나는 생명을 생명답게 다루지 않았고, 그 것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강아지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돈을 주고 샀던 것, 그리고 물건처럼 배송받아 왔던 것. 생명을 키우면서도 그 생명에 대해 어떤 것도 공부하려 들지 않았던 것 모든 게 잘못된 행동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강아지공장, 동물학대 등 말로할 수 없는 잔인한 행태들. 그 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갑질이었다.
이후, 나는 여러 동물보호단체에 후원을 하면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주변사람들에게나마 '사지마세요. 입양하세요.'를 외쳤다. 길 잃은 강아지를 발견하면 지역카페나 유기동물보호센터에 알렸고, 식용견 철폐를 위한 집회에 나가기도 했다. 작은 실천이었지만, 이 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모습이었다. 또한, 브런치에 글을 썼다. 좋아하는 동물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감성만이 아닌 이성이 필요하다는, 무지로 인해 생명에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게 글의 요지였다. https://brunch.co.kr/@kundera/36(이 글은, 매거진 <오보이>에 실렸습니다. ) 부끄럽지만 이 정도가 보잘 것 없는 나의 아주 작은 노력이었다.
그런 노력을 하는 동안 큰 변화를 위해서는 법적인 영역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식용견을 금지시키는 것 등) 의 개선이나, 교육의 영역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등 보다 큰 규모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런 일을 현장에서 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책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
이 책이 훌륭한 이유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보호운동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동물보호업무를 하는 사람이 쓴 책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다. 행간마다 저자의 진심과 때로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모든 꼭지들이 공감이 갔지만, [동물을 위하는 마음에는 돈이 필요하죠] 는 까미와 할머니얘기에 슬픔을, 저자의 경험에 깊은 공감을 느꼈고, 현실적인 제안에 박수를 보냈다. 특히 동물보호가 단순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고민이 언젠가 내가 했던 고민과 겹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동물 복지 차원에서 볼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동물을 키워서는 안 된다. 주기적인 산책 등 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동물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된다. 일정 수준의 경제적 소득이 있는 사람들만, 동물이 적절한 보호와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기본지식을 습득한 사람들만 동물을 키울 수 있또록 자격제도를 마련해야 옳다. 원칙적으로는 그렇게 해야만 동물이 학대받지 않고,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이용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까미 할머니가 가진 모든 것을 까미에게 내주어도 누군가의 눈에는 '동물학대'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할머니에게서 까미에 대한 소유권을 박탈하여,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로운 양육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도 할머니가 하고 있는 최선의 노력을 '틀렸다'고 평가할 수 없을뿐더러 그럴 권리가 과연 누구에게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 185~186페이지
세상에는 무엇을 '옳다'라고 단정짓기가 어려운 많은 사례들이 있다. 또 돈에 관해서는 할많하않이다. 동물보호단체에 후원을 하는 것도, 다른 상품보다 비용이 더 비싼 동물복지 상품을 사는 것도, 유기견을 입양하여 돌보는 것도, 아픈 동물을 치료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귀촌을 한 본가에서는 이웃으로부터 누렁이 개를 입양하여 키우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중성수술을 미루고 있다가 결국 개는 임신을 하고 말았다. 마당에 묶여 있어서 전혀 그럴일이 없다고 생각했다는데, 떠돌이 개가 임신을 시킨 모양이다. 9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힘들게 아홉마리를 출산을 하고, 젖이 아파 새끼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것을 보면서 화가나고 또 미안했다. 중성수술비 몇십만원이 뭐라고.. 라고 생각하지만 작은 돈은 아닌 게 사실이다. 이렇듯 생명을 건강하게 지켜내고 싶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다 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배수관에서 살아 남은 고양이] 라는 글속의 저자 생각과 고민에도 공감이 많이 갔다. 내가 실감하기에는 최근에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하는 1인 가정이 많이 늘어났다. 강아지에 비해 손이 덜간다는 이유도 한몫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를 아무렇게나 데려다 키우고 다시 길가에 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고양이를 쉽게 데려오고 다시 버리는 사례들이 아주 많다.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무작정 집에 데려왔는데 하루가 다르게 크는 고양이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들. 아기 고양이 일 때만 돌보고 몸집이 커지면 길에 돌려보내겠다는 사람들. 자녀가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왔는데 키울 수 없으니 있던 자리에다가 가져다 놓겠다는 부모들. 나는 부디 길에 사는 고양이들이 그런 사람들의 무책임한 손길로부터 멀리 달아나 몸을 숨기기를 바란다.
도심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에게 어느 정도로 개입을 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사람마다 분명 다른 선을 그어놓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귀엽고 불쌍하다는 이유로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오거나 본인의 잣대로 동물의 행복과 불행을 함부로 판단해 또 다른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는 마음이 모아졌으면 좋겠다. 170~171페이지
사람들은 '귀여워서'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 '불쌍해서' 라는 이유로 집에 데려다가 키운다. 쉽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그 속에는 자신이 선한 일을 했다는 (불쌍한 아이를 데려다 키웠으니) 생각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과연 그 동물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문제들을 모두 세세하게 건드려 주어서 좋았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 현실적인 상황을 알려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다 같이 고민해야하는 지점을 짚어주어서 좋았다. 비인간 동물과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에도 우리가 바로 여기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도 알려준다.
나는 이 책을 언젠가 내 딸아이가 읽을 것이기에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놓는다. 아마 그 아이는 언젠가의 나처럼 친구집의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서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워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때에 나는 내 경험을 들려주며,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만들어준 이소영 작가와 뜨인돌출판사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나를 울려버린) 떠돌이 개를 위한 저자의 간절한 기도에 내 마음을 보태며 마친다.
더는 도망쳐 다니지 않기를. 사람들의 눈총을 받지 않기를. 추위와 배고픔에 떨지 않기를. 그리고 다음 생에는 충분히 행복한 존재가 되어 사랑받으며 살기를, 나의 기도가 조금이나마 닿아주기를. -164페이지